성매매 여성을 여전히 속죄양 삼는 성매매방지법
〈노동자 연대〉 구독
성매매 여성을 여전히 속죄양 삼는 성매매방지법
정진희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방지법)이 오는 9월 23일부터 시행된다.
지난 2000년 9월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 이후 많은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그래서 여성단체연합 등 많은 여성단체들이 이 법의 시행을 성매매 여성 인권 보호의 진일보라며 환영하고 있다.
새 법이 이전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비해 나아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타락을 뜻하는 윤락이라는 용어가 성매매로 바뀌고, 성매매 여성 가운데 일부가 피해자로 규정돼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방지법은 환영할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 사실, 새 법이 내세우는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호는 다분히 기만적이다.
새 법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성매매 피해자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위계나 위력 등의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마약 등에 중독돼 성매매를 한 자, 청소년이나 장애인, 그리고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만이 피해자로 인정된다.
억압
여성이 동의해서 성을 파는 자발적 성매매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이 경우 여성들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선불금 등 채무 관계에 얽매여 성을 파는 여성들도 피해자에서 제외된다.
게다가 피해자로 인정되는 여성들이 받게 될 보호의 성격도 의심스럽다.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보호 처분은 사회봉사․수강명령, 특정 장소나 지역 출입 금지, 보호관찰, 감호위탁 등으로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이다.
성매매방지법에서 포주나 성매매 알선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그 동안 포주가 별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법적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이나 관청 등과 유착했기 때문이었다.
포주가 지역의 유력인사나 경찰에 정기적으로 상납하고 이들의 비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군산 성매매업소 참사 사건 때뿐 아니라 올해만도 수차례 폭로된 바다.
이런 구조적 유착 앞에서 강력한 법 집행을 주문하는 것은 부질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경찰 단속은 언제나 포주보다는 성을 파는 사람들(거의 다 여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다.
성매매를 강하게 단속하는 미국(대다수 주가 우리 나라처럼 성 판매와 구매, 포주 행위 모두가 불법)의 통계를 보면, 1989년 뉴욕에서 성매매와 관련해서 체포된 성인 1만 3천2백68명 가운데 포주는 2백93명뿐이었다. 성 구매자가 6백90명(남성 6백32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성 판매자였다.
게다가 단속에 걸리는 포주 가운데 거물급 포주는 거의 없다. 나이트클럽 체인이나 마사지 업소, 샴페인 업체나 호텔 소유주 등은 법의 비호를 받는다.
전 청와대 부속실장 양길승이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나이트클럽 소유주에게 향응을 제공받았던 데서도 보듯, 거물급 포주는 정치인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성매매에 관한 많은 연구는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법 체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포주를 경찰에 고발하기를 주저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포주를 고발하면 여성 자신이 성매매 여성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따라서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다.
성매매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처벌․규제하는 것은 성매매 여성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포주에게 더욱 의존하는 결과를 낳는다.
단속 강화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곤 한다. 단속 강화는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수반하는데, 이것은 사회의 이중적 성 규범과 맞물리면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물리적 공격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한 성매매 연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성 산업에 대한 경찰의 압력이 커지면서 매춘 여성 살해라는 전염병이 미국 서부를 휩쓸었다.고 지적한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희생자 가운데 많은 수가 성매매가 이뤄지는 보도방이나 마사지업소에서 일한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보듯, 성매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법적 처벌과 낙인은 강간범과 살인자의 손쉬운 표적이 되게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성매매 여성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은 경찰이다. 경찰의 학대는 은폐되기 마련이지만 심심찮게 보도된다. 원조교제를 한 청소년을 수사하던 경찰이 그 여학생을 강간하는 일이나 성매매 여성에게 처벌을 위협해 성 상납을 받는(사실상 강간)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경찰
교육 강화(성매매방지법에 따라 앞으로 초․중․고등학교에서 성매매 예방 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된다)를 통해 성매매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 역시 진정한 성매매 예방책이 되기 어렵다. 성매매는 개인들의 의식에서 비롯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부르주아 개혁가들과 페미니스트, 종교인들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도덕 재무장 운동은 모두 성매매를 근절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실업과 가난 같은 성매매의 사회적 근원을 무시한 채 개인들을 속죄양 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성 판매자들의 주된 동기는 가난 때문이다. 지난 6~7월에 경찰 단속에 걸린 인터넷 성매매 여성 가운데 96퍼센트가 실업자와 학생(대부분 용돈을 벌려는 10대)이었다.
1980년대 영국 매춘여성 단체의 조사 결과는 매춘 여성의 70퍼센트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었다. 실업과 복지비 삭감은 노동계급 여성, 그 중에서도 더 취약한 부문에 타격을 가한 것이다.
경제 위기가 깊어지면 성매매가 급증한다는 사실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1990년대 초 옛 소련과 동유럽의 경제 붕괴는 성매매를 크게 증가시켰다. 1998년 보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5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성을 팔기 위해 러시아를 떠나 서유럽으로 갔다.
1997년~1998년 아시아 경제공황도 동일한 결과를 낳았는데, 인도네시아의 경제 붕괴는 자카르타 지역의 상업적 섹스를 급증시켰다. IMF 이후 우리 나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성은 갈수록 상품이 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성은 더욱 소외되고 있다. 가난과 실업, 불평등이 구조화돼 있고, 성을 소외시키는 체제에서 성매매를 없앨 수는 없다.
실업과 빈곤에 맞서 싸우고 복지 확충을 쟁취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것만이 성매매와 그 과정에서의 억압과 착취, 소외를 없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