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노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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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지난해 11월, 누더기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세월호 참사 운동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가족대책위는 “미완인 특별법은 미완인 채로 남겨 놓지 않을 것”이라며 투쟁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향한 지지는 광범했다. 유가족들의 단호한 투쟁에 지지가 이어졌고, 특별법 제정 서명도 5백만 명을 넘어섰다. 특별법은 성역 없는 진실·책임 규명의 상징이었다. 이렇게 모인 분노는 정부를 향했고, 일부는 체제에 분노했다. 일부 좌파들이 국가 청원형 운동이 문제였다거나 특별법 제정 요구에만 갇혀 문제였다고 보는 것은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물론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의 태도는 문제였다. 온건파 리더들은 새정치연합의 눈치를 보고 의존하려 했다. 새정치연합이 뒤통수를 때릴수록 온건파 리더들은 조급해했고, 새정치연합이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데도 온건파 리더들은 국회에서의 합의에 의존했다. 이런 태도는 운동의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운동이 새정치연합에 의존할수록 환멸과 무력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운동이 특별법 제정을 국가에 요구한 것이 문제는 아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책임자들을 소환·수사·기소할 수 있는 강제력이 필요하다. 그게 유족과 운동이 요구한 특별법이다. 이것을 문제 삼는 주장은 아나키즘적 종파주의다.
한편, 유가족들의 원칙적 태도는 투쟁의 구심이 됐지만 요구를 쟁취할 강력한 힘이 부재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완강히 버티는 상황에서 운동 참가자들의 자신감과 확신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이런 구실을 할 수 있는 세력은 조직 노동자들이었다. 이윤 체제가 빚은 참사에 맞서 노동자들이 경제적 힘을 사용해 싸웠다면 지배자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큰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외면하면서 대중적 분노가 확대됐을 때(대략 7월 경), 민주노총 지도부가 파업을 호소했다면 사태가 달리 전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하루 파업조차 부담스러워하며 회피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실종된 고리는 바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아직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진상을 둘러싸고 여러 쟁점들이 불거질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막가파이긴 하지만 막강하지는 않다. ‘청와대 실세’ 논란은 박근혜 정부가 철옹성이긴커녕 내분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무리수를 두는 등 실수를 할 경우 기층 조합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 되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요구 목소리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