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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모욕이 언론의 자유인가?

파리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테러 사건 이후에 언론의 자유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번 테러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규탄한다. 파리에서 1백만여 명이 참가한 테러 항의 집회의 핵심 구호도 언론의 자유와 관련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슬람을 혐오하는 우익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집회에 참가했다.

반면 소수자에 대한 조롱에 언론의 자유라는 대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언론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타인의 믿음을 모욕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을 조롱하는 것과, 인종차별과 종교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권력자들에 의한 탄압과 불이익을 무릅쓴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후자는 차별과 억압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짓누르며, 결국 차별을 온존시키는 지배자들에게 이로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을 조롱한 것에 언론의 자유라는 명분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국 지배자들을 비롯한 서방 지배자들은 중동인 수십만 명을 학살하는 전쟁을 벌였다. 가난한 무슬림 이민자들을 테러리스트나 복지 기생충으로 묘사하며 차별하고 천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슬림들을 모욕하는 만평을 서방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받는 고통에 더한층의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물론 테러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무슬림들에게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모욕을 참고 받아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지금 시점에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입장은 테러를 낳은 근본 원인이 제국주의적 중동 침략과 무슬림 억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앞세워 제국주의적 동맹을 강화하려는 서방 지배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혼란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 윤리에서 비롯한다. 자유주의 윤리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추상적 진리와 권리를 강조한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자유, 평등, 우애’였듯이 말이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에는 절대군주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을 단결시키는 구실을 했지만 자본가 계급의 권력이 공고해진 이후에는 온갖 모순을 낳았다.

자유주의 윤리

자본가들은 자유라는 가치를 이윤을 추구할 자유로 강조하며 인류 전체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할 권리는 억압했다. 1인 1표를 던질 형식적인 평등은 (어쩔 수 없이) 허용했지만, 부와 권력을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나눌 권리는 (절대로) 배제했고, 형식적 평등은 실질적 불평등을 가리는 가식이 됐다.

사회가 적대적인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추상적 가치들은 어느 계급이 추구하느냐에 따라 서로 첨예하게 충돌한다. 계급사회를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은 가치의 구현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나, 어느 집단에게나 통용되는 추상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윤리는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 자본가 계급이 이윤을 추구할 자유와 노동자 계급이 삶과 조건을 지키기 위한 자유가 충돌할 때 어느 편을 들 것인가? 친일과 독재 옹호에 앞장섰던 〈조선일보〉 등은 2000년대 중반 광범한 언론 개혁 요구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저항하기도 했다.

진리와 권리 등은 언제나 구체적 맥락을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 ‘자유’가 어떠니 하는 말이 나올 때는 항상 “누구의 자유이고 무엇을 하려는 자유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적대 계급(들)만의 자유와 권리일 때는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판단 기준은 무엇이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권리가 향상되는 것을 통해, 억압을 받는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권리가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검열 없이 의견과 주장이 활발하게 교환되는 것이 노동자 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에 이롭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이나 진보당 해산처럼 국가가 언론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들을 탄압할 때 이 권리를 적극 옹호해야 한다.

그러나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을 부추기는 혐오 발언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발언들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을 이간질하고 노동자 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과 권리에 해롭다. 이런 주장들에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만약 파시스트들의 경우처럼, 인종적 증오를 부추기는 주장이 소수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폭력 행위로 직결된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대중 자신의 실력 행사로 막을 수도 있어야 한다. 서구의 반反파시즘 활동가들은 파시스트들의 거리 행진을 막는 시위 등을 조직하며 맞서 왔다.

가치 판단을 할 때는 언제나 그 구체적 맥락을 따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건설하는 방향을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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