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 울려 퍼진 간절한 외침:
“온전한 진실을 인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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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걸음이지만 우리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진실도 성큼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 단원고 2학년 3반 김도언 양의 어머니
“도대체 왜? 왜?... 그 날의 의문점이 하나도 풀린 게 없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하나라도 답을 얻고 싶어서 가족들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 안산에서 온 오혜란 씨
“하루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현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발목을 다쳤지만, 현수를 생각하며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현수 군의 아버지, 방기삼 씨
3백5일 동안 쌓인 그리움만큼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보고픈 마음에 흘렸던 눈물만큼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및 진실규명 촉구’를 위해 지난달 26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시작해 도보 행진에 나섰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14일 오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해줄 게 이것밖에 없었다"는 엄마 아빠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달라”는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이, 기꺼이 단원고 '2학년 11반'이 되어 주기로 한 사람들이 그 길을 함께 걸었다. 7살 주형이는 어린 동생을 다독이면서,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한 80세 김종대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잡고 걸었다.
19박 20일의 긴 여정의 마지막 날,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길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노란 물결’을 만들었다. 그 물결 속에는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라“, ”우리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게”, “너무 두려워하지마! 꼭 엄마 품에 안겨 줄게”라며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도보 행진 중에 만난 사람들은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한 기대와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을 때, [파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올해 4월 총파업을 꼭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 광주에서 온 금속노조 조합원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은 유가족 만의 일이 아닙니다. 지켜만 보지 말고, 이제는 [민주노총이] 앞장서 줬으면 좋겠습니다.” – 유민 아빠 김영오 씨
이날 서울, 안산, 광주 등 전국에서 3천여 명이 모인 팽목항은 “온전한 진실을 인양하라”는 외침으로 가득찼다. 내 아이가 하늘의 별이 된 이유를 알고 싶다는 유가족들과 차가운 바다에 남겨진 피붙이를 품에 안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외침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20일을 걸으면서 서러움이 밀려오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를 생각하면 그 아이의 고통에 비하면 제 아픔은 아픔도 아니였습니다. 원망스럽고 한이 맺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왜 우리 아이가, 우리 예쁜 내 아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서 하늘의 별이 돼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가 이 정부가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재강이가 보고 싶습니다. 내 곁에 있어야 할 아이가 내 옆에 없습니다.” – 2학년 7반 허재강 군의 어머니
“사고 났을 때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우리 딸 옷 갈아 입히려 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딸이, 아직 50미터 아래 바다에 있어요. 저도 그 물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 물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우리 딸 꺼내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3백5일이 길다고 말하지 마세요. 제가 18년을 키운 딸입니다. 우리 딸, 제가 이제는 데려갈 수 있도록 세월호를 꼭 인양하도록 여러분이 도와 주세요” – 2학년 1반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
“여러분이 있어서 끝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선체 인양을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이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보다 국회에 있는 의원들보다 더 훌륭합니다”- 2학년 3반 예슬 양의 아버지, 박종범 씨
9명의 실종자와 참사의 진실이 아직 저 차디찬 바다에 갇혀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지난 4월 16일의 아픔과 고통, 그 잔혹했던 기다림 속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