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투쟁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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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엄청나다. 1945년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20·30·40대가 세월호 참사를 꼽았다.(2014년 12월, 〈한겨레〉)
운동이 잠시 소강 상태인 듯 보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급격히 깊어지면서 지배계급의 갈등 등으로 세월호 참사 관련 진실이 드러나거나 하면 다시 한 번 행동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 투쟁이 전진하려면 지난 투쟁을 잘 돌아보며 준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박근혜 정부를 정치적으로 타격한 중요한 정치 운동이었다.
지난해 8월 도심 시위에 5만 명이 모였다. 전교조 교사들은 교육부의 징계 위협 속에서도 박근혜 퇴진 선언에 나섰다. KBS 노동자들은 ‘보도 참사’를 반성하며 언론의 독립성을 위한 파업에 돌입해 승리를 거뒀다. 청년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진실 은폐에 혈안이 돼 있었다. 진실 규명 과정에서 자신들의 책임이 밝혀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와 지배자들을 향한 분노가 모이면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배자들을 한발 물러서게 하려면 매우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새정치연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내 협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참가가 절실했다.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가 소심한 태도로 노동자 고유의 힘, 즉 생산을 멈출 파업이라는 힘을 발휘하는 것을 자제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박근혜의 냉담한 반응에 분노가 드높았던 6~8월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적어도 하루 파업이라도 호소했더라면 투쟁의 양상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8월 금속노조 조합원 김영오 씨의 단식으로 조마조마함과 분노가 팽팽해졌을 때, 금속노조 지도부도 무언가 해 볼 만했을 것이다. 즉, ‘박근혜 퇴진’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공식 요구로 채택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박근혜 퇴진을 가능케 할 동력이 진정 가동되지 못한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진지한 활동가들은 이 점을 돌아봐야 한다.
민주노총의 4월 24일 파업을 앞둔 지금, 이 투쟁이 박근혜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균열을 내,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의 발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