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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에 대한 한국 좌파들의 주장과 균형 잡힌 관점

이 글은 2015년 노동자연대 대의원 협의회에서 차승일이 발제한 연설문을 다듬은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의 집권을 환영한다. 우파가 공격할 때는 조건 달지 말고 방어해야 한다. 시리자의 성장과 집권은 지난 5년간 그리스에서 벌어진 강력한 계급투쟁과 그로 말미암은 대중의 좌경화를 반영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대감을 높여 투쟁을 조직하는 데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쥐어짜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기층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면서도 시리자에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초좌파적 단체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정도가 가장 심한 한 단체는 시리자를 “소부르주아 어중이떠중이 집단”이라고 부르고 “시리자가 파쇼연합으로 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20~30년대 독일공산당을 재앙으로 이끌었던 스탈린주의의 ‘사회파시즘론’이다.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 심해 보이는 또 다른 단체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이미 ‘좌파 정부’한테서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9년에 사회당 … 정부는 … 노동자들을 희생시[켰]다.” 얼핏 보면 틀리지 않은 말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시리자를 사회당과 완전히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태도로는 노동자들을 혁명적 정치로 끌어당기기는커녕 노동자들과 소통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시리자 정부가 부딪힐 세 가지 난제

동시에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가 좌파 개혁주의 성격의 단체이고, 시리자 정부가 좌우의 압력을 받으며 줄타기하다가 점점 우경화해 보통의 개혁주의 정부처럼 될 공산이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2월 20일 합의다. 시리자 정부와 유럽 지배자들이 한 이 합의의 핵심은 긴축 4개월 연장이다. 유럽 지배자들과의 협상으로 긴축을 끝내겠다는 시리자 지도부의 전략은 명백히 틀렸다.

심지어 시리자 정부의 개혁 의지가 강하더라도 이른바 ‘좌파 정부’의 힘만으로는 많이 힘들 것이다. 첫째, 경찰·군대·사법부·정보기관 등 선출되지 않은 국가 권력들이 방해할 것이다. 얼마 전 황금새벽당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가 구속돼 있는 황금새벽당 지도부들을 곧 석방하겠다고 했다. [이후 황금새벽당 지도자 니코스 미칼로리아코스는 석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둘째, 시리자 정부는 국제 지배자들의 압박을 크게 받을 것이다. 유럽 지배자들에게 그리스 부채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가 긴축을 중단한다면 당장 스페인의 포데모스가 힘을 받고 유럽 전역에서 좌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경제 위기에 대응해 노동자를 쥐어짠다는 전략 자체가 방해받을 수 있다.

셋째, 시리자 정부는 자체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만한 여지가 크지 않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가 고유가 속에서 석유를 수출해 개혁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처지이다. 그리스는 몇 년 동안 경제가 수축해 왔고,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1백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극심한 위기에 처한 나라이다.

따라서 시리자 집권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던 계급투쟁이 그리스의 앞날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좌파 개혁주의 경향들은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한 토론회에서 노동당의 지도적 활동가는 그리스독립당과의 연정을 “신의 한 수”였다며 시리자를 두둔했다. 2월 20일 합의에 대해서도 “판단 유보”라며 사실상 비판하기를 꺼렸다. 본인의 말로도 2월 20일 합의는 “7 대 3”으로 유럽 지배자들에게 유리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시리자가 우경화해 왔다는 지적도 없었다. 집권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생겨난 실용주의다. 안타깝게도, 그는 투쟁이라는 요소를 분석에서 사실상 배제했다.

노동당이 주최한 또 다른 토론회에서 연설한 연사도 5년 동안 32번이나 일어난 총파업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매우 중요한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에 대해서도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리스 계급투쟁과 혁명적 좌파

그렇다면 투쟁의 전망은 어떨까? 현재로서는 시리자 정부에 시간을 주면서 기다리자는 정서가 더 큰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 시리자 정부는 오락가락하며 점점 우경화할 것이고 사람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이 실망이 좌절과 체념으로 이어질지, 분노와 투쟁으로 이어질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른 좌파 정부들의 경험을 보면 투쟁의 고조는 자동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안타르시아가 이 기회를 이용해 평조합원 네트워크 ─ 시리자 등 다른 정당 지지자를 포함한 ─ 를 건설하고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켜서 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3월 21일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시위가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안타르시아가 시리자에 종파적으로 굴지 않고 함께 공동전선을 맺으려 하면서도, 혁명적 좌파의 독립성을 지키려 하는 것은 옳다. 디폴트, 유로존 탈퇴, 노동자 통제를 바탕으로 한 은행 국유화 같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면서도 긴박한 과제들, 그리고 투쟁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요구를 모아 행동 강령을 제시한 것도 옳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선 투쟁과 공동전선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것도 옳다.

전략의 귀환

마지막으로 시리자의 집권이 국제 좌파 운동에 주는 함의에 대해 말하겠다. 얼마 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시리자의 좌파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와 토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1910~20년대, 1960~70년대에 국제 좌파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략 논쟁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그것도 매우 날카롭게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경제 위기 초입에 ‘계급의 귀환’을 말했다면, 이제는 ‘전략의 귀환’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한 좌파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리자의 집권은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 → 착취 강화 → 대중투쟁 분출 → 선거를 통한 좌파 집권’이라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했다.” ‘시리자가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오래된 구분을 뛰어넘었다’고 말한 일부 좌파가 생각난다. 이 밖에도 국가, 정당, 노동자 계급의 힘, 니코스 풀란차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그람시 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논쟁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날카롭고 혁명적이지만 설득적으로 잘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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