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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티스 쿠벨라키스 VS 알렉스 캘리니코스:
시리자와 사회주의 전략

2월 25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은 시리자 중앙위원이자 시리자 좌파의 지도적 활동가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와 SWP의 중앙위원장이자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를 초청해 ‘시리자와 사회주의 전략’이라는 주제로 패널 토론을 개최했다. SWP의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는 각각의 주장을 정리해 보도했다. 이 글은 그 기사들을 번역한 것이다. 전문통역사 천경록 동지가 토론 영상을 직접 보면서 현장감을 살리고 미묘한 뉘앙스 차이까지 잡아내려 애썼다. 토론 영상을 직접 보고 싶은 독자들은 영상 ‘Syriza and socialist strategy - Stathis Kouvelakis and Alex Callinicos’를 보면 된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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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는 변화를 가져올 최선의 희망이다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들의 협의체]과 그리스 정부의 [2월 20일] 합의 이후, 시리자의 구상이 앞으로 잘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무시 못할 이유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정치적 구상은 언제나 도박과 같습니다. 일이 어그러질 위험은 크고 성공 보장은 없습니다. 시리자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시리자가 이미 달성한 업적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서 급진좌파 정당이 전국적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많은 시험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시리자가 이미 통과한 시험이 있다는 것도 봐야 합니다. 지금의 시리자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시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시리자의 전략적 진취성

저는 시리자가 보여 준 전략적 진취성 네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시리자의 독특한 형태입니다. 시리자는 다원적 조직입니다. 시리자는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운동주의[연성 자율주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등 급진좌파의 다양한 전통을 포괄합니다. 시리자는 급진좌파를 재구성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급진좌파 재구성’의 의미를 방어적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지금 같은 패배의 시기에, 한때는 하나의 큰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쪼개진 여러 파편들을 다시 모아 더 강해지자는 것입니다. ‘급진좌파 재구성’에는 공세적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 파편화를 낳은 원리 자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연합 활동과 새로운 반자본주의 정치문화를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어떠한 정치 전통도 혼자서는 사회를 바꿔 낼 해법을 제시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리자가 조각보처럼 여러 요소들을 단지 짜깁기해 놓은 것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려면 각각의 요소들은 상호 비판적 자세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런 연합은 아직 성취되지 못했고 시리자는 이를 위해 계속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좌파가 20세기의 패배로 얻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둘째, 시리자가 운동들과 관계 맺는 방법입니다. 시리자의 눈부신 성장은 그리스에서 일어난 강력한 사회운동들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운동은 긴장과 양극화를 낳았고 때로는 폭력도 있었는데, 그 기운과 정서는 보통의 사회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집권하는 경로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태들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들의 분출이 곧바로 시리자의 성장·집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32번의 총파업과 대규모 거리 시위는 긴축 “양해각서”가 강요한 조처 어느 하나도 막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전망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자 정치적 진취성이 빛을 발할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시리자는 운동들을 정치의 언어로 옮김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동안 없었던 일입니다.

2012년 시리자는 긴축을 반대하는 좌파들이 모두 단결한 통합 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단지 시리자만의 정부를 주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상황을 변화시켰습니다. 지배계급의 권력에 효과적으로 도전하려면 운동들을 정치적으로 응축시키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사회운동의 역동성을 정치적 도전으로 바꿔 내는 능력은 시리자의 형태와 완전히 어울리는 것입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단일한 구상으로 모아 낸 그 형태 말입니다.

다른 좌파들은 시리자의 제안을 거부해 선거에서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급진좌파들의 분열은 [2012년 6월 2차 총선에서 특히 시리자가 낙선하고 중도우파 신민당이 승리한]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셋째, 시리자의 강령입니다. 어떤 면에서 시리자의 강령은 전환적[소위 “이행기”] 요구라고 불릴 만합니다. 긴축과 긴축을 강요하는 “트로이카”를 분쇄하자는 시리자의 강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온건해 보이겠지만, 지금의 구체적 상황에서 직접 도출되는 요구입니다.

역사를 보면, 거창한 계획을 내걸고 커다란 사회적 파열구가 생겨난 경우는 없습니다. 겉보기로는 온건하지만 대중에게 몹시 필요한 요구가 사회 구조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충족될 수 없을 때, 그런 파열구가 생겨났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사회주의를 내걸고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대중에게 당장 필요했던 평화와 토지를 내걸고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회주의 혁명의 실험으로 돼 있습니다.

넷째, 권력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전략을 살펴봐야 합니다. 말년의 블라디미르 레닌처럼 그람시는 왜 러시아 혁명 같은 형태의 혁명이 서방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그람시 전략의 핵심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관계입니다. 그람시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삶을 구성하는 조직들의 광범한 네트워크를 가리켜 “시민사회”라고 했습니다. “정치사회”는 엄격한 의미로 국가를 뜻했습니다.

대중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모두에 걸쳐 있지만 같은 비중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사회”의 조직들은 대중의 집단적 삶을 구성합니다. 한편, 국가기구들은 대중의 정치적 대표성과 실천을 구성합니다.

그람시는 그의 전략을 “진지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니코스 풀란차스와 유러코뮤니즘 전통은 이것을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민주적 사회주의]이라는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노동자 계급과 민중 계급들은 “시민사회”에서 지도 세력이 돼야 합니다. “정치사회”에 도전해 국가의 억압적 중심부를 해체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를 이끌고 진정한 권력을 잡을 능력을 줄 네트워크와 조직을 두 영역 모두에서 가져야 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민주적인 것은 모두 대중 투쟁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은 본질적으로 민주화 전략입니다. 노동자 계급과 민중 계급들이 집단적 삶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활성화하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이중권력’ 문제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됐습니다. 이 전략은 봉기를 위한 전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거의 구실이 아주 핵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은 “사회주의로 가는 선거적 길”이 아닙니다. 선거는 필수적 단계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 전략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거부하고, 정치를 의회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사회운동들을 결합하는 전략입니다. 그리스의 경험은 이 전략의 가설을 검증할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 전략에는 위험도 따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 위험들의 일부를 그람시에 한참 앞서 논의한 바 있습니다. 엥겔스는 선거에 출마해 승리하는 것을 권력에 다가가는 한 방법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정당이 전진하면 지배계급이 반혁명적 폭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법률과 헌법 질서를 먼저 위배할 주도권을 지배계급에게 내줘야 합니다.

엥겔스는 미국의 남부연합을 예로 들었습니다. 1861년 남부연합은 노예제 옹호를 내세우며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와 똑같은 반혁명적 폭력은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났습니다. 1967년 그리스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방어를 하지 않는 사회 변화 과정은 모두 대단한 것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위험은 정당이 국가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가 정당을 바꿀 것이라는 위험입니다.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이고, 자본주의의 고유한 지배 관계를 재생산합니다.

정당이 심지어는 집권하기도 전부터 이렇게 “국가화”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리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봅니다.

시리자가 성공하려면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그러나 아직 그러지 못한 전략적 영역이 한 곳 있습니다. 유럽 지배계급들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유럽 통합에 관한 담론을 바탕으로 합니다. 유럽연합 안에서 유럽연합을 바꿀 수 있다는 시리자의 믿음은 그런 담론을 강화시켜 주는 환상입니다.

유로그룹과의 회담에서 시리자가 후퇴한 것은 배신이나 변절은 아닙니다. 진정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관계기관들[트로이카, 즉 IMF·유럽연합집행위원회·유럽중앙은행]은 시리자 정부를 굴복시키고 싶었습니다. 시리자 정부는 진정한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자 정부는 잘못된 전략을 따랐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진실을 얘기해야 합니다. 시리자가 후퇴해 놓고 거의 승리할 뻔한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후퇴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장래에 더 큰 패배를 겪을 길을 마련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현실

대안적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 또는 적어도 유로존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매우 험난한 싸움들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시리자뿐 아니라 급진좌파 모두에게 힘든 싸움일 것입니다.

지금 시리자는 손발이 묶여 있고,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긴축을 받아들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파와 극우파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설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창의적이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패배할 거야. 혁명적 전위는 기다리고 있다가 민중을 승리로 이끌면 돼” 하는 식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사람들은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와 유럽의 반자본주의 세력의 미래를 건 이 결정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함께 활동하는 새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번역 박규경


노동계급의 힘을 키워 국가를 깨뜨려야 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그리스 시리자의 총선 승리는 그리스 좌파 모두의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시리자의 집권은 유럽 전역 계급투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시리자의 집권은 전략적·이론적으로도 중요합니다. 프랑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지도자였던 [고(故)] 다니엘 벤사이드는 몇 해 전 “전략의 귀환”에 대해서 말한 바 있습니다. 즉,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벌였던 위대한 전략 논쟁, 즉 1910~20년대와 1960~70년대에 벌어졌던 논쟁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논쟁에는 ‘개혁이냐 혁명이냐’뿐 아니라 다양한 투쟁들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이냐, 어떤 종류의 정당이 필요하냐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스타티스 쿠벨라키스는 시리자의 성장을 설명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특히, 그가 [미국 좌파 언론] 〈자코뱅〉에 기고한 글들이 중요했습니다.

쿠벨라키스가 내놓은 전략의 결정적 참조점은 그람시라기보다는 니코스 풀란차스입니다. 풀란차스는 1970년대 말에 등장한 유러코뮤니즘의 좌파적 버전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목표로 했고 자본주의와 단절하고자 했습니다.

이 목표는 쿠벨라키스와 시리자 내 좌파의 목표가 될 수는 있어도 시리자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리자 정부의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2년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적절히 일탈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 유럽 자본주의를 그 자신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이 말은 총선 이후 시리자가 추구한 전략을 잘 표현했습니다. 즉, 긴축은 자본가들의 관점으로 봐도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자본주의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로존을 주도하는 세력은 온 힘을 다해 우격다짐으로라도 긴축을 또 강요하려 합니다.

쿠벨라키스와 저는 둘 다 이 “관계기관들”과의 협상으로 긴축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 파산했다고 봅니다.

그러면 쿠벨라키스가 제시하는 대안적 전략은 무엇일까요? 풀란차스는 의회 안팎의 투쟁을 결합시키기를 바랐습니다. 의회 밖 투쟁으로는 특히 노동자 투쟁과 직접민주주의의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풀란차스

풀란차스의 전략은 한 가지 사실을 전제조건으로 합니다. 바로 국가는 여러 기구들이 비교적 일관성 없이 모여 있는 존재이고, 그래서 계급투쟁의 압력이 국가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풀란차스의 결론인즉, 일련의 강력한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국가의 비일관성이 커지고 국가의 일부가 노동자와 좌파의 편으로 넘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풀란차스가 활동하던 시절 프랑스 극좌파[정확히 말하면 LCR, 즉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앙리 베버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앙리 베버의 논문 한 편이 1992년 손호철 교수가 편집한 《현대 민주주의론Ⅱ》(창작과비평사)에 ‘H.웨버’라는 저자명으로 실렸다. 논문 제목은 ‘유러코뮤니즘, 사회주의, 민주주의’이다.] 베버가 동의한 것도 있었는데, 국가 안에 모순이 있고, 좌파는 교사나 공무원처럼 국가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버는 이렇게도 주장했습니다. 커다란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언제나 “국가기구의 핵심부는 오른쪽으로 기울고”, 이를 배경으로 [노동자 계급의] “힘을 가늠할 시험대”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새 국가의 기초가 될 강력한 대중 투쟁과 조직들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베버는 나중에 온건하기 이를 데 없는 개혁주의자[정확히 말하면 사회당 소속의 유럽의회 의원]가 됐지만, 당시 그가 했던 말은 옳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배할지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시리자와 유로그룹의 2월 20일 합의를 보면 정확히 베버가 말한 일이 벌어진 듯합니다.

그리스에서는 (터키와 라틴아메리카에서처럼) 국가의 핵심 억압기구인 경찰·군대·정보기관을 “심층 국가”라고 부릅니다. 심층 국가는 아주 흉측한 자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그리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에 부역했고, [1946~49년] 내전 때는 왕정을 위해 추악한 짓을 했고, 그 뒤 [1967~74년] 군사정권 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리스 국가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심층 국가와 연계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선거로는 황금새벽당이 분쇄되지 않았습니다.

시리자가 우파인 그리스독립당과 연정을 꾸린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당시 쿠벨라키스도 이를 비판했습니다. 우리 편이 “책략을 부리고” 수완 좋게 행동하면 적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유혹은 늘 있게 마련인데,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는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전통적 우파 및 “심층 국가”와 연계돼 있는 제5열[적과 내통하는 집단]을 정부에 끌어들이는 것은 수완 좋은 처사가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적대 세력에 맞서는 데서 시리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대중 운동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좌파 정부들은 운신의 폭을 줄인다는 이유로 대중의 독립적 운동을 자제시키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2012년 초 이후 대중 투쟁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정서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단지 파업을 벌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시리자가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리자가 집권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사회 부문에서 정치 부문으로 옮겨가야 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총파업을 32번이나 했는데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하루짜리 파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무기한 총파업처럼 더 높은 수위의 투쟁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매우 다른 동역학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그런 투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혁명적 세력은 그런 투쟁을 일으킬 만큼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 뒤 그리스는 선거적 길을 따랐습니다. 때때로 선거는 새로운 층의 대중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좌파 정치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시리자의 승리는 그리스의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회집단들의 아주 큰 부분이 정치적으로 뚜렷이 각성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시리자의 승리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의 하나입니다. 이는 선거 정치를 일축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각종 “반(反)정치” 주장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도 보여 줍니다.

오늘날 급진좌파에게는 노동자와 천대받는 집단이 스스로 조직하고 행동에 나설 능력을 키우도록 고무할 책임이 있습니다.

시리자 좌파 계열의 인사들이 장관이 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거 영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토니 벤은 1974~79년 노동당 정부에서 중요한 장관직을 맡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포로가 됐습니다.

대안

후퇴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습니다. 쿠벨라키스 등도 분명히 밝혔는데, 바로 유로화를 버리고 은행을 국유화하고 자본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처를 시행하려면 유럽 전역의 긴축 반대 운동과 노동계급의 지지가 절실합니다. 그런 지지를 이끌어 내려면 어떤 후퇴에도 반대해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며 공개적인 정치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좌파가 시리자에 합류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르시아라는 독자적인 연합체를 구축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안타르시아는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리자 내의 반자본주의자들이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그들은 시리자의 후퇴에 반대해 싸울까요?

일반적 차원에서는 쿠벨라키스가 말한 그람시의 전략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주도권”을 그들[지배계급]에게 넘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완전히 반대합니다. 그리 되면 그들은 좌파 정부를 파괴하려고 세력을 규합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 바깥에서 유로그룹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파와 지배계급이 시리자가 후퇴하고 약해진다는 신호를 감지하면 그리스 안에서도 그런 시도가 벌어질 것입니다.

1973년 칠레의 비극도 그랬습니다. 당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그들에게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당시 쿠바 대사는 아옌데에게 경고했습니다. “저 나쁜 놈들이 당신을 무너뜨리려 한다. 당신은 당신 편의 무장 세력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옌데는 헌법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환상에 빠져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아옌데는 상대방을 분열시켜 그중 ‘진보적인’ 부분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 ‘진보적인’ 부분에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를 살해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미국 노예 소유주들의 반란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엥겔스는 당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런 반란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예 소유주들은 수도 워싱턴을 거의 함락시킬 뻔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우리가 되풀이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시리자가 이미 실패한 정부라도 되는 양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지금은 투쟁의 서막일 뿐입니다. 상대방이 1라운드에서 승리한 지금, 급진좌파는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이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공격을 재개하려면 유럽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합니다. 이 점에서 쿠벨라키스와 저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1백50년에 걸친 혁명적 투쟁의 역사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교훈을 배우려 해야 한다는 점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람시의 전략을 잘 적용하면 우리는 국가의 억압적 핵심부를 깨뜨릴 세력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쿠벨라키스가 〈자코뱅〉에 쓴 글 중에는 ‘시리자의 마법 방정식’이라는 제목이 달린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법 방정식은 없습니다. 오직 자본의 논리와 계급투쟁의 논리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매우 중요한 국면에서 좌파의 임무는 이 점을 선명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노력과 조직력을 집중해 그 현실을 바꾸려 애써야 합니다.

번역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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