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파 정부가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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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사고의 원인과 배경, 무능하고 무책임한 구조·수습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맞닿아 있다.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은 이윤을 위해 객실을 늘리는 무리한 증축을 했고,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 이런 요인들 탓에 배의 복원력이 크게 나빠졌다.
직원 안전교육에는 인색한 청해진해운이 접대비에는 아낌없는 돈을 썼다. 청해진해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윤 경쟁 체제 자체가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한다. 이 때문에 이 체제에서 정경유착, 부패와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체제는 소수 권력자에게는 이득을 보장하지만 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안전과 생명의 위협이 된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보여 준 비극적 교훈이다.
또한,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충격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해경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밝혀진 사실만 봐도 해경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다. 구조대는 헬기가 없어 배가 가라앉은 뒤에야 도착했다. 서해 해경의 특공대는 민간 어선을 타고 2시간 뒤에 왔고, 해경 특수구조대는 김해공항, 목포공항을 거쳐 신고 5시간이 지나서 현장에 도착했다. 해경은 수색이 용이한 물때에는 정작 잠수를 시도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주제에 해군, 경찰, 미군의 도움도 죄다 거절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일부로서 안전예산 삭감과 규제완화가 이 비극의 또 다른 배경이 됐다. 세월호 사고 직전에, 박근혜 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인명구조, 선박 좌초 전복 대처 등을 하던 부서)를 없애버렸다. 안전 장비와 구조 훈련에 돈을 안 쓴 것은 당연했다. 이런 국가에서 설사 사고는 우연이라 해도 참사는 필연이었던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기업 규제마저 “쳐부술 원수”로 보는 박근혜가 자본가 계급 정치조직의 수장인 상황에서 구조 실패는 국가 시스템상 준비된 무능이었다. 자본의 축적 드라이브와 국가의 무책임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는 운 나쁜 사람들의 우연한 불행이 아니다.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불행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에서 국가 운영 전반과 사회의 우선순위가 기업 이윤 추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윤이 영순위인 체제에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낭비로 취급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선박 안전 등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선박 운항이 경쟁 체제이므로 참사 이후에도 안전을 위한 여러 조처들은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박근혜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에서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 …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했다.
지난 4년간(2011년~14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수는 7천5백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기업’이 문을 닫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날 담화에서 박근혜가 흘린 눈물을 누구도 믿지 않듯이 말이다. 그가 단지 악독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한국 자본주의의 정치적 수장이어서다.
요컨대, 세월호 참사는 이윤을 가장 앞세우는 자본주의의 우선순위가 낳은 비극이다. 노동계급의 고유의 힘, 즉 이윤 생산을 멈추는 ‘파업’은 일상적 시기에 지배자들을 물러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 효율보다 안전을 지키는 총파업을 벌이는 것이 노동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한 민주노총의 방침이 말처럼 진행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