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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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시애틀 시위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실 가운데 하나는 그 운동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정치적 급진화의 거대한 물결은 수많은 청년들을 이런저런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로 이끌었다.
오늘날 반자본주의 운동의 주요 대변자들―나오미 클라인, 아룬다티 로이, 수전 조지 등―은 모종의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사용한다. 특히 자본주의 개념이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전반적인 지적(知的) 틀은 특별히 마르크스주의에 빚지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정치적 격변은 좌파의 패배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그 상징은 마거릿 쌔처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옛 소련의 붕괴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불신은 더 심해졌다.
이것이 뜻한 바는, 1990년대 후반기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인 이데올로기 공백 속에서 발전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운동들을 건설한 많은 활동가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베테랑들이었다. 과거에 한바탕 혼이 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논쟁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럽다.
물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건설을 지지해 왔다. 예컨대, 국제사회주의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그 자매 단체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오늘날의 투쟁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싸워야 했다. 여러 점에서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만하지 못하게 한다.
더욱이, 30년 전에 마르크스주의로 알려졌던 것은 대부분 옛 소련의 스탈린주의 억압 통치를 사회주의의 모델로 여겼다. 이런 종류의 사상은 대체로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분명한 조짐이 있다. 내가 지난 주말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것은 런던에서 열린 “자본, 제국, 혁명”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그 토론회를 주관한 두 정기간행물은 서로 매우 다르다. 하나는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인데, 이 잡지는 1956년 국제 공산당 운동이 처음으로 위기에 빠진 이후 등장한 옛 신좌파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 가운데 하나다.
두번째 정간물은 〈역사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인데, 이 정간물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젊다. 1990년대 말에 창간된 이 정간물은 주요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이론적 논쟁의 장으로 순식간에 발전했다.
〈역사 유물론〉은 그 토론회를 적은 돈으로 준비했고 오직 인터넷으로만 홍보했다. 그러나 그 토론회는 엄청나게 성공적이었다―2백50명이나 등록한 것이다.
빡빡한 일정의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압도 다수는 청년들이었다. 유럽, 북아메리카, 인도 출신의 연사들이 나눠 준 발제문들은 아주 수준 높은 것들이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이나 마르크스의 노동가치 이론에 관한 전체 토론회들이 있었다.
아이작 도이처와 타마라 도이처 기념상을 공동 수상한 닐 데이빗슨(Neil Davidson)과 베노 테슈커(Benno Teschke)가 현대 자본주의의 정치적 틀을 창출한 위대한 부르주아 혁명들에 대해 논쟁했다.
그리고 〈소셜리스트 레지스터〉가 주최한 제국주의에 관한 마지막 심포지움에서는 특히 토니 벤, 엘런 우드, 피터 고원, 리오 패니치(Leo Panitch)(〈소셜리스트 레지스터〉의 편집자)가 한데 모여 현재의 세계 위기에 대한 그들의 상이한 입장을 들려 주었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토론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였다. 내가 좌파 학계의 토론회에서 그런 느낌을 가져 본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격변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지적(知的)으로 개입해야 하고, 그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키려면 마르크스주의 정치 조직도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