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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탓에 임금과 노동조건이 악화되는가?

주류 언론은 중국 동포나 아시아 출신 이주민에 대해 자주 비난을 쏟아 낸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이주민이나 외국인을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언론은 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 한국 국적 취득에 혈안이 된 듯 묘사한다. 하지만 최근까지 해마다 2만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해외로 이주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제3세계 출신 이주민들을 비난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는 더 효과적인 착취를 위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과 사장들은 이런 속내를 솔직히 얘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혹할 만한 말을 한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것이다. 그러면 사장들은 임금이 더 높은 내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임금이 떨어질 것이다.’

조직 수준과 투쟁력이 더 결정적 요인이다

이런 ‘상식’은 실질적 근거가 없다. 이주민 유입이 임금이나 실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여러 연구에서 거듭 밝혀졌다.

1990년대 중반 OECD는 이주민 유입과 실업률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이주민 유입이 가장 적은 나라들에서 가장 높았고, 이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들에서 가장 낮았다. 어떤 연구들은 이주민 유입이 오히려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린다고도 지적했다. 2003년 영국 내무부는 이주민이 1퍼센트 증가하면 비(非)이주민의 임금이 약 2퍼센트 증가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현실을 봐도 이주민 유입과 임금의 등락에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 만약 이주노동자 유입이 임금을 낮춘다면,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이 취업하는 제조업의 중소기업과 건설업에서 임금이 가장 낮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부문은 요식업·숙박업 등 민간 서비스 부문이다. 서비스 부문은 다른 부문보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훨씬 적다.

이주민 유입보다는 경제 상황이 임금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물론 호황일 때도 사장들이 알아서 임금을 올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쟁취하기가 비교적 쉽다. 반대로 불황 때는 임금을 인상하기 더 힘들 것이고 심지어 삭감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장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되도록 적게 주려고 한다. 어떤 기업이 더 낮은 임금으로도 기꺼이 일하려는 노동자를 고용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임금이 계속 낮게 유지되면 이주노동자가 많은 부문에서는 내국인 노동자 임금도 하락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장들의 이윤 경쟁 논리가 진정한 문제다.

건설업에서 임금을 둘러싸고 전투가 벌어지지만, 그것은 이주노동자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건설 사장들이 보건·안전 규제와 세금을 피하려고 광범한 하청 제도를 도입해 일용직·임시 노동자를 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 하락 압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임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은 노조 조직화 수준 같은 노동자들의 저항 능력에도 크게 좌우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종업원 1백 인 이상의 중·대규모 사업체들 중 노조가 있는 경우 평균 임금이 최소 2.1퍼센트에서 최대 12.1퍼센트까지 더 높았다.

실제로 한국 건설업에서 토목·건축 분야는 노조 조직률이 1퍼센트도 안 되지만, 노조의 존재가 끼치는 영향은 크다. 건설노조가 임금 교섭과 투쟁을 벌여 온 덕분에, 조합원은 비조합원보다 임금이 더 높다. 또, 한 지역 노동자들이 잘 싸워 임금을 크게 인상시키는 것이 다른 지역 노동자들에도 좋은 영향을 주곤 했다. 노조 조직률이 더 올라가면 그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쿼터 실질화나 사용자 처벌 등은 대안이 못 된다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이민 통제 조처들은 이주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받도록 강요한다.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자국에서 한국의 고용주와 근로 계약을 체결해야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가 더 나은 임금을 요구하기는 불가능하다.

한국 생활에 적응한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이 좀 더 높은 곳으로 이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이유로 직장을 변경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열악한 조건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고용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수를 제한하는 쿼터제(이주노동자 고용 할당제)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사장들이 이주노동자를 쿼터로 정해진 수보다 많이 고용하면 ‘불법’이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취업하려면 그런 ‘불법’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임금 체불을 당해도 신고하기 어렵다. 강제추방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불법 고용’ 사업주들의 처벌 강화도 지지하기 어렵다. 위험 부담이 더 커졌다는 이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열악한 조건이 강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6년 미국의 고용주 제재 방안이 바로 이런 효과를 냈다. 또, 이런 단속이 강화될수록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하려면 사용자와 손잡아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노동시장 유연화 노력과 이주노동자

이민 통제 조처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묶어 두는 구실을 하고, 사장들은 이를 이용해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임금 삭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사실 사장들은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실업자나 일용직 노동자 등 처지가 비교적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을 이용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비용을 줄이려고 애쓴다.

마르크스는 사장들의 이런 노력을 “산업예비군” 개념으로 설명했다. 오직 자본을 위한 노동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실업자와 구직자는 “잉여”가 된다. 산업예비군은 임금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끼리 싸우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원치 않으면, 그 일을 할 누군가는 언제나 있다.” 사장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이런 이간질이 먹혀 노동자들이 분열한다면 사장들이 전체 노동자를 공격하기 더 쉬워진다. 이는 1970년대 미국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은 지역일수록 백인 노동자들의 소득도 낮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 배척 정서가 팽배해 이주노동자의 임금이 계속 낮게 억눌린다면, 내국인 노동자 임금도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단결을 구축하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국제 노동운동의 경험으로 보는 노동자 단결의 필요성

역사를 보면, 이주자와 내국인의 단결을 구축하는 데서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대 영국노총(TUC)는 ‘유대인이 임금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며 1892년부터는 정부와 사장들에게 이민자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영국 유대인 노동자들은 반대 운동을 벌였고, 좌파들도 영국 노총의 잘못된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좌파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딸이자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엘리너 마르크스의 집회 연설문을 소책자로 발행했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직물 산업에서 임금이 낮은 이유는 유대인 재단사들 때문이 아니라 이윤 축적을 바라는 직물 산업 사용자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리즈 지역에서 유대인 재단사들이 파업을 벌인 것도 중요했다. 이 파업은 인종차별적 거짓 선동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생활조건에 대한 공격에 맞서 노동계급이 단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제2차세계대전 말에는 폴란드 노동자 수천 명이 영국 광산으로 유입됐다. 당시 영국 노동운동 내 우파는 폴란드 광원들에 대해 쿼터제를 시행해야 하고, 일하고 싶은 영국인이 있다면 폴란드인들이 해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대해 좌파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며 운동을 벌였고, 승리했다. 폴란드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광원 노동자들은 주5일 근무제를 쟁취했다.

다행히 오늘날 영국의 여러 산별 노조들은 동유럽 출신의 새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 초 해외 인력 수입 움직임이 있자, 한국노총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은 이주노동자 유입에 반대했다. 2003~04년 강제 추방과 고용허가제에 반대해 이주노동자들이 벌인 처절한 투쟁은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 투쟁을 벌인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 투쟁을 거치며 한국 노동운동은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동성당 투쟁에서 노동운동 좌파들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후 금속노조와 건설노조 일부에서 이주노동자가 조직되기 시작됐다. 이주노동자를 노조로 가입시킨 몇몇 노조들은 사측이 이주노동자를 파업 파괴자로 투입하는 것을 차단하며 사측의 분열 시도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우리 모두의 노동조건과 임금 향상을 위해, 그리고 자본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해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노동운동의 단결 투쟁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