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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불법 사찰 의혹 또 터지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한국 국가정보원이 불법 수단으로 수년 동안 광범하게 민간인 사찰을 해 왔다는 정황 증거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를 분석해 언론들이 폭로한 사실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이탈리아 기업 ‘해킹팀’한테서 구매한 프로그램으로 2012년부터 국내 사찰을 해 왔다. 해킹팀은 각국 정부들에게 반정부 세력 감시 기술을 판매해 악명 높은 곳이다.

국정원은 2010년에 ‘나나테크’라는 업체를 통해 해킹팀과 접촉한 뒤 2012년 초부터 해킹 프로그램 ‘다빈치’를 구입해 본격적인 공작을 펼쳐 왔다. 국정원은 최근까지도 추가 기술 보완 등 애프터서비스를 받아 왔다. 2014년에는 지방선거에 대응해 TNI라는 새 프로그램을 무료로 시험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와이파이에 접속만 해도 스파이웨어가 심어지는 기술이라고 한다.

안보? 국정원은 정권 안보만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적을 감시·통제하려는 기구다. 따라서 이윤 논리에 도전하는 노동운동과 좌파는 항시적 감시 대상이다.

반민주 부패 스캔들

국정원이 구매한 해킹 기술은 스미싱 등 교묘한 방식으로 감시 대상의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스파이웨어를 심어서 감시 대상자는 모르게 감시자가 해당 기기를 아예 원격 조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내 스마트폰으로 감시자가 나를 찍고 내 말을 녹음해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끔찍한 기술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정보기관(감시기관)이라 할지라도 사용이 금지된 기술들이다. 이 반민주적·불법적인 감시를 위해 쓰인 (현재까지 파악된) 예산이 3년간 8억 6천만 원이다.

국정원이 이런 불법 해킹 기술을 검토·도입한 2011~12년은 이명박 정부가 정권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걱정하던 때였다.

이때가 바로 원세훈의 국정원이 앞장서서 군부를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국가기관들을 ‘정권 재창출을 위한 총체적 정치공작’에 동원한 때였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임기 초부터 위협한 국가기관들의 대선 불법 개입 스캔들이었다. 국정원의 불법 해킹 공작도 이런 공작의 일부로 시작했을 것으로 의심된다. 우파 결집을 위한 보도 통제,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 협박 분열 공작 등을 위해 이런 감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내국인이 주로 쓰는 삼성 갤럭시 폰, 카카오톡의 메신저와 게임 등의 해킹을 의뢰했다. 스파이웨어를 심으려고 보내는 메일, 문자 등의 ‘낚시’에는 국내 맛집 정보 링크나 영화 무료 보기 무료 앱 등이 이용됐다.

또한 천안함 폭침설(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 이견을 제시한 재미동포 학자가 스파이웨어 침투의 표적이었다는 것도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2014년에는 ‘예산 삭감 때문에 새 프로그램을 구입하지 못하니, 기존 구매품의 업그레이드만 요청했다’고 한다. 2013년 국가기관 대선 개입 항의 촛불 운동 등의 여파 때문인 듯한데, 실제로 예산이 줄어든 부서는 대선 개입과 직접 연관된 국내 파트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간첩 감시를 위해서라는 변명이 거짓말이고, 국내의 정부 비판 세력 감시가 주 목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해킹 프로그램 확충과 보완도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전국 선거와 시기를 같이한다.

한마디로 이번 스캔들은 우파 정권 연장을 위해 국가예산을 불법으로 써서 반민주적 공작을 벌인 전형적인 ‘반민주 부패 사건’인 것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도 중요하다

선거를 앞두고 우파 정부가 벌인 불법 해킹 감시 공작의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기성 정치권이나 국가기관 내 정적들부터 노동운동까지 다양했을 것이다.

정치적 반대파 개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는, 그것이 들키지 않는 조건에서는 정권과 기성 체제에 비판적인 의견의 형성, 확산 등을 통제하고, 협박과 분열 시도를 통해 정치적 반대파를 와해시키는 공작의 1단계 조처다. 설사 들키더라도,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체제 비판적인 의견들의 소통은 위축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피억압자들의 연대와 단결에도 해를 끼친다.

한편, 지배계급 내 정적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감시 공작을 더 잘 알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를 피할 수단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기관의 전방위적 감시 공작으로 진정 위협 받는 것은 경제 위기 시대에 정권의 강력한 반대파(야당) 구실을 해 온 노동자·민중 운동과 그 운동에 참여하는 개인들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야말로 우파 정부로서 경제 위기를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려고 온갖 수작을 벌이고, 이를 위해 민주적 권리를 후퇴시키려고 노골적으로 몸부림쳐 온 정권 아닌가. 그러니 한국 국가기관들 중에 국정원 말고도 해킹팀에 관련 기술 구매를 의뢰한 곳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따라서 조직 노동운동이 자신들의 투쟁 의제에 이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 국정원, 나나테크, 전현직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이명박과 박근혜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친정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잘 다루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7월 16일 대법원은 이 공작의 주범 중 하나일 원세훈의 2012년 대선 개입을 인정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뒤집었다(파기환송).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영장 발부,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 구속 등 공안 통치를 강화하고 싶어 하는 박근혜 정부에게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이다.

‘해외 첩보’가 아니라 ‘내부의 적’ 감시가 그들의 진짜 목적

2013년에 ‘국경없는 기자회’는 독재 정권에 감시 기술을 판매하는 “인터넷의 적 기업들”을 발표한 바 있다. 감마(영국), 트레비코르(독일), 아메시스(프랑스), 블루 코트(미국) 등과 함께 5대 적대 기업으로 꼽힌 것이 국정원이 거래한 ‘해킹팀’이다.

당시 외신을 인용해 보도한 한 매체는 ‘해킹팀’이 “원격으로 PC에 있는 마이크로폰과 카메라 등을 작동시켜 전 세계를 감시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지디넷코리아〉)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해킹팀’에게서 구입한 것도 바로 이 해킹 기술(RCS)이다.

자본주의의 첨단화가 의미하는 바는, 이런 민간인 감시·통제 기술도 상품화해 상업 거래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객은 누구일까? 이번에 폭로된 ‘해킹팀’의 거래 목록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 바레인 등 독재 국가들의 정보기관도 포함돼 있다. 표적이 된 개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이런 끔찍한 기술이, 그것도 국가기관들을 고객으로 공공연히 거래되고 독재 정권에게까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가기관들의 해킹 기술 구매가 한국 국정원의 해명처럼 해외 첩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서일까?

오히려 이런 기술을 해외에서 몰래 구매하는 것은 구매 목적이 해외 첩보가 아니라는 방증일 수 있다. 해외에서 이런 기술을 거래하는 것은 각국 기관들이 상대 국가기관들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해킹 정보가 ‘해킹팀’으로 역유출됐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중요 고객”

‘해킹팀’은 “SKA(국정원의 위장 명칭)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동아일보〉)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고 한다. 국내법이 금지한 이런 기술을 법과 질서를 지킨다는 국정원이 나서서 거래한 것만 봐도 국정원 같은 기관들의 목적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해외 첩보를 위한 것이란 말이 새빨간 거짓말인 이유다.

국정원의 역사가 그렇다. 국정원은 옛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가 이름만 바꾼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의 친위부대로서 강탈 등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만들고 부정선거, 유신헌법, 감시·고문을 저질렀다. 중앙정보부장 출신인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뒤 간판을 바꿔 단 안전기획부도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참여자들을 납치·고문·살해했다.

물론 지금은 노동운동의 진전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대돼서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거나 고문, 납치 등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주된 업무는 정권과 기성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이라는 점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위기에 대한 기층의 저항이 드세질수록 이런 공작은 더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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