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고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이 아닌 이들이 있고
아직도 밝혀지지 못한 진실은
지쳐 잠들어 있고
책생이 있고 의자가 있어요.
- 8월 22일 ‘기억과 약속의 길’과 함께하는 열두 번째 낭독회 중에서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이 내 아이와 내 친구를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 있다. 영원히 2학년인 학생들의 흔적은 이제 ‘명예 3학년’ 교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명예 3학년’ 교실에는 앉아서 때로는 졸기도 하고 공부도 했을 의자와 책상,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이 적힌 판넬, 아이들이 신고 달렸을 슬리퍼, 문제 푸느라 머리 싸맸을 서랍 속 문제집, 의자에 걸쳐 있는 교복 자켓, 책상에 손 글씨로 남긴 낙서들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교실에는 5백일 동안 하루 하루 아이들과 선생님을 기다리며 많은 이들이 남긴 그리움이 쌓여 있다. 아이들이 생전에 즐겨 먹던 과자와 음료수가 수북히 쌓여 있다. 칠판과 교실 곳곳엔 기다림, 그리움, 분노 그리고 다짐의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수업 땡땡이 그만해요” – 단원고 학생
“지금 사고난 지 60시간이 넘어가지만 살아서 돌아올거라 믿어요. 정부는 언론 조작이나 하지만 구조원 분들은 여러분을 구출해내고 싶어할 겁니다" - 송호고등학교 학생
"아들 사랑해.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울 아들은 엄마 꿈에도 안 오네. 아가야 오늘은 꿈 속에 놀러와" – 단원고 2학년 8반 승민이 어머니
“제발… 저희 대학 소식 더 전해드릴게요. 선생님 저희랑 술도 마셔야죠. 술 사주신다고 약속했잖아요. 선생님 안 지켜도 되니까 살아서 돌아와 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단원고 학생
"우리 아들아, 엄마는 지금 순범이 책상에 앉아서 우리 아들 순범이를 생각해본다. 이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구나. 사랑하는 우리 아들 막둥아 보고 싶구나. 우리 아들 웃음 소리가 너무 그립구나" - 단원고 2학년 6반 순범이 어머니
“눈 먼 나라에서 눈 먼 국민이 되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더 싸우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 대전의 한 교사
이 공간은 내년 1월이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경기도 교육청이 내년 1월 희생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 이후에는 교실을 없애겠다고 밝힌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제 아이들의 작은 흔적이 남아 있던 공간마저 빼앗기게 됐다.
‘지우려는 자’에 맞서 기억하려는 싸움, ‘감추려는 자’에 맞서 밝히려는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위로를 받아도 모자란 지난 시간 동안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잠도 청해보고, 곡기를 끊어도 보고, 최루액으로 눈물을 씻어내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별이 된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지, 끝날 때까지 끝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5백 일이 다가오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아직도 5백 일 전처럼 단원고에, 광화문에, 팽목항에 서 있다. 세월호 5백 일,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던 우리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