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 대학 정책에 맞서 학생·교수·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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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부산대 인문대 교수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반대하며 투신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배경에는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이 있다.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국공립대의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고 국립대 재정회계법을 추진해왔다. 정부가 총장직선제 폐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공립대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다.
올해 3월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립대 재정회계법은 국립대 등록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법적 기성회비를 합법화시키고 적립금 축적과 수익 사업을 허용하는 등 국립대를 법인화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깊다. 이는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줄이고 대학 전반을 기업의 입맛에 맞게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려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 8월 31일에는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의 대학은 A~E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발표됐고, 하위그룹인 D·E 등급 대학에 4년제 대학 32개교, 전문대 34개교 등 총 66개 대학이 포함됐다. 하위그룹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일부 제한을 받고 정원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앞으로 이들 대학은 3년간 컨설팅을 통해 학사구조 개편 등 강력한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E등급 대학들은 평생학습시설이나 직업교육시설 등으로 기능 변환 등 퇴출까지 고려된다.
책임 전가
이번 평가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완전히 방기한 것이다. 하위그룹에 속한 대학 대부분은 지방의 사립대학들인데, 부정비리와 저투자로 대학을 부실하게 만든 사학 법인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오히려 애꿎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떠넘기고 있다. 교육 부실의 책임이 전혀 없는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제한 받고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부정비리 사학들은 대학을 정리하면서 잔여재산을 ‘먹튀’ 할 수 있게 된다. 학교법인이 자진해산할 경우 학교법인의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되돌려 주고 이때 증여세 등도 면제된다. 또, 대학 퇴출시 대학의 잔여재산을 국가로 귀속시키지 않고 공익·사회복지 법인 등으로 전환해 사학법인이 가져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대학이 교육용 재산을 수익용 재산으로 전환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마디로, 낮은 투자로 대학을 부실하게 만들고 고액 등록금으로 배를 불려 온 사학법인들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실 사학들에게 먹튀를 허용하고 국고를 축내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상지대, 청주대, 서남대 등 비리재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에서 비리 사학재단들의 횡포가 더 심해질 것이다.
여러 교육단체들의 비판으로 최근 새누리당은 이 법안을 일부 수정했다. 대학 퇴출 시 사학재단이 잔여재산을 회수할 수 있는 비율을 약간 낮추고 학생 정원에 외국인 학생을 포함시켜 정원 부족을 우려하는 지방대학들을 좀 달래겠다는 정도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법안의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교육부 대학 평가에는 국립대 법인화 시도도 드러난다. 하위그룹 대학에 심지어 강원대 같은 지역거점국립대도 포함됐다. 정부가 직접 학교 운영비를 책임져야 하는 국립대에 D 등급을 준 것은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가 단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런 정원 조정이 아니라 재정 긴축의 일환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28개 국공립대의 절반 가량인 13개교가 B등급을 받았고 2개교가 C등급을 받은 데서도 다시 확인된다. B~C 등급은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학생 수가 감소하면 정부 지원금도 줄어들 것이다(A 등급 이외의 모든 대학이 차등적으로 정원을 줄여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국공립대 정원을 감축해 정부 지원금을 줄이고 이후 법인화하려는 계획을 드러낸다.
구조조정으로 고통받는 교수, 학생, 노동자들
정부의 대학평가는 대학을 교육의 장이 아니라 기업의 사원훈련소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미 대학 곳곳에서 비인기 학과(주로 인문, 예술계열) 학과 통폐합, 학사관리 엄정화 및 상대평가 강화, 지표 개선을 위한 온갖 왜곡과 편법, 평가기관에 대한 로비 등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이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대학 간 불평등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 정책은 그동안 명성이 높은 ‘상위권’ 대학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하는 식이었다(2012년 교육부가 사립대에 준 국고보조금 총액의 40.4퍼센트가 상위권 10개 대학에 집중됐다). 이런 차등 지원책은 노동계급과 서민 자녀들이 훨씬 더 많이 다니는 ‘중·하위권’ 대학에 더 큰 구조조정 압력을 가한다.
대학 구조조정 때문에 교수, 학생, 노동자들은 이미 고통받고 있다. 퇴출되는 대학의 교수, 교직원, 학생들은 하루아침에 다니던 직장과 학교를 잃게 된다. 특히 교수와 교직원들은 고용승계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퇴출되는 대학의 학생들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2012년 이후 폐교된 대학의 학생 중 44퍼센트만이 인근 대학으로 특별편입학을 했고, 심지어 편입한 대학도 퇴출 위험에 처해 이중고를 겪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폭로됐다.
이미 학과를 통폐합한 대학에서는 해당 학과 교수들이 사실상 우회적 방식으로 퇴직을 종용받고 있다. 또 중앙대 사례를 보면 학과 통폐합을 겪은 학생들은 수업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폐과된 학과의 재학생들은 기존 학과 수업이 제대로 개설되지 못해 고통받았다.
굳이 대학이 퇴출되지 않아도 이미 시간강사들은 대량해고되고 있다. 대학들이 정부의 대학평가 지표인 전임교원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소수의 강의전담교원(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그들에게 강의를 몰아주는 대신 훨씬 많은 수의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전국적으로 시간강사의 일자리는 1만 5천 명 분이 줄어들었다. 명예퇴직을 당한 교수가 비정규직 교수로 다시 채용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재정 압박을 근거로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나 조교들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은 결국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고 그 피해는 또 학생들이 받게 될 것이다.
불가피한 정원 조정?
정부는 2018년부터 대학 입학 정원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대학 구조조정 강요를 정당화한다. 이런 강제적 정원 감축으로 2023년까지 입학 정원 28퍼센트를 줄일 계획이다. 1백10여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정원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정부와 우파뿐 아니라 〈한겨레〉 같은 자유주의 언론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줄어들어도 대학을 운영할 재정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학령인구 감소가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으로 이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한국의 대학이 사립대학 중심으로 학생들의 비싼 등록금에 의존해서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생 정원이 줄어드는 것이 곧 대학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학생 수가 감소해도 대학 재정이 충분하면 교육 여건이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턱없이 낮은 재정 지원과 부실 사학이 많은 한국의 대학 시스템에 있는 것이지, 학령인구 감소 탓이 아니다. 학생들이 많이 선호하는 국공립대도 정부의 정원 감축 대상이 된 것도 이 점을 보여 준다.
대학을 기업의 필요에 종속시키기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지원을 축소 또는 ‘효율화’하는 한편, 대학 교육을 기업의 수요에 맞추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공계 정원을 늘리면 지원금을 주는 정책이나 취업률 평가, 산학협력 강화책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모든 대학과 학과에서 산학협력을 하고 현장실습을 떠나거나 영어강의·프리젠테이션 중심의 교육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취업 중심으로 4년제 대학의 구조조정을 압박하다 보니 전문직업인력 양성기관인 전문대는 그나마 있던 기초교양과목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경기도 소재 한 전문대 교수는 “상징적으로나마 있었던 ‘대학국어’ 같은 기초과목을 없애고 배꼽 인사하기, 미소짓기 등 특정 서비스분야 학과에서 이뤄지던 교육을 ‘교양’으로 대신하고 있다”며 “이젠 전문대에서 기초교양교육은 무용지물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진학률을 억제해 청년들에게 저질 일자리를 강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기도 한다. 경제 위기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안정적인 일자리도 공격해야 하는 지배자들은 청년 실업의 원인을 대졸자들의 ‘눈높이’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면서, ‘중소기업 인력 미스매치(불일치) 해소’를 목표 중 하나로 내놨다. 기업들이 원하는 고급 인력에 비해 대학 졸업자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임금 인상 요인을 키우고 대졸 실업률을 높여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대학진학률이 높은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고등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비대학졸업자는 대학졸업자에 견줘 임금이 56퍼센트나 낮고 불안정한 저질 일자리를 전전하고 일상적 차별에 시달린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대졸자의 눈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정부와 기업에 있다.
대안
따라서 정부는 청년 실업의 책임을 엉뚱하게 대학에 전가하며 기업식 구조조정을 강요할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고등교육 재정 정부 지원 비율을 대폭 끌어올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부실한 사립대학은 재단을 퇴출시키고 국립화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 수요’ 운운하며 대학이나 학과별로 재정을 차등 지원하지 말고 모든 학생들이 균일한 교육 여건을 누릴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균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부유층과 기업들한테 세금을 걷어서 마련해야 한다. 등록금을 없애고 무상교육을 실현하려면 최대 14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미 사립대학들이 누적적으로 적립한 돈이 12조 원에 육박한다. 또 최근 상위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9년 2백88조 원에서 2013년 5백22조원으로 4년 만에 2백34조 원이나 증가했다. 국내총생산의 36퍼센트에 이르는 규모다. 이런 돈을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고,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교육 정책으로 고통받는 대학 구성원들간의 단결된 대응이 필요하다.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국립대와 사립대 간의 차이를 넘어 교수, 학생,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