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임금·노동조건 양보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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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위선적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임금피크제 도입, 해고요건 완화 등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질 좋은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실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여 일감을 나누면 그만큼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은 옳다. 한편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는 건 불합리하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들은 2012년 현재 OECD 평균보다 연간 3백27시간, 41일을 더 일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노동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주당 40시간 이상을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훌쩍 넘는다(54.3퍼센트). 법정 초과한도를 넘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5명 중 1명 꼴이다(3백57만 명, 19퍼센트).
따라서 민주노총의 제안처럼, 적어도 현행법 수준으로 휴일근무를 포함해 연장근무 시간을 주 12시간으로 제한해야 한다.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특례조항도 없애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연간 새로운 일자리 62만 개를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 노동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제한하면, 새로운 일자리 1백5만 개를 만들 수 있다.
국내외 경험들을 봤을 때, 주당 1~2시간처럼 작은 폭의 노동시간 단축이나 단계적 노동시간 단축은 새로운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늘리지 못한다. 일시에 대폭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져야 하고, 법적 강제(법정 노동시간 단축)가 뒷받침돼야 한다. “수년 내에 법정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지적이 타당한 이유다.
또,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임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이므로,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투잡의 고통에 빠질 수 있다.
새정치연합의 정규직 노동시간 양보론
그런데 최근 새정치연합은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서 ‘대기업 정규직 양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은 청년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하며, “먼저 대기업 노동자가 청년·비정규직에게 노동시간을 양보”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줄어든 노동시간만큼의 임금 삭감을 전제한 것이다. 이들은 임금피크제 자체는 반대하지 않은 채 ‘노사 자율’ 시행만 말하거나, 공무원-교사의 연금을 깎은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노동시장 개혁에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의 손을 잡는 척 하면서 실상은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편드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대기업 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일자리 창출을 꾀하겠다고 하는 데서는 정부·여당과 방법·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경계해야 할 점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을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안은 많은 경우 ‘노조의 양보 교섭과도 연동이 돼 있다’고 평가될 정도로 맹점이 있다. 노동운동이 이 점을 경계하며 잘못된 후퇴로 나아가지 않도록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일자리 나누기는 경기 불황이나 기업의 경영 악화 속에서 노동시간, 근무형태의 변화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정리해고 같은 극단적 방법을 피하는 대신 노동자들끼리 일감을 나누고 임금을 삭감하는 고통분담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등 곳곳에서 경기 불황 시기에 이런 양보 교섭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2009년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금속노조가 “노사정의 공동 분담”을 기초로 한 ‘일자리 연대’를 제안한 바 있다.
최근 민주노총 대변인은 임금피크제 대신 사실상 노동시간과 임금을 동시에 줄이는 노동시간피크제를 제안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통상임금을 확대해야 기업들이 연장근로 수당 등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옳게 지적했지만, 노동시간 단축분에 대한 임금 보전은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쟁점은 임금 문제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의 노동시간 단축(주간연속2교대제) 논의에서는 노동강도 문제가 논란이 돼 왔다. 노조 집행부는 2012년에 줄어든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보전하는 대신,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안에 타협했다. 올해 임단협에서도 같은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규직의 임금·노동조건 후퇴를 전제한 방식은 실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애초 목표로부터 멀어지는 역설적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잔업·특근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낮은 기본급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는 노동자들이 다시 줄어든 임금을 벌충하려고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조건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강도 강화가 수반된다면, 노동시간을 줄여도 신규채용 없이 기존 인력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을 돌리면 되니까 말이다.
따라서 임금 삭감,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이럴 때 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적인 고용 창출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일 중독”?
노동운동 내 일부는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노동조건을 대립시키며, 노동자들이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양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한다.
심지어 초과노동이 만연한 현실을 한탄하며 노동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일 중독”이나 “소비 중독”에 빠져 장시간 노동에 매달린다거나, 초과노동 단축에 의지가 없다는 식의 비아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장시간 노동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림으로써, 싼값에 노동자들을 부리려고 낮은 기본급과 장시간 노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온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무엇보다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노동시간 단축을 갈망해 왔고 또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는 점을 무시한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서 임금·노동조건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들이 이런 조건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정작 싸움의 주체가 될 노동자들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노동운동 내 일부는 정반대로 노동시간 단축 자체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이 임금 삭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거나, 혹은 필연적으로 생산성 증대(노동강도 강화)나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유연화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 삭감이나 노동조건 악화는 노동시간 단축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실제로 1999년 프랑스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 35시간제가 법제화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한국에서도 1989년 법정 노동시간이 줄었을 때 98.9퍼센트에 이르는 노동조합들이 임금을 인상시켰다.
물론, 이런 성과가 계속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자본가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손실을 만회하는 방법을 고안하곤 했다. 프랑스에서도 사용자들은 변형근로시간제나 파트타임 일자리 확대 등을 요구하며 손실을 만회하려 애썼다.
문제는 결국 계급 간 힘의 관계다. 노동시간 단축이 기존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 없이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려면,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