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은 상품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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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성은 커다란 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에서 성을 개인의 침실 밖에서는 얘기해서는 안 되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보수적 성관념이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성은 오늘날 누구나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공공연한 상품이 됐다.
오늘날 성관념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젊은층에서 두드러진다. 보수적인 성관념에 따라 순결을 강요받고 성표현을 억압당하는 데서 벗어나 성에 대한 더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가 확산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성개방 추세는 갈수록 성이 상품화되는 현상과 맞물려 일어나고 있다. 성 상품화의 전통적 형태인 성매매가 여전히 번성하고 있지만 성의 상품화는 이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이후 포르노 산업은 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성장을 했다. 1997년 미국에서 포르노 산업 규모는 총 42억 달러(4조 6천5백억 원)에 달했고, 일본은 연간 1백억 달러(11조 7백20억 원)로 추정되기도 했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포르노를 엄격히 규제하지만, 포르노와 주류 문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언제나 모호하다.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주류 영화와 상업광고 등에서 갈수록 증가하면서 그 둘을 엄격히 나누기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성적 이미지를 상품 판매에 이용하는 방식은 더욱 광범하게 일어나, 상품의 종류와 무관하게 광고에서 벗은 몸(주로 여성의 몸이지만 남성의 몸도 이따금 볼 수 있다)을 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해 온 주방과 가전제품 광고에서조차 여성은 단지 조신한 주부로만 그려지기보다 성적 매력이 넘치는 유혹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런 상황은 성해방을 나타내기보다는 낡은 여성차별 관념이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일 뿐인 경우가 흔하다. 광고에서 여성의 몸은 상품 판매를 위한 한낱 눈요깃거리에 지나지 않고, 각종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잡지 등에서 여성의 신체를 모욕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 차별만이 아니다.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성을 더 넓은 인간 관계로부터 분리시켜 그 근원에서 소외시킨다. 이것은 상업적 섹스의 경우 명백하지만 돈이 오가지 않는 경우에도 성의 소외를 피하기는 어렵다.
성이 상품화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여기기보다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기가 매우 쉽다. 성이 상품화하면서 성이 왜곡되는 현상은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결혼한 관계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성이 사람들 스스로의 통제에서 벗어나 상품 시장의 변덕에 맡겨지면서 사람들을 옥죄는 양상은 오늘날 더욱 두드러진다. 성적 만족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증대하면서 성은 현대인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사실 기대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성을 단순히 성적 기교로만 취급하는 기계론적 사고가 확산되면서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들의 성적 능력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안게 됐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이 종마 같은 성적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여성들은 애인이나 남편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섹시하게 보여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자신들의 성적 매력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리하여 성 상품 시장은 성형 수술, 패션, 화장품 산업 등과 함께 팽창한다.
성의 상품화가 자본주의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성의 상품화가 이토록 광범하게 일어나는 것은 분명 자본주의적 현상이다. 자본주의는 돈이 되면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드는 속성을 갖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노동력을 고용주들에게 팔아야만 하고, 인간의 친밀한 감정이나 생각도 상품으로 바뀐다. 심지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정신조차 상품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지 않은 채 체제의 한 증상인 성의 상품화만 없앨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성 상품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 ─ 여성 차별, 성적 착취와 억압 등 ─ 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 상품화를 낳는 체제에 도전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제에 대한 도전을 회피한 채 성 상품화만 공격해 국가 규제를 요구하게 되면 보수적 성관념을 강화하는 데 쉽게 이용된다. 성매매 금지 운동은 성 산업이 아니라 성매매 행위자 개인들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 경찰력 증대에 이용돼 왔다.
포르노 금지 운동은 자본주의 국가의 검열 강화에 이용돼 왔고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일상 생활을 통제하는 데 이용돼 왔다.
이윤을 위해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우리를 쥐어짜고, 계급 불평등과 여성 억압을 구조화하는 체제의 근본 변혁만이 진정한 성해방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