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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대선 결과 - 라틴아메리카에 부는 “좌파 정권” 바람

지난 10월 31일 우루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범좌파전선(FA)의 타바레 바스케스가 52퍼센트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그러자 수도 몬테비데오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는 50만 명 이상의 노동자와 학생, 청년과 노인 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스케스의 승리를 축하했다. 인구 약 3백40만 명의 나라에서 말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집권 콜로라도당 소속 대통령 호르헤 바트예의 친미·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바트예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냈던 콜로라도당 대선 후보 기예르모 스털링의 득표율은 겨우 10퍼센트였다.
1825년 독립 이후 블랑코당과 함께 1백70여 년 동안 우루과이 주류 정치를 계속 지배해 온 콜로라도당의 역사에서 가장 낮은 득표였다.
바트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를 가장 충실하게 지지한 지배자 중 한 명이었다.
국민의 90퍼센트가 반대한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 아이티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했으며, 미국의 쿠바 봉쇄를 지지했다.
지난해에는 국영 전화회사와 석유회사를 사유화해 다국적기업들에 넘기려다가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중단해야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물 사유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됐으나 우루과이 국민들은 사유화를 거부했다.
한때 “남미의 스위스”로 불렸던 복지국가 우루과이 민중의 삶은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적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에 피폐해졌다.
특히 2001년 말부터 시작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우루과이는 수출 부진, 생산 감소, 아르헨티나 관광객 급감, 금리 및 환율 불안 등으로 타격을 받았다.
2002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인 23퍼센트까지 치솟았고 실질임금은 대폭 감소했으며 페소화 가치도 폭락했다. 그 결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약 10퍼센트 감소했다.
1999년 이후 빈곤층이 갑절 이상 증가해 올해에는 국민의 거의 40퍼센트가 빈곤층이며 도시 거주 아동들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 자녀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몬테비데오와 내륙 여러 도시의 판자촌들이 연평균 10퍼센트씩 증가했고, 경제적 이유로 인한 해외 이주도 해마다 3만 명씩 증가했는데 이는 1973∼85년의 군사 독재 시절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영양실조와 굶주림에서 비롯한 영유아 사망률도 기록적인 수치로 증가했다. 한때 근절됐다고 생각됐던 결핵 같은 질병들이 다시 나타났고 환경오염과 환경 관련 질병들이 전국 각지로 널리 퍼졌다.
이런 사회적·경제적 고통, 그리고 이에 대한 불만과 분노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하고 FA의 바스케스가 승리한 것이다.
FA는 1971년에 사회당과 공산당이 처음 결성했다. 그 뒤 1989년에 옛 투파마로스 ― 1963년 창설된 도시 게릴라 단체 ‘민족해방운동’의 조직원들 ― 출신자들과 기독교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일부도 FA에 가담했다.
이러한 이질적 정치세력들의 연합체 FA의 정치적 미래가 어떨지는 분명치 않다. FA의 강령은 매우 온건하며, 무슨 대단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FA는 평균 가계생계비의 겨우 10퍼센트에 불과한 현행 최저생계비를 인상하자는 제안을 거부했고, 우루과이 수출소득의 35퍼센트나 되는 외채를 계속 상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사면한다는 전임 정부들의 방침을 고수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바스케스는 우파 사회민주주의 경제학자이자 상원의원인 다닐로 아스토리를 새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로이터〉가 “월스트리트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묘사한 아스토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세계에서 IMF와 결별하고 [외]채 상환을 거부하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며 일종의 아프리카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는 또 우루과이 국영기업들과 외국 자본 간의 합작회사 설립을 지원하고 우루과이 조직 노동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망 제거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바스케스와 아스토리는 브라질 노동자당(PT) 정부가 우루과이 새 정부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룰라의 PT 정부는 국제 금융기구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긴축 정책을 집행해 왔고, 심지어 야당 시절 비판했던 전임 카르도주 정부의 정책들보다 더 나아간 경우도 있을 정도다.
바스케스는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재건하고,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와의 무역블록인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을 통한 지역적 유대를 강화하며, 미주자유무역협정(FTAA)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아이티에서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킬지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우루과이에서 FA가 승리하고 바스케스 정권이 등장한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가 파탄났음을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80∼90년대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였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각국 정부들은 공기업과 공공 서비스 사유화, 긴축 재정,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빈곤과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각해져 보통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199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정권이 잇따라 등장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에콰도르의 루시오 구티에레스,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히너, 브라질의 룰라, 볼리비아의 카를로스 메사 등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선거나 민중 봉기를 통해 집권한 좌파 정권의 수장들이다. 여기에 바스케스 정권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