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로켓 발사·핵실험 시사:
현 남북합의 국면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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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즈음에 장거리 로켓 발사를 시사했다. 그 후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 때문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한반도에 긴장이 다시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존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명시된 ‘트리거 조항’에 따라 유엔 안보리가 추가 대북 제재를 논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최근의 남북 유화 국면은 취약한 것이고 머지않아 상황이 다시 바뀔 위험성이 다분하다’고 지적해 왔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간 갈등이 점증해 오면서 한반도의 불안정과 모순도 심화돼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2013년 수준의 한반도 긴장이 재현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남북 대화에 나서던 북한 당국이 얼마 안 가 로켓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을 다시 말하기 시작한 것은 현 ‘합의’ 국면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준다.
북한은 인공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로켓 발사가 ‘평화적 우주 이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공위성 발사체와 미사일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 북한 국방위원회 자신이 2013년 “우리가 계속 발사하게 될 여러 가지 위성과 장거리 로케트도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시험도 …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고 밝혀 장거리 로켓 개발의 군사적 성격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은 북한과는 견주기 어려울 만큼 더 많은 자원을 미사일과 핵 전력 증강에 쏟아붓고 있다.
미국은 2023년까지 ‘핵무기 현대화 10개년 계획’에 3천5백50억 달러(한화 약 4백14조 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게다가 오바마 정부는 전임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유사시 북한을 핵무기로 선제 공격할 가능성을 열어 둬 왔다. 중국도 지난 9월 3일 전승절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공개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러면서 강대국들이 북한 측에 로켓을 발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할 자격은 없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간 갈등이 점증해 오자, 미국의 대북 정책도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오바마 임기 내내 유엔 안보리 결의들과 군사 훈련 등으로 대북 제재와 군사 압박은 강화된 반면, 6자회담은 전혀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이자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 채널 담당자인 시드니 사일러가 최근에 물러났지만, 오바마 정부는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미국 정계에서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주장이 간혹 나오지만, 아직은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이란 다음 차례?
북한은 제국주의적 압력에 반발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지만, 실은 이를 지렛대 삼아 북·미 대화를 원한다. 이번에도 북한은 로켓·핵실험을 언급하며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이 쿠바와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이란과는 핵 합의를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는 것이다. 북한은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과 미국의 대선 일정도 감안했을 것이다.
북한은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남북 대화로 얻을 게 많지 않다고도 보는 듯하다. 9월 17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북남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비열한 책동”을 비난한 것을 보면 말이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 등을 봐 가며 남북 대화의 속도를 조절해 나간다고 보탰고,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는 북한이 “도발”을 하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며, ‘현재의 [대북] 경제제재 이상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북한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 여지는 거의 없음을 보여 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며 중국한테 북한을 압박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
9월 25일의 미·중 정상회담이나 9월에 시작한 유엔 총회 등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북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북한은 반발하며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공식화하고 발사 준비에 착수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긴장이 다시 높아질 것이다.
8·25남북합의가 나오자, 진보 진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진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그러나 남북합의가 나온 지 한 달도 안 돼 합의 이행은커녕 합의 국면이 사그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가 안보법안의 참의원 통과를 강행하는 것도 동아시아와 한반도 불안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에 힘을 실어 온 박근혜에게도 한반도 불안정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만큼 현존 제국주의 질서가 온존하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지속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요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