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 미화, 착취 은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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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9월 내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확정하려 한다. 왜 하필 올해 9월인가? 새 국가교육과정을 9월 23일경에 고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올해 9월에 새 국가교육과정을 고시하려 하는가? 새 교육과정을 2015년 9월에 고시해야 2017년 1학기부터는 학교 현장에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임기를 마치기 전에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사용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틈만 나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의사를 천명해 왔다. 교육부 장관 황우여는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승만을 찬양하는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진보·좌파의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국정화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국무총리 황교안도 국정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국정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는 2014년 10월 말까지 발표하기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여러 차례 미루다가 올해 4월에야 공표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문항이 “국정화 찬성을 유도하게끔 설계”됐는데도 국정화 찬성 비중은 절반 정도였다.
특히 역사 관련 학회들과 단체들, 전교조와 교사 단체들이 강하게 국정화를 반대한다. 최근 새정치연합 유기홍 의원이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역사 교사의 98.2퍼센트가 국정화를 반대했다.
지난 9월 2일에는 역사 교사 2천여 명이, 이후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1천여 명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실명 선언을 했다. 또, 교수들의 반대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덕성여대, 부산대, 고려대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 실명 선언을 했다. 2009년 대학 교수들의 릴레이 시국선언을 연상케 하는 선언들이 지역과 전공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
통제 강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가르칠 내용에 대해 국가주의 통제를 더한층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국정화 옹호론자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좌편향’ 교과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사(正史)’로서의 국사는 여러 개일 수가 없다고 한다.
“일부 검정교과서의 좌편향화와 전교조 성향 교사들에 의한 반정부 교육으로 국사교육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최소한의 애국심·자긍심 확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분열을 일으키는 국사교육은 초중등학교 공교육에서 추방해야 [한다.]”(2014년 8월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토론회’)
국정화 옹호론자들의 다수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한국사》] 8개 교과서 중 7개가 좌편향이고 교학사 교과서 하나만 정상적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라고 대놓고 말한다. 즉, 냉전주의와 독재를 찬양하고, 친기업적·친제국주의적인 사관을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다.(한규한, “교학사 교과서와 ‘역사 전쟁’ - ‘일베충’ 수준의 교과서는 폐기돼야 한다”, 〈레프트21〉 112호 참조).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착취와 아래로부터의 투쟁은 철저히 은폐하려고 한다.
국정화 옹호론자들은 단일한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이 입시에서 혼란과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입시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견해다. 오히려 수능과 같은 입시경쟁 체제를 폐지하고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이 옳다.
수능을 빌미로 국정제나 검정제 같은 국가 통제 교과서를 발행할 것이 아니라, 자유발행제를 통해 학생들에게 서로 다른 역사 해석들이 충돌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어떠한 역사 해석이 옳은지 논쟁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즉, 자유로운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는 글들이 학교 교육에서 교재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리오 휴버먼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마땅한 역사책이 없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1932년에 《가자, 아메리카로!》(비봉출판사, 원제는 We the People: The Drama of America)를 썼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교과서로 실제 활용됐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법이 부유층에게 유리한 까닭은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부유한 상류계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이 실린 글이 역사수업의 교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검정제도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교육부의 교과서 집필 기준을 따라야 검정에 통과할 수 있으므로 국가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현행 검정제조차 성에 차지 않아 국정제로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는 다양한 사고를 가로막는 더 큰 장애물이 돼 진보적 사관에 대한 토론을 더한층 가로막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저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만에 하나 정부가 반발을 의식해 국정화를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이는 우리 운동의 승리다. 정부가 현행 검정제를 강화해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개악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