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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와 ‘역사 전쟁’

뉴라이트 사관의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박근혜, 교육부, 새누리당, 그리고 우익 단체들이 똘똘 뭉쳐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섰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 외의 나머지 교과서도 오류가 많다며 전부 수정토록 했다. 전형적인 물타기다.

새누리당 김무성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 여론에 맞서 “공권력을 사용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심지어 우익 폭력단체들이 군복을 입고 대학교에 난입해,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언급한 천재교육 교과서 집필자 주진오 교수에게 사죄하라며 행패를 부렸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는 국사편찬위원장에 뉴라이트의 대부격인 유영익을 내정했다. 역사에 대한 행패 부리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애초에, 인터넷 포털의 글들을 베껴서 날림으로 만든 이 오류투성이 교과서가 교육부 검정을 통과할 수 있던 것은 오로지 국가 권력의 후원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 교과서는 일본 제국주의를 교묘히 미화하고, 이승만·박정희 등의 독재자와 이들을 후원했던 미국 제국주의를 대놓고 찬양한다. 가히 ‘일베충’들이나 환영할 교과서다.

뉴라이트는 기존의 한국사학계가 너무 민족주의적이고 좌편향적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비난은 특히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확산된 관점을 겨냥한다. 대체로 좌파 민족주의적 성향을 띤 이 관점은 기존의 친독재, 친제국주의, 냉전주의적 역사관에 도전하고자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 한국사 교과서에 그 성과가 일부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물론, 기존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는 우익의 선동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뉴라이트는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격을 통해 다시금 반동적인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학사 교과서의 모든 문제를 일일이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몇몇 핵심 요소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해 보겠다.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는 자본주의가 절대적 선이라는 관념이다. 이 때문에 박정희의 독재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을 ‘근대화’시킨 일본 제국주의의 구실도 높게 평가된다. 이 교과서가 김성수 등 친일 자본가를 민족 지사인 양 둔갑시킨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물론,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번 교학사 교과서도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언론인 〈산케이〉가 교학사 교과서를 열렬히 환영하면서도, “기대했던 것보다 못 미친다”며 아쉬움을 내비친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교학사 교과서에는 일제를 미화하는 코드가 곳곳에 심어져 있다. 예를 들어 철도와 각종 교통 시설, 수리 시설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착취적 성격은 은폐돼 있거나 축소돼 있다. 또, 빈농들의 삶이 파탄한 원인을 주로 인구 증가에서 비롯한 것으로 서술한다든지, 일제의 자영농 육성책으로 “지주제가 쇠퇴”했다는 식의 평가는 일제 시대 사회경제 구조의 착취적 본질을 흐리기 마련이다.

심지어 위안부 문제도 교학사 교과서는 매우 무성의하고 축소해서 서술할 뿐 아니라, 전시하 인적·물적 자원 직접 수탈 문제도 매우 축소해 서술한다.

엘리트주의

뉴라이트가 칭송하는 근대화 주체는 엘리트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엘리트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제대로 추진할 만한 세력을 말한다. 이 때문에 뉴라이트는 아래로부터 대중운동에 적대적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보면, 동학농민운동은 단지 근왕주의적 복고 운동이다. MBC 〈100분 토론〉에서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권희영은 “민중이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민중 사학을 버리”라고 호통을 친 바 있다.

뉴라이트에게 근대화와 독립 운동의 정통 계보는 (친일)개화파 → 실력 양성론 → 외교 독립론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친일파 인사가 “일제의 협력을 통한 차별의 해소”를 도모한 현실주의자들로 복권된다. 심지어 교학사 교과서는 당시 조선인들이 징용·징병된 것까지 일제에 대한 직간접적 협력인 양 서술하며 친일파를 옹호한다.

이승만 숭배

식민지 근대화론과 더불어 뉴라이트 역사관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맹목적인 이승만 숭배다. 교학사 교과서는 마치 이승만이 열강에 조선 독립 청원 활동을 한 것이 항일 운동의 본류인 것처럼 과장한다.

이승만 독재 타도를 외친 민중 우파는 이런 찬란한 기억을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사진 출처 국가보훈처 블로그

뉴라이트에게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미국 제국주의에 편승해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을 보며, 이승만이 ‘공산주의 세력의 본질을 꿰뚫어 본 국제정치의 달인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대중적 염원은 그저 남로당식 폭동쯤으로 치부된다. 당연히 4·3 항쟁의 기원도 왜곡되고, 그 과정에서 학살당한 무수한 민간인에 대한 애도도 없다.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해 남한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한 영웅이자, 심지어 4·19 혁명으로 망명 가면서도 공산 세력의 침략을 걱정한 우국지사로 묘사된다.

냉전주의와 독재 찬양

교학사 교과서는 낡은 냉전주의를 새삼스레 반복한다. 제1·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사는 전체주의(파시즘과 공산주의)와 자유 세력 간의 투쟁사가 된 듯 서술한다. 교학사 교과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간의 공모 사례로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을 불비례적으로 크게 부각한다. 그러면서 서유럽의 ‘자유 진영’이 파시즘을 방조한 사실은 체계적으로 누락한다.

또, 교학사 교과서에 따르면, 냉전 시기 소련은 일방적으로 호전적이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이고 수동적이었다.

미국이 지원한 그 많은 독재 정권들이 어찌하여 ‘자유 진영’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재 시절 한국도 자유 진영의 일원이었다. 뉴라이트가 보기에 한국전쟁은 제국주의 간 쟁투가 아니라, 공산 침략에서 자유 진영을 방어한 전쟁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 과정에서 남한과 미국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축소되거나 아예 누락된다. 그 빈자리를 북한의 보복 학살이 채우고 있다.

북한은 호시탐탐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호전적인 구제불능 악당일 뿐이다. 당연히 미국 제국주의의 호전적 대북 압박은 서술되지 않는다. 역대 독재자들의 독재는 반공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정당화된다.

GDP 성장 제일주의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들은 북한보다 남한 체제가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유’와 ‘경제성장’을 내세운다.

물론 이 논리대로라면 적어도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우월한 체제였다고 서술하는 게 공평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면에서 유신 독재가 김일성의 독재보다 나을 것도 없었고, 경제는 오히려 북한이 더 잘나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의라는 개념은 희생되는 게 당연하다는 투로 서술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 파병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성과는 긍정적으로 서술한 반면, 민간인 학살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적반하장 격으로 권희영은 〈100분 토론〉에서 천재교육 교과서가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언급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원조 뉴라이트 교과서인 2008년 《대안교과서》조차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시인하는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교과서가 주려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교학사 교과서는 “6·25 전쟁을 통하여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체제 이념을 놓고 다투는 일이 없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즉, 과거 추악한 대한민국 지배 세력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을 뿐더러 용납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뉴라이트 교수인 허동현은 교학사 교과서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드라큘라 영생론’으로 ‘깔끔하게’ 옹호한 바 있다. 즉 “[드라큘라에게] 피만 빨린 게 아니라 영생을 얻었으며, 드라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제라는 드라큘라에게 물려서”라는 것이다. 이는 교학사 교과서가 전파하려는 또 다른 메시지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영생하려면 우리도 남의 피를 빠는 흡혈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나라 안팎 노동자 민중의 피를 빨아 영생을 누리려는 한국 주류 지배자들의 교과서다. 이런 추악한 교과서는 수정이 아니라 폐기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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