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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혁명가들은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좌파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오늘날 세계는 전쟁과 난민, 경제 위기와 저항으로 점철돼 있고 지난 몇 년 간 급진좌파와 극우파가 성장하는 등 정치적 양극화가 전개돼 왔다. 세계 격동의 최근 국면과 좌파들이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김종환 기자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지난 9월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급진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승리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코빈은 긴축을 추진한 기존 노동당 노선을 비판하고 선명하게 긴축 반대를 천명했다. 그는 노동당 대표로 당선될 때까지도 영국 전쟁저지연합 의장이었고 여러 파업을 위한 연대를 건설하는 데 앞장설 만큼 영국 급진좌파의 주요 인물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가 주최하는 맑시즘에서도 여러 차례 연설했다.

그는 급진적인 만큼 그동안 노동당 내각이나 노동당 의원단 등 공식 정치에서는 완전히 주변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코빈과 경쟁하는 노동당 우파뿐 아니라 온건한 노동당을 원하는 자유주의 언론 〈가디언〉과 〈옵서버〉도 코빈을 흠집내려고 갖은 악선전을 해댔다.

그럼에도 코빈은 크게 이겼다. 총 4명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코빈 혼자서 60퍼센트를 득표할 만큼 그의 승리는 압도적이었다.

코빈의 당선은 유럽 핵심 국가에서도 좌파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진 출처 http://www.democracynow.org/

그동안 주류 언론은 시리자와 포데모스 같은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의 등장이 일부 남유럽 나라나 유럽 ‘주변부’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코빈의 당선은 유럽의 핵심 국가도 좌파적 개혁주의가 성장하는 전체 흐름에서 비켜서 있지 않음을 보여 줬다.

다만, 영국에서는 노동당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별도의 급진적 흐름이 부재하고 혁명적 좌파가 노동당을 대신할 대안을 건설하지 못하는 처지여서 그런 흐름이 노동당 안에서 부상했다.

코빈이 승리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그동안 노동당이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한 것(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에 대한 누적된 반감이 노동당 당원 변화에 반영된 것이다.

지난 5년간 12만 명가량이 노동당에 입당 또는 재(再)입당했다. 대부분 과거에 노동당을 지지했던 나이 많은 옛 사회민주주의 지지자들로, 2000년대 초 노동당이 이라크 전쟁을 적극 지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며 당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반면에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블레어를 따르는 후보가 5퍼센트도 못 얻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것에서 보듯, 블레어 지지자들은 주변화됐다.

누적된 반감

둘째, 노동당의 당대표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 노동당 우파는 5년 전 대표 선거에서 노동조합 블록투표제(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표를 노조 지도부에게 주는 것) 때문에 패배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이후 1인 1표제를 도입하고 ‘지지자’라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서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 당대표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코빈은 제도 변화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지지자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셋째, 수많은 사람들이 코빈을 지지하며 노동당 지지자로 등록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이전까지는 노동당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청년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긴축 반대 운동 참가자들이 특히 두드러졌다. 코빈의 선거 유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코빈의 선거 유세가 수십 년 만의 최대 좌파 집회가 됐다.

35년 전 노동당 좌파 부상과의 차이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도 영국 노동당 좌파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부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중심적 구실을 한 토니 벤의 이름을 따서 ‘벤 좌파 운동’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최근 코빈을 둘러싼 흐름은 벤 좌파 운동과 차이가 있다. 첫째, 당시 벤 좌파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혁명적 정치에서 멀어지는 우경적 흐름 속에서 노동당에 기대를 걸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코빈은 개혁주의에 대한 환멸 때문에 더 좌파적인 개혁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부상했다.

둘째, 벤 좌파 운동은 노동자 투쟁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다가 하강하기 시작하던 때에 일어났다.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영국에서는 노동자 투쟁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강하는 국면은 아니었고, 오히려 경제 위기 이후 서서히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셋째, 벤 좌파 운동은 공식 노동운동과의 관계가 더 긴밀했다. 반면, 코빈은 노동당 안에서 워낙 주변적인 인물이므로 노동당 내 주요 기구를 활용하기가 더 어려운 처지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당 안팎의 여러 좌파들, 노동당 개혁주의에 깊이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코빈을 지지하고 나서고 있다. 예컨대 일부 좌파 노조는 코빈을 지지할 광범한 세력을 건설하기 위해 노동당 바깥의 SWP에게도 논의를 요청한다. 또한 좌파적 NGO들이 코빈을 지지하는 연대체를 꾸렸고, 노동당 내 기존 조직들도 코빈을 지지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혁명가들은 이런 차이점을 감안해서 코빈의 부상이 가져올 파장을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관계 맺는 것이 중요하다.

코빈의 승리가 낳을 파장과 혁명가들의 과제

그러면, 코빈의 승리가 낳을 파장은 무엇인가? 먼저, 코빈은 앞으로 커다란 전투를 앞두고 있다. 우파 언론과 보수당은 이미 그를 물어뜯고 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시리아 전쟁에 개입 수위를 높이려는 것은 시리아 개입에 반대하는 코빈에게 굴욕을 주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코빈이 맞닥뜨릴 더 까다로운 전투는 노동당 안에서 벌어질 것이다. 심지어 코빈과 함께 예비내각에 포함된 인물들 가운데도 공공연히 코빈에 반대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내년 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코빈이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대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당 우파는 코빈이 영국에서 핵미사일을 폐기하고 대학 등록금을 없애겠다고 옳게 천명한 것 등에 대해서도 타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혁명가들은 코빈이 내세우는 것들을 옹호하고, 우파에 맞서 코빈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당 내 세력 분포를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의회 밖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코빈의 승리가 낳은 둘째 효과는 노동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 것이다. 코빈 선출 뒤 이미 6만여 명이 노동당에 입당했다. 특히, 다정파 연합으로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이 노동당 입당 압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켄 로치 감독 등이 노동당 바깥에서 노동당을 대신할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을 건설하려 추진했던 좌파연합(Left Unity: 이하 레프트유니티)이다.

레프트유니티는 많은 지지자들이 노동당으로 떠나, 그들을 붙잡으려고 최근 ‘레프트유니티의 친구들’이라는 회원 자격을 신설했다. ‘친구들’이 되면 노동당으로 당적을 옮기더라도 계속해서 레트프유니티의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토론과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예전 당원들에 대한 영향력을 놓치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 평소 레닌주의 정당의 필요성을 굳건히 토론해 온 SWP 안에서는 노동당 입당 압력이 크지 않다.

코빈 승리의 셋째 효과는 많은 노동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참가하는 광범한 공동전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노동당에 가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코빈의 승리는 혁명가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

이를 위해 SWP는 코빈 대표직 당선 전부터 그의 당선이 전체 운동에 자신감을 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코빈 지지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노동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그 결과 SWP 당원들은 코빈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자연스럽게 참가하고 코빈 지지자들도 SWP에 개방적이고 협력적이다. 코빈을 보며 고무받은 사람들이 긴축 반대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주요 참가자들이기도 하므로 이런 협력적 관계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혁명가들은 노동당과 구별되는 고유한 주장을 맵씨있게 드러낼 방법을 계발해야 한다. 이때 그리스 등지에서 좌파적 개혁주의의 실패가 남긴 교훈을 분석적으로 제시하며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