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악화하는 내전과 난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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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전쟁과 난민, 경제 위기와 저항으로 점철돼 있고 지난 몇 년 간 급진좌파와 극우파가 성장하는 등 정치적 양극화가 전개돼 왔다. 세계 격동의 최근 국면과 좌파들이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김종환 기자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유럽연합의 인종차별적 이민 정책은 전부터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끔찍한 상황 때문에 전보다 많은 시리아인들이 유럽으로 오면서 유럽연합의 이민 정책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위기에 빠졌다.
최근의 난민 위기에서 두 가지 점이 두드러진다. 첫재, 난민들이 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터키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향하는 난민들은 적어도 9월 초부터는 헝가리(그 경로의 중간에 있다) 정부가 자신들의 통행을 가로막는 것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에서도 난민들이 적극적으로 영국 진입을 시도하면서 두 나라를 잇는 초고속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일도 빚어졌다. 최근의 난민 위기가 전에 비해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
둘째, 유럽 내 민족 갈등이 더 격화했다. 그전부터 유럽연합은 유로존 위기에 대한 대처를 놓고 분열했고 우크라이나 위기 때도 민족적 갈등이 불거졌다. 최근의 난민 문제는 그런 민족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고, 심지어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나라들에서도 그렇다. 유럽연합 바깥에 있는 세르비아는 접경지역에 있는 난민들에 대한 대응을 놓고 크로아티아와 격하게 충돌하고 있다. 그 두 나라가 주고 받는 언사의 험악함은 과거 서로 전쟁을 벌인 1990년대를 떠올릴 만큼 심각하다.
진영 논리
한편, 난민 위기를 촉발한 주요 원인의 하나인 시리아 전쟁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 지난 4년간 이어진 아사드 정권의 학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의 등장, 1년 넘게 계속되는 서방의 공습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러시아의 공습까지 더해진 것이다.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을 둘러싼 지정학적 분석에 대해서는 13면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을 보시오.)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은 그동안 혁명가들이 강대국의 개입 일체를 반대한 것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러시아의 폭격만으로도 전쟁은 더 격화했고, 무엇보다 러시아의 개입을 보며 서방이 개입 수준을 한층 더 높일 위험도 있다.
그런데 국제 좌파 사이에는 되려 러시아의 개입을 반기는 흐름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국제적으로 미국이 일방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것만을 문제로 보며, 따라서 러시아가 개입하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진영논리이다. 근본적으로는 러시아·중국 등을 진보적 국가로 보는 착각도 흔히 결합돼 있다.
최근 독일의 좌파 일간지 〈융에벨트〉는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을 비판한 독일 좌파당(디링케) 소속 국회의원이자 좌파당 내 의견그룹 ‘마르크스21’ 소속인 크리스티네 부흐홀츠를 서방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한데 묶어 비난했다. 부흐홀츠가 서방의 시리아 개입뿐 아니라 러시아의 개입도 비판하며 시리아 현지의 혁명만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옳게 주장한 것을 왜곡한 것이다.
이런 왜곡은 러시아 개입 비판을 친서방적이고 친제국주의적인 주장으로 호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융에벨트〉는 러시아의 개입과 서방의 개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그런 주장을 폈다. 그 칼럼을 쓴 〈융에벨트〉 수석편집자는 동독 시절 악명높은 슈타지(국가보안부) 끄나풀(프락치)로 정보기관에 협력한 경력이 있다. (이 전력이 드러나 대학 강사직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 논쟁은 중요하다. 러시아 개입 전까지는 외세가 시리아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적어도 중립을 표방했던 스탈린주의자들이 이제는 개입 지지로 돌아서는 징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국제 반전 운동 안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어느 한 열강만의 횡포로 여기지 않았고, 한 열강이 다른 열강을 견제하는 것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 대신 제국주의를 열강이 세계를 놓고 벌이는 경쟁 체제로 봤고, 그래서 노동계급 투쟁만이 제국주의를 끝장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이고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것을 틈타 세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도 당연히 제국주의 국가이다.
진영논리의 폐해는 영국에서도 나타난다. 한때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주요 기구였던 전쟁저지연합이 지난 몇 년 간 이라크와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서 진영논리에 빠져들었다. 시리아 문제에서도 서방 개입만을 반대하며 아사드 정권을 비판하길 꺼렸다. 최근 유럽 난민 위기 국면에서는 아사드의 살육을 피해 온 시리아 난민들과 반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서방 세계와, 특히 미국의 동맹국 한국의 혁명가들은 서방의 시리아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제국주의 열강 간의 패권 경쟁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러시아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