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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
‘삼포 세대’의 처지 개선에 쓸모없거나 더 나쁘거나

정부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이하 제3차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06년에 1차, 2010년에 2차에 이은 세 번째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초저출산(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 국가로 분류됐다. 한국 정부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겨 왔다. 저출산이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낳아 한국 자본주의 발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제3차 기본계획에서도 정부는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만15~64세) 감소와 고령화, 이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와 잠재성장률 하락을 우려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보육·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시장화 방식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여성 고용률도 높이려는 것에(이른바 ‘일-가정 양립’) 초점을 뒀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기혼가구의 양육부담 경감 중심”이 아니라 “만혼·비혼 추세 심화”를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보육 지원에 1백조 원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도(상당수는 그 부담을 지방정부나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는 방식이었다) 출산율이 오르지 않자, 결혼을 더 일찍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비정규직 확대, 복지 공격 등이 담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조승진

그러나 정부 대책은 공개되자마자 비웃음과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는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구조적 원인으로 “고용, 주거” 등의 문제를 꼽았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미혼남녀 단체 미팅’ 같은 황당한 정책도 있는가 하면, 문제를 더 악화시킬 내용들도 있다.

가령, 제3차 기본계획은 실업, 비정규직 등으로 청년들의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제시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만 보장해 주면 애 낳지 말래도 낳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 불안정성을 더 심화시킬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2017년까지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4만 개를 신설하겠다고 하지만, 그 방식은 교원명예퇴직 확대와 포괄간호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서다. 그 방안들은 이미 지난 7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에 포함돼 있던 내용들로, 그때도 이미 발표한 정책들을 긁어모은 것에 지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고용 확대 방안도 못 되는 것들이다. 가령 현재 일부 병원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포괄간호서비스는 간호인력을 필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찔끔 늘려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를 대폭 늘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편, 교사 명예퇴직을 늘려 청년 고용을 그만큼 늘리겠다는 계획은, 교원 총원은 늘리지 않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유망서비스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의료법인부대사업 확대 및 자법인 설립사례 창출 지원” 같은 의료 민영화 정책도 슬쩍 끼워 넣었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전세대출 금액 인상 등도 황당할 따름이다. 전세 자체가 없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일 뿐 아니라, 오히려 전세값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어서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부동산 대책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시장화 방향

출산·육아 지원 문제도 그렇다. 정부는 임신·출산시 의료비 부담을 경감해 주겠다고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국가의 보육 책임 강화’는 빠져 있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보육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지만 민간 보육시장을 키우는 시장화 방식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데 정부는 기존 방식으로는 출산율이 늘지 않자 이제 전업주부들의 보육시설 이용을 줄이려 한다(이른바 ‘맞춤형 보육’).

동시에 여전히 시장화 방향을 유지하려 한다. 정부는 국공립·공공형·직장어린이집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점은 공공형 어린이집 확충에 맞춰져 있다. 공공형 어린이집은 이름만 ‘공공형’이지 서비스를 민간이 제공하는 방식이어서 이윤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민간 어린이집의 부정·비리를 낳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또 정부는 여전히 ‘일-가정 양립’을 내세우며 시간제 일자리·유연근무제 확대 같은 노동유연화 정책도 지속하려 한다. 반대로 직장에서 임신·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여성이 겪는 차별을 개선하는 조처들은 대체로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의심되는 것뿐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정부가 이런 대책들밖에 낼 수 없는 가장 주된 이유는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 부담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출산 극복’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줘야 하지만,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는 재정 지출을 어떻게든 줄이려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원을 늘릴 때조차 규모나 방식에서 명백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인 연령기준 상향(65세에서 70세로)처럼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라고 내놓은 다른 것들을 봐도,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 얼마나 혈안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재원은 대기업과 부유층에 과세해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재원을 마련하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대폭 확충해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질 좋고 값싼 국공립 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할 수 있다. 또, 공공 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해 주거난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장하려고 과세하지 않는 정부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뿐 아니라 다수 청년과 여성,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이런 요구를 실현시키는 일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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