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자는 왜 긴축에 굴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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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의 좌파 정당 시리자는 긴축을 멈추겠다는 공약을 실천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혹독한 긴축 정책을 시행하기로 합의했을까? 좌파는 핵심적으로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
시리자의 실패라는 문제를 사실상 회피하는 (상반된) 두 입장이 있다. 하나는 시리자 지도자들의 입장으로, 한마디로 말해 시리자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레디앙〉의 그리스 관련 기고자 ‘원시’(필명)도 9월 20일 조기 총선 결과를 “시리자는 다시 일어서 싸우라는 ... 우려 섞인 ‘응원’의 메시지”로 평가하며 “악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권력과 부, 소득의 재분배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치프라스 총선 승리, 연기된 시리자 최종 승리’)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2기 시리자 정부가 고강도 긴축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처지에서 어떻게 그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시리자의 실패라는 문제를 간과하는 다른 입장은 그리스 공산당 KKE의 견해로, 요컨대 시리자를 그저 또 하나의 부르주아 정당으로 보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1기 시리자 정부에서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다”는 것이다.
공산당의 견해는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시리자 지도자들의 입장부터 평가하고자 한다. 9월 20일 조기총선은 시리자가 큰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실시됐다. 그리스에는 국회의원 3백 석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1백20석 이상을 차지하면 정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음에도 소속 의원들의 반대와 기권 속에 1기 시리자 정부는 결국 그 기준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붕괴했다.
처음에 시리자 지도자들은 긴축안에 반대 투표를 한 시리자 좌파 의원들을 비난했다. 그 의원들이 그리스 역사상 첫 좌파 정부를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말이다. 시리자 지도자들은 곧 방침을 바꿔, 치프라스가 “진정한 민주주의자”이고 그는 정부를 이끌 새 권한을 원한다는 기조로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선거적 권모술수로도 시리자 내부 위기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리자 내부 위기는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란이나 시리자 이탈파들의 민중연합(Popular Unity) 창당보다 더 폭넓은 현상이다. 지구당부터 사무총국에 이르기까지 시리자 조직 곳곳에서 당 방침 반대, 사임, 탈당이 속출했다. 심지어 그중에는 시리자의 골간인 옛 시나스피스모스 출신자들도 있다.
그런 흐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는 시리자 중앙위원이었던 스타티스 쿠벨라키스이다. 쿠벨라키스는 시리자 좌파였던 좌파연대(Left Paltform)의 일원이었고 지금은 탈당해 민중연합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그리스 의회가 새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승인한 것을 약 1백 년 전 독일 의회가 전쟁 공채 발행을 승인한 것에 빗댔다. 당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한 반역에 견줄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 혁명가들은 사회민주주의의 배신을 직시해야 했다. 오늘날 전 세계 좌파들은 치프라스가 긴축에 굴복한 것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시리자는 자신의 선언을 저버렸을까? 무엇을 바꿔야 할까?
시리자의 좌파 개혁주의 성격을 분명히 보지 않고서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시리자의 굴복과 관련해 일부 좌파들은 “변질”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 말은 중요한 쟁점을 논의가 비껴 가도록 만든다.
시리자는 ‘변질’한 것인가?
시리자는 2012년 5월 총선 전에 반긴축 강령을 내놓았고, 그 뒤 2014년에는 그보다는 많이 온건해진 ‘테살로니키 강령’을 내놓았다. 시리자 정부가 새 구제금융안을 수용한 것은 심지어 ‘테살로니키 강령’과도 크게 충돌한다는 점이 매우 분명하다. 그밖에도 시리자 정부가 뒷걸음질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제 이런 ‘변질’이 일어났을까? 왜 그 징후는 사전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시리자 좌파였던 ‘좌파연대’는 시리자에서 이탈해 나오며 ‘민중연합’을 주도적으로 창당했다. 그런데 민중연합의 창당 선언문 초안을 보면 이 문제들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자신들이 채택하려는 정치 노선과 전망만을 얘기한다. 그 정치 노선과 전망은 어떤 것은 시리자의 것을 반복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약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민중연합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시리자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을 설명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민중연합의 창당 선언문을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의 대안적 제안의 핵심 요소는 국가·사법부·행정부의 급진적 전환이다. 민주적 자유의 복원과 확장, … 시위 진압 경찰 등 … “내부의 적”[즉, 좌파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기구들의 해체, 언론 민주화, 부패와 기업 이익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이 분야에서 가장 시급하게 취해져야 조처들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시리자의 강령에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파 인사가 경찰 책임자가 됐다. 시위대의 진입을 막으려고 국회의사당 앞에 설치됐던 철제 구조물은 시리자 정부 들어서 철거됐지만, 7월 15일 시위 진압 경찰은 새 구제금융 합의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존 국가를 “민주화”한다는 전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치프라스가 우익 인사를 국방장관에 앉히며 그리스 국가의 연속성을 천명할 때, 시리자 좌파였던 현 민중연합 지도자들은 그 결정에 반대했을까? 반대했다면 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을까?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하려는 전략을 채택하지 않고 국가의 ‘급진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까?
물론 민중연합은 시리자와 달리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며, “그리스중앙은행을 재국유화하고 화폐를 발행”해 “화폐 주권을 회복”하자고 한다. 틀림없이 일보전진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전략 문제들이 비어 있다. 그 국유화된 중앙은행과 화폐를 누가 통제할까? 미래의 진보적 정부가 이 조처만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 자본가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새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인상하고 단체협상을 존중할까? 민중연합의 대변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가 예견하듯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자본가들은 자본을 해외로 빼돌릴 것이고 화폐 가치 하락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궁핍해질 수 있는데, 이에 대비한 조처와 투쟁 태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리자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혁명적 전망(따라서 혁명적 접근법)을 거부한다. 이는 시리자의 중추가 유러코뮤니즘 경향의 개혁주의 정치 조직인 시나스피스모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지어 치프라스가 지도자가 된 뒤 “급진화”하던 시기에도 시리자는 깔보는 어투로 “재림”이라는 말을 쓰며 이렇게 사회주의적 전망을 무시했다. “사회주의의 ‘재림’ 이후에나 삶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그 ‘재림’을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다.”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 당장의 개혁을 위한 투쟁을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투쟁에서 분리시키는 사람들은 이른바 ‘현실적’(근시안적 의미에서) 해결책을 찾는 길로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기존 사회 구조에 타협하기 십상이다. 부채 탕감이라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새로 돈을 빌리는 게 낫다거나, 유로존을 나오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유로존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게 낫다거나, 자본을 해외로 빼돌리는 등 만만찮게 저항을 벌일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자고 하기보다는 새 구제금융을 받아들이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 바로 이런 접근법에서 나온다.
시리자의 실패 원인을 편리하게도 시리자 바깥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사회진보연대의 월간지 《오늘보다》의 구준모 편집실장은 그리스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30퍼센트)과 다른 유럽 나라 좌파들의 취약함을 “시리자의 약한 측면”으로 지적한다. 물론 일반으로 말해, 노조는 조직률이 높으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률이 높으면 관료주의(투쟁보다 교섭과 조직 보존을 앞세우는 운동 방식)가 더 득세하거니와, 조직률이 낮더라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투쟁을 벌일 수 있다. 지난 수년간 그리스 노동자들은 30번이 넘는 총파업을 벌이며 반긴축 투쟁의 구심을 형성했다. 그 덕분에 프랑스와 달리 그리스에서는 파시스트보다는 좌파의 성장 흐름이 더 강했다.
또, 다른 유럽 좌파들의 연대를 강화하려면 그리스 운동은 반긴축 노선을 단호히 하며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나오자 유럽 전역에서 환호성이 터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한편,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종주국 중 하나인 한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노조 조직률이 별로 높지 않았는데도 왜 조직률이 훨씬 높은 구미 나라들보다 노동계급이 투쟁이 더 활성화됐을까?
시리자의 실패를 직시하며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상황의 전개에 일희일비하며 시리자를 희망이나 배신의 아이콘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눙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허망함만 안겨 줄 수 있다.
전략이 중요하다
개혁주의 전략과 철저히 단절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현실(주의)적’ 대안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민중연합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경제·통화연맹 EMU에서 나오더라도 그리스가 덜 유럽적인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핵심국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이미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를 “남유럽의 덴마크”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파판드레우는 2010년 그리스에 긴축재정을 처음 도입한 사회당 소속의 총리였다.
물론 민중연합 안에는 쿠벨라키스처럼 전략 문제를 다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시리자의 실패를 ‘좌파적 유럽주의’(left Europeanism)의 문제로 본다. 그러나 그는 시리자의 전략 중에도 보존할 것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시리자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어림잡아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 권력 문제에 접근할 때 급진좌파 세력들의 단일정부가 필요하고 또 검증된 도구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입증됐다. …
“둘째, 전환적 강령(transitional programme 소위 ‘이행강령’)이 필요하다. … ‘테살로니키 강령’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런 [전환적] 강령에 근접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환적 강령은 조직적으로도 공동전선의 목표와 연결돼 있다. 공동전선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제3차 대회와 제4차 대회의 유산이고 나중에 그람시와 톨리아티[원문 그대로!]가 공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
“이 [시리자 정부] 경험에서 ‘남아 있는 것’의 넷째이자 마지막 항목은 사회와 정치의 관계이다. … 다시 말해, 급진적 사회 변화 전망을 열기 위한 좌파 정부와 풍부한 대중 투쟁들의 결합이다. …”
그러나 쿠벨라키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리자 전략의 이 모든 요소들을 보존한다면, 시리자의 실패로부터 단절하려는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좌파 정부 수립을 여전히 중시하므로, 노동운동 등 “대중 투쟁”을 선거 승리 노력에 종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적 전망이다. 특히, 레닌은 가령 전쟁 종식을 바라는 병사들에게 진보적 정부가 평화협상을 맺기를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장성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부대 지휘권을 장악하라고 했다. 또, 토지를 바라는 농민들에게 좌파 정부가 적절한 법제도를 마련하기를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를 차지하라고 했다. 또, 주 8시간 노동을 바라는 노동자들에게 친노동자 장관이 입각하기를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노동자들 스스로 일터와 더 나아가 경제 전체에 대한 통제를 시행하라고 했다.
쿠벨라키스가 언급한 톨리아티는 레닌과 아주 다른 길을 걸었다. 194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는 독일 나치의 점령에 맞선 운동이 분출해 거의 이중 권력 수준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는 ‘국민 단결 정부 수립’을 추구했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 북부 지역 대부분을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레지스탕스 운동은 무장을 해제하고 공산당은 우파 기민당에 협력해야 했다. 1944~46년의 ‘국민 단결’은, 그 전까지는 주요 정당이 아니었던 기민당의 국가 장악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도 이탈리아 공산당은 계속해서 기민당에 협조했다. 1990년대 초 기민당이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도 말이다.
쿠벨라키스는 톨리아티와 비슷한 논리로 테살로니키 강령을 ‘전환적’ 강령으로 본다. 하지만 사실, 테살로니키 강령은 시리자가 긴축에 타협하는 데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였다.
시리자 지도자들이 2012년 이후 온건화 방향으로 나아간 주요 요인 하나가 ‘좌파 정부 수립’ 논리였다. 좌파연대-민중연합은 이 논리를 비판하지 않았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시리자 지도자들의 우경화 행보에 침묵했다. 시리자의 선거 승리에 재 뿌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시리자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반자본주의 좌파연합 안타르시아를 더 견제하고 비판했다.
그 덕에 시리자 좌파는 장관직을 얻었다. 좌파 장관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좌파 장관들은 자기 부서는 말도 할 것 없고 동료 장관들의 무능하거나 메스꺼운 행보에 대해서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러운 정치는 정치인들에게나 맡기고 우리는 사회운동을 벌인다고 보는 운동주의로 가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어떤 정치냐다.
안타르시아는 종파적인가?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는 좀 더 아래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시리자라는 조직 모델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그동안 시리자 측 인사들은 여러 경향이 ‘민주주의’(다원주의가 더 정확한 용어일 것이다) 원리에 따라 시리자 안에 공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시리자 좌파들도 안타르시아를 종파적이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시리자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좌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르시아가 시리자로부터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정치적·조직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종파적 행동일까? 종파주의 문제에서 공산당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민중연합 창당은 그 전까지 시리자와 치프라스를 지지하던 수많은 활동가와 투사들이 그 지지를 철회하며 좌경화하는 흐름의 일부였다. 또, 그것은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대중적 좌경화 흐름의 일부였다. 그런데도 공산당 지도자들은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기권 입장을 취했다. 지지자들에게 투표에 참가하지 않거나 투표 용지에 공산당 정책을 적어 투표하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공산당은 반대표 진영에 서서 긴축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이제 공산당은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 등 민중연합 지도자들 개개인을 비판하며 만회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의 외곽 지지자들은 당의 방침을 거슬러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지금은 공산당이 민중연합을 맹비난하는 것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중반 사회당에서 좌파적 이탈이 일어났을 때 공산당은 그 움직임을 진보적인 것으로 보며 환영했고 그 덕분에 성장했기 때문이다. 사회당이 시리자보다 더 좌파적인 정당이었을까? 당시 사회당 이탈파들이 현 민중연합 인사들보다 더 좌파적이었을까? 둘 다 대답은 아니오이다.
공산당의 방침과 달리, 시리자가 위기를 겪으며 분열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청년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좌경화 흐름이 낳은 산물이다. 따라서 좌파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시리자 전략을 되풀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종파주의로 빠지지 않는 길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안타르시아가 직면한 과제이다.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국제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 투쟁의 경험을 꼭 참고해야 한다. 특히, 약 1백 년 전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기해야 한다. 각국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편을 들면서 배신하자, 제2인터내셔널이 와해됐다. 그 뒤 러시아 혁명(1917)과 독일 혁명(1918)에 힘입어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창립(1919)됐다. 이 일은 자동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개혁주의로부터 좌파적 이탈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당시 혁명적 좌파들은 단결을 꾀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실천하고, 그러면서도 으스대며 비판만 하는 종파적 태도를 피하며 대중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리스의 혁명적 좌파는 성장할 수 있다. 그리스 자본주의가 단말마와도 같은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의 좌경화 흐름이 최근 8년 새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또, 과거 사회당의 배신에 맞선 반란을 기억하는, 경험 풍부한 투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르시아는 그리스 투쟁과 좌경화 흐름의 중요한 일부이다. 안타르시아는, 그리고 그 안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전통의 교훈을 지금 현실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중요한 투쟁들에 기여할 수 있다.
* 이 글은 다음의 논문을 많이 참고해서 썼다. Panos Garganas, ‘Why did Syriza fail?’, International Socialism 148(Autumn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