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이른바 ‘종북척결’을 외치는 극우단체들이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을 비난하면서 ‘‘정의로운’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라’는 역겨운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익의 선동은 손톱만큼도 영향력이 없었다. 같은 시간대에 정문 안쪽에서 20명 가량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국정화 반대 및 집필 거부 교수 지지 홍보전을 벌였고, 순식간에 1백80여명의 학생들이 국정화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학생들은 집필을 거부한 정의로운 교수들에게 수십여 편의 지지메시지도 남겼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참가한 학생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학생들의 지지도 워낙 높았던 터라, 우익들은 주목도 못 받고 비웃음거리가 돼버렸다.
다른 한편, 보수적 학생 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이 국정화 지지 대자보를 붙였지만 무시당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은 국정화 반대 대자보가 덕분에 더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지난 주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결정이 이뤄진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불만이 들끓고 있다. 전국 수십여 대학에서 국정화를 규탄하는 학생회·학생단체·개인들의 대자보가 붙었고 갈수록 그 수는 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OO대학 모임’(이하 ‘반대모임’)이 생겨나고 있는데, 적게는 20~30명, 많게는 1백 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현재 국정화 반대 연세대 모임에는 1백50여 명이 참가하고 있다.)
학생운동과 그다지 가깝지 않던 학생들도 ‘우리 학교 학생회도 뭐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연세대에서는 비교적 반대모임이 일찍 꾸려졌음에도 일찍이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아직 반대모임이 꾸려지지 않은 대학들에서도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을 비롯한 학생조직들이 국정화 반대 선전·서명전을 했는데, 학생들의 호응과 지지가 정말이지 뜨겁다고 한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는 더 늘어날 것 같다. 반대모임도 더 많은 대학들에서 꾸려질 것 같다.
대학생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을 우리의 쟁점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 당장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국사교과서를 접했던 터라 이 일을 더 가깝게 여기는 면이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악선동인지 아주 명료하게 알고 있다.
대학생들은 자유, 정의, 진리와 같은 것들이 결부된 이데올로기적 쟁점에 무척이나 민감하기도 하다. 얼마 전 국정화 교과서를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에 연행된 또래 학생들을 보면서 그 분노가 더욱 증폭된 면도 있어 보인다.
행동에 나선 학생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반대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 보였다. ‘왜 정부는 인기도 없는 국정화안을 강요하는 걸까?’, ‘정말 핵심적인 문제는 뭐지? 역사관의 다양성을 억압한다는 것인가? 친일·독재를 미화한다는 것인가?’, ‘정부의 국정화 시도를 저지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국정화 저지 운동 속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문제들을 잘 토론하면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대중행동을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