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김영훈 집행부의 임금피크제 잠정 합의를 부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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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월까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기 위해 임금피크제 미수용 기관들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발판으로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로 공격을 이어가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노조 김영훈 집행부는 10월 20일 새벽에 임금피크제 도입에 잠정 합의했다.
퇴직 2년 전부터 임금의 40퍼센트씩[1인당 무려 6천4백만 원가량] 삭감해 그 비용으로 2016~17년에 1천6백65명을 채용하고, 추가로 정원 대비 부족 인력 약 5백 명을 충원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철도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이었던 유지보수(전기, 시설), 역, 차량 등의 광범한 외주화 중단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김영훈 집행부는 이번 잠정 합의가 임금피크제 대상 대비 신규 인력 1백 퍼센트 충원과 추가로 5백여 명 충원을 얻어 냈고,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로 한 “최선의 합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잠정 합의안은 10월 20일 열린 전국지부장회의에서 상당히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임금 대폭 삭감, 외주화 지속, 반복되는 사측의 합의 불이행, 신규 직원 성과연봉제 시행 등에 대한 성토와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지부장들의 이런 반발은 당연하다. 잠정 합의 내용을 접한 여러 지부 노동자 사이에서도 “이 안은 부결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잠정 합의안의 문제점
첫째, 이번 잠정 합의안만 보면, 내년에 충원될 인력이 임금피크제로 8백10명, 부족 정원 충원으로 5백여 명을 합쳐 1천3백10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기재부가 철도에서 1천5백90명을 조기 퇴직시키겠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합의안이 제대로 이행된다 해도 오히려 전체 인력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도 김영훈 집행부는 단협에서 조기 퇴직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다.
또, ‘5백여 명 신규채용’은 이전 합의 사항이었던 7급·특정직(무기계약직)의 6급 승진이 진행돼야만 시행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기재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고, 이번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지부장들이 ‘과연 이 합의가 지켜질 것인가’ 하고 정당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둘째, 당분간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지켰다는 주장도 안일하고 터무니없다.
철도공사는 외주화는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 중 ‘기능 조정’의 일환이므로 철회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도 일방 시행은 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말은 믿기 어렵다. 철도 외주화 확대는 단지 부족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려는 것만이 아니라 자회사 분할을 통해 민영화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봐야 한다.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들은 설사 업무량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심각한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또 이들을 별도 직군으로 묶고 ‘부차적 업무’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노동자들에게 굴욕감을 줄 것이다. 왜 오랫동안 고된 노동을 해 온 선배 노동자들을 생산성은 낮은데 터무니없이 높은 임금이나 받아먹는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희생을 강요하는가?
셋째,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 공격이 곧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철도노조 집행부는 임금피크제 수용으로 이번 단협을 끝내면,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은 내년 총선 이후로 넘어가게 돼, 개악을 막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가 지적하듯이 정부는 곧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려 하고 저성과자 퇴출제도 연내 도입하려 한다. 더구나 그 추진 속도는 공공부문의 임금피크제 관철 정도에 따라 탄력이 붙을 것이다. 철도 같은 중요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합의해 주면서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제 퇴출제 문제를 총선 이후로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도 임금피크제 합의가 전체 노동 개악 추진에 미치는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는 소치다.
이처럼 노동 개악이 탄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건 노조가 취약하거나 없는 사업장일 것이고, 결국 노조가 강한 대형 사업장들도 단협으로 노동조건을 방어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수용하면서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제 퇴출제 문제는 내년으로 미룰 수 있다는 시각은 협소하고 근시안적이다.
노동조건 후퇴 합의를 대승적 양보로 정당화하지 말라
이번 합의는 ‘노동개혁’ 저지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철도노조 같은 공공부문 주요노조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합의하면, 다른 사업장도 무너지기 쉽다. 또 임금피크제가 성과연봉제나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의 발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합의는 공공부문 투쟁은 물론이고 ‘노동개혁’ 저지 투쟁 전체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임금피크제를 통한 신규 채용 확대’라는 정부 정책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처럼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조기 퇴직 계획이나 외주화·민영화 강행 의지에서 보듯이 이는 기만일 뿐이다.
또, 이번 합의는 미조직·비정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이 노동조건 후퇴를 수용해야 한다는 ‘양보’ 합의가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정당화되고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크다. 이렇게 되면, 공공부문 정규직 ‘철밥통’ 논리가 더 확산돼 정부의 이간질 책략과 공공부문을 속죄양 삼는 정부 정책에 맞서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결코 미조직·비정규 노동조건 개선이나 청년 일자리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 개악의 추진력을 제공함으로써 쉬운 해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파견 확대 등에 대처할 힘이 가장 약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다.
진정으로 더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을 방어하려면, 철도노조가 노동 개악 저지 투쟁에 앞장서 투쟁의 구심을 제공해야 한다.
잠정 합의를 부결시키고 투쟁으로 맞서자
10월 8일 철도 대의원대회에서 김영훈 위원장은 근속승진제 폐지 합의를 옹호하면서 근속승진제 폐지는 아쉽지만 대신 단협을 지킨 것은 성과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근속승진제 폐지에 합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훈 위원장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단협 후퇴안에 또다시 합의해 줬다. 게다가 이번에는 불가피성보다 성과를 더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합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지난 철도 파업 이후, 강제전출, 1차 공공기관 ‘정상화’에 따른 복지 삭감, 평균임금 기준 삭감, 근속승진제 폐지, 그리고 임금피크제에 이르기까지 노동조건 후퇴를 수용해 왔다.
그러나 이는 결코 현장 노동자들이 원한 것도, 힘이 약해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노조 집행부가 눈앞에 공격이 닥치기까지 투쟁 준비는커녕 협상에 매달리다가, 결국에는 노동조건 후퇴를 수용하는 양보교섭을 반복하면서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은 데 있다.
이제 후퇴를 멈추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단호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공공부문은 최선두에서 공격의 제물이 되고 있다. 노조 지도자들의 협상 수완으로 정부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경제가 잘 나갈 때처럼 그럭저럭 싸우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박근혜가 얼마나 사악하고 집요하게 공격하는지는 23일 파업을 통해 철도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철도 노동자들의 조건을 지키고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막기 위해서는 단호한 태세로 맞서야 한다.
이 첫 걸음으로 10월 27~29일 조합원 총회에서 김영훈 집행부의 임금피크제 잠정 합의를 부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임금피크제 저지와 코앞에 닥친 성과연봉제·저성과자 퇴출제 저지를 결합시켜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잠정 합의안이 나온 직후 이를 폐기하고 투쟁으로 맞서 나갈 것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서울 지부장회의를 열어 잠정 합의 부결을 조직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철도노조 활동가들은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철도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위한 11~12월 투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은 “가이드라인 발표 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 시” 전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잠정 합의 부결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에 힘을 보태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
철도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 합의를 통해 박근혜에게 “노동개혁”의 지렛대를 선물해서는 안 된다. 잠정 합의를 부결하고 노동 개악 저지 투쟁에 함께함으로써, 철도 노동자뿐 아니라 미조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데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