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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노조 지도부의 협력 동의서:
임금 동결·파업 자제로는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

올해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 빅3가 수조 원 대의 영업손실을 입은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최근 조선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앞으로 2~3년간 조선업 빅3에서 1만여 명의 인력 감축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론 정부가 수익성 낮은 조선업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10월 29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4조 2천억 원을 지원한 데서 보듯, 정부는 수만 명을 고용한 국가기간산업 도산이 낳을 정치적·경제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해당 기업에 필요한 자금은 지원하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조선업 살리기 구조조정’으로 불리는 이번 정책이 뜻하는 바는 간명하다. 기업의 수익성 회복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대우조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10월 23일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자금 지원 계획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임금·노동조건·쟁의를 포기하겠다는 노조의 항복문서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 지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조 동의서가 없으면 회사는 부도다.’ 경제부총리, 금융당국, 보수 언론을 등에 업은 사측은 경영설명회를 열어 노동자들에게 파렴치한 협박을 이어 갔다.

노조 동의서

산업은행은 결국 노조 동의서를 받아 낸 뒤에야 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인력 감축, 부장급 3백 명 권고사직, 임금피크제 강화, 국내외 자회사 매각, 외주화 등의 계획도 포함됐다.

그러나 왜 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정부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조건을 양보해야 하는가. 대우조선은 지난 십수 년간 줄곧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였고, 금융위원회, 국민연금까지 합치면 정부가 50퍼센트 가까이 지분을 가진 정부 소유 기업이다. 대우조선이 저유가로 손실이 커진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것도, 골칫덩이 해외 자회사(대우 망갈리아)를 떠안게 된 것도, 분식회계 등 부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정부 책임이다.

안타깝게도 대우조선노조 집행부는 정부의 압박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 노조 동의서에는 ‘임금 동결, 파업 자제,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협력’ 등이 담겨 있다고 알려졌다.

현시한 위원장은 이것이 “조합원들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협박한 부도사태를 막아 “인위적 해고”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 동의서는 조합원들의 임금도, 노동조건도, 고용도 지키지 못했다. 당장은 수주 물량 때문에 현 인력이 필요하지만, 해양플랜트 인도가 마무리되는 내년 이후에는 정규직·사내하청 인력을 줄이겠다는 게 산업은행의 발표다. 그 규모가 3천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노조 집행부는 이것이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 감원일 뿐이라지만, 설사 그렇다 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는 심각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과장급 이상 3백 명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쫓겨났고, 그 칼날이 현장 노동자들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

조선업의 장기불황 속에서 앞으로 대우조선의 수익성이 회복되리란 보장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이란 무기를 내려놓으면 결코 고용을 지킬 수 없게 된다. 2010년에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도 ‘해고만은 막아야 한다’며 굴욕적 동의서에 서명했지만, 그 결과는 1천여 명이 넘는 인력 감축, 살인적인 노동강도, 40퍼센트가량의 임금 삭감, 각종 복지 축소 등 끔찍했다.

노조가 이런 고통을 수용하며 기업 회생에 매달리면, 거듭 양보와 후퇴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현시한 집행부는 사측과 함께 ‘회사 살리기’를 위한 전 사원 토론회를 준비 중인데, 활동가들은 이것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초질서 지키기’, 현장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자리 보장을 위한 정부 지원

그럼에도 적잖은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이 계속되고 부도 위협까지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금이 나오면 좀 낫지 않겠냐’고 여겼던 듯도 하다. 이 같은 생각이 자라난 것은 노조가 사측의 공격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투쟁의 대안이 희미해지고 냉소와 사기저하가 커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우조선은 1999년 대우그룹 부도 이후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지만, 지금까지 십수 년째 매각 문제가 떠올랐다. 매각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때마다 노동자들이 느낀 고용불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에 책임지고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분명히 요구하지 않은 채 ‘경영 정상화’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고용은 언급도 없이, ‘왜 부실 기업에 혈세를 또 지원하느냐’는 참여연대 식 접근도 위험하다.

수만 명의 일자리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부 재정을 투입하라는 것은 완전히 정당한 요구다 2015년 7월 14일 파업 집회. ⓒ사진 출처 대우조선노동조합

이는 원·하청 노동자 5만여 명과 협력업체 노동자들, 그 가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투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공적자금이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공적자금은 구조조정, 인건비 동결 등을 수반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우조선 노동자들도 고통을 당해 왔다. 따라서 정부 지원은 반드시 일자리를 지키는 데 써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지금껏 봤지만, 대우조선 같은 대형 기업을 인수해 고용을 보장할 주체는 정부 말고는 사실상 없다. 몇 해 전에 인수 의사를 밝혔던 한화 같은 재벌에 매각됐더라도, 이윤에 눈먼 이들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했을 리는 만무하다.

국가 소유가 진보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정부는 위기에 빠진 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책임지라고 요구할 가장 적절한 대상이다. ‘일자리 보장을 위한 국유화’ 요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