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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도 막지 못하고 인명 피해만 늘리는:
시리아 폭격 중단하라

11월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 등 테러 조직의 공격을 막기 위해 회원국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각국이 미국의 군사 개입을 지원하고 (이미 지원하고 있다면)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사실상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5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이 보여 줬듯이, 군사 개입으로 ‘테러’를 막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실패했다.

11월 13일 파리에서 아이시스가 끔찍한 공격을 자행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오바마는 아이시스를 일정한 범위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는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었다. 지배자들의 무능과 오만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전쟁이 낳은 참상 제국주의적 개입은 '테러'를 확산시킬 뿐이다. 2014년 시리아. ⓒ출처 알레포미디어센터

미국은 아이시스를 격퇴한다며 2014년 8월부터 지금까지 시리아·이라크에 8천 회가 넘는 폭격을 했지만 ‘테러’가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프랑스도 파리 공격 1년여 전부터 아이시스 격퇴를 내걸고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고, 올해 9월 시리아로 그 범위를 확대했지만 마찬가지였다. 9월 말부터 러시아가 시리아에 쏟아부은 미사일도 10월 말 이집트 상공에서 자국 여객기가 폭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최근 아이시스는 옷 속에 폭탄을 숨긴 남성이 뉴욕을 활보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미국인의 테러 공포를 한층 키웠다.

제국주의적 개입은 ‘테러’를 확산시킬 뿐이다. 도대체 어떤 동역학이 작용하는 것이길래 그럴까? 크게 두 단계를 들 수 있다.

첫째, 미국·러시아·프랑스 등이 개입하면 할수록 그들의 역겨운 위선은 더욱 커진다. 가장 큰 위선은 제국주의 열강이 “인류의 가치” 운운하지만 정작 시리아인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지금 이 국가들이 상공에서 떨어뜨리는 미사일은 아이시스 대원과 평범한 시리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파리 공격이나 아이시스와 무관한 민간인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폭격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시리아에서 가족을 피신시킨 국내 거주 시리아인도 이렇게 현지의 불안감을 전했다. “땅에서는 아이시스가 일반인들을 괴롭히는데 (시리아) 정부군과 미국과 러시아의 비행기 폭격까지 계속 받아서 너무 불안한 상황[이다.]”

백린탄[인으로 만든 발화용 폭탄으로 공기 중에 흩어져 옷과 피부에 달라붙어 살을 태우는 무기]까지 사용되면서 민간인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 계산하더라도 2011년 이후 지금까지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 정권은 시리아인들을 아이시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죽였다. 그러나 각국 지배자들이 아이시스의 만행만 부각시키고 있어, 뉴스만 보면 시리아에서 벌어진 비극의 대부분은 아이시스 탓이라는 착각이 들게 만들고 있다.

2011년 시리아 혁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시리아 세습 정권이 살해한 시리아인은 훨씬 더 많아진다. 현 시리아 독재자의 아버지 하페즈 아사드는 1982년 초 반(反)정부 세력을 토벌한다며 3주 동안 2~3만 명가량(하루 1천 명꼴)을 학살하고 8세기경에 지어진 하마 이슬람 대사원을 파괴했다. 그러나 당시에 제국주의자들은 지금처럼 개입에 열을 올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시리아 정권을 지원한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서구 강대국들도 시리아 정권을 공격하기를 꺼린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이 시리아인을 선발해 아이시스에 맞서 싸우려 했지만, 시리아인은 대부분 아이시스보다 시리아 정권에 맞서 싸우고 싶어해 미국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도했다.

뒤바뀐 우선순위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라면 제국주의 열강이 얼마나 위선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둘째, 이런 위선은 아이시스와 알카에다 등의 선전 논리를 고스란히 강화해 준다. 아이시스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외부 세계는 당신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고 지켜 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호도하며 성장했다. 민간인 사망자를 대대적으로 유발하는 폭격은 현실을 더욱 그렇게 만들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 공격에 나설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시리아 정권이 만들어 놓은 종파 간 갈등은 이런 거짓 선전을 더더욱 진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열 달 동안 아이시스에 납치됐다 풀려난 한 프랑스인조차 비슷한 논리로 프랑스의 시리아 폭격을 반대했다. “아이시스 대원들은 뉴스를 아주 열심히 본다. 무슬림과 여타의 ‘십자군’ 사이에 벌어질 전쟁으로 이 세계가 나아가는 중이라는 자신들의 세계관에 그 모든 소식을 짜맞춘다.

“파리 공격 이후 (프랑스 정부의) 반응을 보며 그들은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환호했을 것이다. SNS에서 격렬한 응징과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말들을 보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시스 세계관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과 무슬림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세계관을 입증해 줄 증거를 찾아다니고, 찾으면 더욱 강해진다.

“아이시스를 파괴하기 위해서라지만 (프랑스가 폭격하는) 라까에 갇힌 민간인 50만 명은 어쩔 것인가? 그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더 많은 민간인을 극단주의자로 바꿔놓게 될 것이라는 점은 생각하지 않는가?

“캐나다는 (10월 말) 선거에서 쥐스탱 트뤼도가 총리가 된 후 공습에서 철수했다. 나는 프랑스도 공습에서 빠지기를 절실하게 바란다.”

미국이 9·11 사건을 응징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인 이후 세계적으로 ‘테러’가 더 많아진 것도 똑같은 과정의 결과였다.

이라크 전쟁과 점령은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막고 이라크인들을 독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은 이 전쟁이 철저하게 미국의 패권을 위한 것임을 드러냈다. 게다가 미국이 부추긴 종파 간 갈등 때문에 이라크인 1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전까지 존재감이 없던 이라크 알카에다(아이시스의 전신) 등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자신들의 선전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비록 오사마 빈라덴은 제거됐지만 그를 대신할 인물들이 더 많이 등장하며 지난 10여 년간 테러 위협은 되레 늘었다.

이처럼 폭격은 중동에서 보통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음으로 내몰 뿐이고 ‘테러’를 오히려 더 확산시키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폭격을 결정한 지배자들이 아니라 그 나라의 노동자와 그 이웃들에게 이에 대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다.

지배자들의 ‘국제 연대’는 더 큰 비극의 씨앗일 뿐

미국에 이어 9월부터 러시아·프랑스 등이 시리아 개입에 나서고 파리 공격 이후 그 수위가 더욱 높아지자, 일각(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아일랜드계 중동 전문 저술가 패트릭 코번)에서는 전쟁 종식의 가능성을 이 국가들 간의 ‘국제 연대’에서 찾는다. 이런 식으로라도 시리아 상황이 오랜 교착 상태를 벗어나 모종의 ‘결말’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그동안 시리아 내전이 악화된 것이 ‘국제사회’의 외면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애초에 혁명이 터져나온 시리아에서 지독한 종파간 전쟁 구도가 형성된 것은 열강과 연결된 각종 외부 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처음 혁명을 시작한 시리아인들은 주변화됐다. 이런 연장선 상에서 보면, 열강의 개입은 시리아 내 종파간 갈등을 더 격화시킬 수 있다. 어쨌든 ‘폭격을 통해 평화를 앞당긴다’는 이런 논리는 근시안적이고 커다란 자가당착이다.

리비아는 이런 우려가 매우 현실적임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2011년 나토는 리비아에 개입해서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애초 혁명을 시작한 리비아인들은 주변화됐다. 이후 리비아는 여러 세력이 저마다 외부 세력의 후원을 받으며 무장투쟁을 벌여 시리아와 이라크 못지 않게 끔찍한 곳이 됐다.

시리아에는 2011년의 리비아보다 더 이질적인 세력들이 개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아이시스를 무너뜨리고 ‘질서’가 수립된다 한들 더 격렬한 경쟁과 그에 따른 대리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조금만 봐도 미국·러시아·프랑스 등이 시리아에서 순순히 손을 뗄 리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시스가 그랬듯이, 또 다른 극단적 세력이 외부 세력들의 경쟁적 지원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해서 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근본적으로, 열강 개입에 기대를 거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파악한 것이다. 미국·러시아·프랑스 등 제국주의적 국가들은 전 세계를 분할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개입하는 것이고, 그래서 가는 곳마다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

최근 터키는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는데,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앞다퉈 시리아에 개입할 때 얼마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여 줬다.

아이시스에 맞서 협력하라고 제국주의적 국가들에 요구하는 것은 공상일 뿐 아니라, 작은 악마(아이시스)를 막겠다고 더 큰 악마(미국·러시아·프랑스)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중동에는 큰 악마들이 이미 충분히 지긋지긋하게 많다.

양비론은 틀렸다

이처럼 ‘테러’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적 국가들의 개입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현재 자행되는 미국·러시아·프랑스 등의 폭격에 반대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파리 공격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표하면서도, “서방이 벌이거나 지원하는 전쟁과 그 전쟁에 대한 반발이 이번 파리 참극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노동당도 “우리는 전쟁이 일시적인 해결 말고 갈등을 종식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올랑드의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말 속에서 또 다른 비극의 전조를 본다”며 프랑스의 보복 공습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무력을 앞세운 개입과 간섭으로 점철됐던 서방의 아랍 정책이 이슬람국가와 같은 테러세력의 발호와 확산의 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같은 당 대변인 한창민(노무현재단 출신)은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비판을 일절 삼가, 엇박자를 보였지만 말이다.

한편, 양비론을 경계해야 한다. 2001년 9·11 전후로 국제 운동이 겪은 굴곡을 보면 양비론의 해악을 알 수 있다.

9·11이 터졌을 때에는 WTO, IMF 등 지배자들의 경제 기구에 반대하는 반(反)세계화 운동이 세계적으로 아주 활발할 때였다. 그런데 9·11이 터지자 많은 미국인들은 ‘조지 부시도 나쁘지만 테러리즘도 나쁘다’는 양비론에 빠졌다. 비록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테러리즘은 매우 나쁘고 누군가 응징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일관되게 반대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행동이 마비됐다. 그런 입장으로는 대중적 운동을 건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기존의 반세계화 운동도 함께 약해졌다. 지배자들은 ‘테러리즘에 맞서려면 시위를 자제하고 전장에 나가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크 전쟁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영국과 이탈리아 좌파들의 단호한 노력으로 테러리즘보다 제국주의가 훨씬 더 큰 악이라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진 뒤에야 비로소 반전 운동은 대중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양비론이 처음부터 발을 붙이지 못한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이다.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미국

올해(2015년) 2월 한국의 반전평화연대(준)은 이렇게 경고했다. “그렇게 발목에서부터 시작해 무릎을 거쳐 조금씩 수렁에 몸을 담그다 보면 어느 순간 미국은 또다시 ‘절대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폭격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오바마는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내 지상군을 파병했고 처음에는 교전이 아니라 후방에서의 교육훈련 목적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윽고 미국은 이라크에 특수부대 델타포스를 투입해서 미군 한 명이 교전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며칠 뒤에는 시리아에도 전투 부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 모든 일은 파리 공격 전에 벌어진 일이다. 파리 공격 이후 미국은 중동에 개입해야 한다는 압력을 더욱 크게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지배자들은 중요한 상황에서 미국이 프랑스의 ‘안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해 왔다. 그래서 프랑스는 독자적 군사력을 강조하며 미국 주도 유럽군사동맹 나토(NATO)를 수십 년 동안 탈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파리 공격 때문에 미국 지배자들 입장에서는 시리아라는 ‘게임’에 프랑스와의 동맹 관계라는 ‘웃돈’이 얹어진 셈이 됐다.

공교롭게도 파리 공격 직전에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도 미국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이었다. 자신이 중동에 개입하지 않는 만큼 러시아가 그 빈 자리를 노리기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돈으로 군사력을 키워 온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최근 아이시스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협력할 기색을 보였다. 미국이 크림반도 병합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여전히 불편한 관계인데도 말이다.

미국 정치권에서 “지상군 1만 명 파병” 같은 강경 대응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축소될지 모른다는 미국 지배계급의 호전적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여전히 오바마는 중동 개입을 줄이고 그 대신 중국이 있는 동아시아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시의 전쟁이 낳았고, 오바마 본인의 공습 결정이 키운 아이시스는 조금씩 조금씩 미국의 발목을 중동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여기에 파리 공격으로 제국주의간 경쟁 구도까지 강화되면서 미국 지배계급의 전략은 점차 수렁에 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