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제의료사업지원특별법 …:
공공서비스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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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 관련법과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 활성화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에는 G20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선언문에 “서비스규제환경 개선” 문구 등이 포함된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은 “서비스규제환경 개선이 G20 정상회의와 APEC 정상 선언문에 담기고 액션 플랜을 내년까지 만들도록 의결됐다”면서 “서비스 산업이 핵심인 경제활성화 법안을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자신이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 등이 정상 선언문에 “포함”, “반영”되도록 “기여”해 놓고는 그 결과를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보건의료, 교육, 관광, 콘텐츠, 금융, 물류, 소프트웨어 등 7가지 유망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법이 바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서비스 산업에서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걷어내려는 법이다. 박근혜가 특히 강조한 보건의료, 교육, 물류(철도 등) 등이 핵심 대상인데 달리 말해 공공서비스를 민영화·시장화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각종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국회를 거쳐야 하는 법 개정 방식이 아니라, 각종 시행령과 가이드라인 등으로 꼼수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10여년 전과 달리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고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행령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시행령 등으로 추진하는 규제 완화 조처가 상위법을 어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4년 상반기에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의료 민영화 조처에는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의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에 부딪혀 일부 유보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나 대한변협 등 보수적 기관과 단체들도 위법성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처럼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본가들이 안심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공공서비스 관련 법의 상위법(기본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나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성화법’이라며 특별히 강조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제정되면 이 법에서 정한 ‘투자 활성화’ 조처와 충돌하는 관련법 조항들은 효력이 약해지거나 아예 개정될 수 있다. 만에 하나 나중에 법적 공방이 벌어져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자본가들의 투자를 ‘활성화’하는 지렛대 구실을 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가장 강경하게 지지하는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이 모든 과정을 지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집중시키는 조처도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대표적인 ‘의료 민영화법’으로 불려 왔다.
새정치연합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지난 11월 17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사실상 이 법안을 본격 심의하기로 합의했다. 새정치연합은 얼마 전까지는 ‘보건·의료 분야를 완전히 제외하면’ 논의하겠다더니, 이제는 정부·여당의 수정안대로 ‘의료공공성 침해 및 의료 영리화 제외’라는 문구만 포함시키면 통과시킬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 온 보건의료 규제 완화도 의료 민영화·영리화는 아니라고 잡아떼 왔다. 지난해에만 해도 정부는 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영리 자회사가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부대사업(필수적인 의료기기, 보장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의료 민영화·영리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의료공공성 침해 및 의료 영리화 제외’라는 문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서비스산업’의 범위 자체가 넓다 보니 당장은 ‘의료 관광’처럼 다소 경계가 모호한 사업의 규제부터 허물어 의료 민영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예컨대 대형 병원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호텔(메디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면 이는 장차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에 설치된 ‘외국인 병원’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국내 자본이 국내 의료진을 고용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는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관련 규제가 완화됐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새정치연합이 법안 심의에 합의한 까닭은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근본에서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료 민영화에 반대한다지만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에서 보듯 재정 지출도 줄여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 확대(정부의 의료 지출 확대)도 일관되게 지지하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불과 3년 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무상의료 정책에서 일찌감치 후퇴했다.
영리병원
새정치연합은 (비주류일지라도) 자본가들에 기반을 둔 정당으로서 의료 ‘산업’ 활성화도 근본에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총선을 앞두고 꾀죄죄한 경제민주화법을 여당에게서 약속 받는 대가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내 주려는 듯하다. “이미 총선 분위기”라는 새정치연합은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전교조 등이 항의 방문을 하러 갔을 때에도 건물 출입을 막아 항의 방문단이 추운 길바닥에서 몇 시간 동안 농성을 벌인 뒤에야 면담에 응했다. 이종걸은 면담 자리에서도 법안 통과 저지를 약속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의료민영화법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은 아예 통과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은 ‘의료 관광’을 명분으로 원격 진료를 허용하고 국내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장차 내국인에게도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FTA 등 각종 자유무역 조처들은 내외국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의원 최동익이 일부 표현을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성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법안 상정 직후 열린 첫 상임위 회의에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가 새누리당안과 최동익 안을 병합한 절충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보고했는데 법안의 “목적과 정의”가 너무 노골적이라 “마치 업자가 낸 법안 같다”는 비난이 여야 모두에서 쏟아졌다. 새누리당 의원 신경림조차 “마치 환자를 유인하는 장사꾼 같은 말이 쓰여 있다”고 질타할 정도였다. 물론 이는 목적이 아니라 표현을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따라서 보건의료,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조합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등은 새정치연합에 기대지 말고 공공서비스 민영화법 제·개정에 맞선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