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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돌입한 타워기사

건설 공사 현장에 가면 수십 미터 높이에서 철근 더미와 목재들을 옮기고 있는 장비를 흔히 볼 수 있다. 밤이면 번쩍거리는 불빛을 내기도 한다.

타워 크레인이라 불리는 이 장비를 타고 일하는 타워 기사 노동자들이 메이 데이 이틀전인 4월 29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

평균 고공 40∼50m 이상 높이에서 일하는 타워기사들은 기본적인 안전 장치도 없어 안전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타워 크레인 기사들은 수십 미터의 조종석까지 한 계단, 한 계단을 ‘안전벨트’ 하나에 의지해 기어올라가야 한다. 한마디로 ‘고공곡예’다.

평지에 있는 사람들도 우산을 제대로 펴기 힘든 초속 10미터 이상의 바람이 불면 고공에 솟은 크레인 역시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노조 간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5대가 넘어졌고, 그 중에 2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크레인의 중량물 과부하를 막는 안전 장치(과부하방지장치·limit box)를 뜯어낸 채 작업을 강요받는 일도 있다. 좀더 많은 짐을 싣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타워 크레인 기사들이 산업재해 보상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타워 기사 노동자들은 산재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게다가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거나 낡은 장비 등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기사들은 해고되기 일쑤다. 25층 아파트를 짓는 데 타워 크레인을 사용하는 기간은 보통 10개월 정도인데 해고가 너무 잦아 어떤 건설 현장에서는 열 달 동안 타워 기사가 자그마치 11명이나 교체됐다.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바로 계약직 고용이다.

타워 크레인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계약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IMF 경제위기 전만 하더라도 이들은 타워 크레인 등 중장비를 건설현장에 임대해 주는 장비임대업체에 소속된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로 공사물량이 대폭 줄어들자 임대업체들은 타워 기사 노동자 대부분을 계약직으로 돌렸다.

노비문서

타워 크레인 노동자들의 계약서는 말 그대로 ‘노비문서’다. 계약서에 근로 계약 기간은 12개월로 제한이 돼 있다.

휴일은 한 달에 단 두 번. ‘휴일 : 월 2회’라는 문구 밑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 조항까지 달려 있다. ‘현장 사정에 따라 변경.’ 한 노동자는 일요일엔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 나가 꽃구경이라도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다.

월 280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해도, 경력이 5년 이상 이건 20년 이상 이건 상관없이 월급은 고작 130만 원 선. 그것도 모자라 회사측은 퇴직금과 국민연금 명목으로 10만∼20만 원을 가져간다.

1년 동안 ‘근속’하지 않으면 회사측이 가져간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회사측은 국민연금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짓말. 집으로 미납 통보서까지 날아온다.

월급 명세서가 따로 없는 건 보통이고 회사측은 점심 값도 주지 않는다. 하루 10시간 이외의 야간근로나 휴일 특근 등에 대한 수당도 없다. 심지어 건설 회사들은 임금을 낮게 책정하려고 서로 담합한다.

타워 기사 노동자들은 주휴일 보장, 임금인상, 단체협약 체결을 원한다. 시간외 근로수당·휴업수당 등 제반 근로기준법 준수, 산재보험 가입 등 산업 안전 보건 조치 마련도 핵심 요구 가운데 하나다. 이 모든 요구들은 너무도 정당하다.

100% 투표율, 95% 찬성

타워 기사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일어섰다.

작년 8월 타워 기사 노동자들은 전국타워 크레인기사노동조합(위원장 채수봉)을 건설했다. 타워 크레인이 본격적으로 우리 나라 건설 현장에 등장한 지 20년만의 일이다.

이 새내기 노조에 대한 타워 기사 노동자들의 지지는 아주 뜨겁다. 현재 조합원 1000여 명은 전국 타워 크레인 기사들 전체의 70% 이상을 아우르는 규모다.

타워노조 김영호 사무국장에 따르면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은 37세로 젊은 청장년층이 많아 패기 또한 넘친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사용주 단체인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이사장 신현태)은 세 차례에 걸친 단체교섭을 모두 거부했다.

여기에 노조는 조합원 총회와 집회로 맞섰다. 4월 8일 전조합원 총회와 전국 동시다발 임금인상·단체협약 쟁취투쟁 출정식은 타워 기사들의 일터인 인천 송현동 일신건영(주공아파트) 현장에서 열렸다. 부산 흥화타워 유관우 사장 집 앞, 동대구역, 광주역, 대전유성 만년교 고수부지 앞 등에서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외쳤다.

조합원 9백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에는 건설운송노조(레미콘노조) 조합원들도 다함께 참여했다. 레미콘·타워기사 노조의 파업으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과 부산 아시안게임 주요 경기장, 선수촌 아파트 등의 주요 건설 현장은 언제라도 마비될 수 있다.

이 날 집회를 기점으로 조합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만 해도 이 날을 기점으로 조합원이 136명에서 180명으로 늘어났다.

회사측은 노동자들이 노조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주)타워랜드측은 야비하게도 조합원들이 타워 크레인을 멈추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고 노조 탈퇴를 종용하기 위해 조합원 집으로 협박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노조는 굴하지 않고 파업으로 맞선 것이다. 파업에 대한 열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전원이 파업 찬반 투표에 참여한 지역(부산·경남)이 있을 정도다. 찬성률도 95%에 이른다.

타워기사노조의 파업은 승리해야 한다. 그 승리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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