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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프랑스에서 파시스트에 맞서 우파에게 투표해야 하나요?

최근 데이브 수얼이 쓴 프랑스 지방선거 관련 기사들을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실을 배울 수 있었고, 현재 프랑스 좌파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극우를 격퇴하기 위해 우파를 지지하자는 것은 막다른 길로 가는 전략”이라는 말에도 적극 지지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제가 의문이 드는 지점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이 전략은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했을 때 이미 사용된 전략이다. 당시 혁명적 좌파들조차 우파 정당의 후보 자크 시라크에게 투표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부패하고 사악하고 인종차별적인 정치인의 기를 살려 줬을 뿐이고, 국민전선을 격퇴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2012년 〈레프트21〉 93호(〈노동자 연대〉의 전신)에 실렸던 존 몰리뉴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선거 전술 가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시라크에게 투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의회 밖 대중 동원을 호소했다.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시라크에게 표를 던졌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방침을 지지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십중팔구 내가 틀렸던 것 같다.”

이 두 구절은 모순되는 듯해 보입니다. 그래서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2002년 프랑스 선거에 관해 지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독자의 질문에 답합니다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한국에 있는 우리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선거 전술에 대해 논의할 때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기차만 타도 쉽게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나라들입니다. 그만큼 교류가 잦고 심리적 거리도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프랑스 관련 문제를 다룰 동기, 전술을 결정하는 때 필요한 직접 경험과 대중 정서에 대한 직관이 풍부합니다.

반면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만한 경험, 직관, 동기부여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상상력을 발휘해 이러저러한 조건에서는 이러저러한 전술이 어울리겠다는 판단은 할 수 있겠지만, 그때조차 조심스럼고 겸손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를 전제로 질문에 대한 제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유럽 곳곳에서 정치 양극화가 일어나고, 그 오른쪽 그림으로서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헝가리의 요빅당이 그 사례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파시즘에 맞서 싸울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파시즘은 단지 극성스러운 우파인 것이 아니라, 중간계급을 핵심 기반으로 한 대중운동입니다. 그런데 중간계급은 노동계급과 달리 공통된 이해관계와 힘이 없는 파편화된 계층입니다. 이런 특징을 지적하며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중간계급을 “인간 먼지”라고 불렀습니다.

이 “인간 먼지”들을 결속시키려면 파시스트들은 그 “인간 먼지”들에게 힘이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줘야 합니다. 히틀러는 “대중운동을 통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힘센 용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은 거리를 떼 지어 활보하며 이민자, 좌파, 노동자들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파시즘이 성장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따라서 파시즘을 격퇴하는 진정한 힘은 노동계급의 대중운동에서 나옵니다. 파시스트들이 벌이는 거리 시위와 집회를 압도하는 더 큰 규모의 운동으로 힘을 보여 줄 때, 그리고 심각한 위기를 타파할 급진적 전망과 대안을 제시할 때, 파시스트들을 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 ⓒ사진 출처 blandinelc (플리커)

둘째, 파편화를 특징으로 하는 중간계급은 대자본가와 지배계급을 타도할 힘도 전략도 없습니다. 그래서 파시즘은 스스로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본가와 지배계급에 의해 권좌로 “끌어올려”져야 합니다. “체제가 허물어진다는 정서가 만연”해 기존의 ‘공권력’이 제 기능을 못할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대자본가와 지배계급은 노동계급 조직을 분쇄할 “공성망치”로 이용하고자 파시즘에 권력을 넘겨줍니다. 그 과정에서 대자본가 일부도 피해를 입지만, 지배계급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파시즘에 권력을 넘기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파시즘은 대중운동이므로 노동계급의 삶에 더 밀착된 통제 체계를 구축할 수 있고, 그래서 노동계급 조직을 파괴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노동계급 조직 파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여느 중간계급 운동과는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는 1933년 1월 총리로 임명됐습니다. 그 직전에 치러진 1932년 11월 총선에서 나치당은 1위를 했지만, 그보다 4달 전에 치러진 7월 총선 때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치당은 사기 저하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독일 대자본가를 대변한 우파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을 때, 나치당의 괴벨스는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기뻐했습니다. 일단 권력을 쥔 히틀러는 매우 급속하게 노동계급 조직을 파괴해 나갔습니다.

힌덴부르크는 1932년 4월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재선됐는데, 그때 독일 사회민주당은 히틀러를 막아야 한다며 ‘차악’인 힌덴부르크를 지지했습니다. 그 힌덴부르크가 8달 뒤에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한 것입니다.

2002년 4월 프랑스 대선은 중도좌파 정당 사회당 주도의 연정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며 대중의 광범한 분노를 사던 상황에서 치러졌습니다. 또, 국제적으로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외친 대안세계화 운동이 성장하던 상황이었습니다.

투표율이 매우 낮았고, 우파 정당 공화국연합의 후보 자크 시라크, 사회당의 후보 리오넬 조스팽 모두 득표가 크게 줄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파시스트 정당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2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하며, 전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사회 전체가 우경화하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극좌파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사회당 바깥 좌파의 득표를 합치면 국민전선의 득표보다 컸습니다. 또,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프랑스 전역에서 국민전선 반대 집회와 거리 시위가 일어났고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벌였습니다. 당시 운동은 1968년 반란 이래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파시스트가 4백80만 표를 득표하며 결선에 진출한 상황에 혁명적 좌파가 초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르펜에 맞서 시라크를 지지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옳았던 것은 아닙니다.

첫째, 당시 프랑스 상황은 대자본가와 지배계급이 파시즘에 권력을 넘겨 줄 만큼 심각한 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보수적 언론도 모두 달려들어 르펜을 공격했습니다. 결선 투표 결과 시라크는 82퍼센트, 르펜은 18퍼센트를 득표했습니다. 그만큼 시라크의 승리는 처음부터 누구나 예측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까지 나서서 시라크를 지지하라고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932년 히틀러

반대로, 당시 프랑스 상황이 파시즘이 집권할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면 시라크 지지 입장은 더 큰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193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시라크의 공화국연합도 우파의 승리를 위해 국민전선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둘째, 2002년에 프랑스 사회당은, 사회당을 비판하며 대선에 출마한 좌파들을 비난했습니다. 좌파들이 따로 출마하지 않았으면 국민전선이 아니라 사회당이 결선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그 골자였습니다. 시라크 지지 입장은 이런 비난에 취약합니다. 이는 혁명적 좌파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근거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고려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어쨌든 선택지는 시라크냐 르펜이냐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진적인 노동자 상당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시라크에 투표할 텐데, 시라크에 투표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채택하면 혁명적 좌파가 고립되는 것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말씀하신 존 몰리뉴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선거 전술 가이드’는 2011년 혁명으로 독재자 무바라크가 퇴진한 직후 이집트에서 치러진 2012년 5월 대선을 보며 쓴 글입니다. 당시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는, 매우 급진적이었지만 경험이 적고 성마른 청년들의 압력을 받아 보이콧 전술을 채택했습니다.

1차 투표 결과, 이집트 판 개혁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가 1위, 무바라크 잔당 세력의 대표인 아흐마드 샤피크가 2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습니다. 샤피크의 승리는 무바라크 체제의 복귀를 뜻하므로, 결선 투표에서 무르시에게 투표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혁명을 더 전진시키는 것에 반대하며 계속해서 군부와 타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무르시와 샤피크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이집트 대중에게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은 상황이 가능했습니다.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지지를 받은 좌파적 민족주의자 함딘 사바히가 겨우 3퍼센트포인트(약 80만 표) 차이로 3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11~12년 혁명에 적극 참가한 인사였습니다. 무슬림형제단에서 좌경적으로 이탈해 선거에 출마한 압둘 포투도 꽤 많이 득표하며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후 무르시 정부 하에서도 좌파적 반정부 활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혁명가들이 일찍부터 개입했더라면 대선 결과는 꽤나 달랐을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집권한 독재자를 몰아낸 정치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대중의 의식이 단박에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데로 옮아 가는 것은 아닙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도 그렇지만 대중은 여러 대안을 시험하며 점차 혁명가들을 지지하게 됩니다. 이집트 혁명가들은 이 점을 놓쳤습니다.

제가 보기에 몰리뉴가 이런 이집트 혁명가들의 실수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다가 2002년 프랑스에 관한 입장까지 재고한 것은 너무 멀리 나아간 것인 듯합니다.

그러나 몰리뉴의 우려와 달리, 2002년 프랑스에서 혁명적 좌파는 시라크 지지 입장을 채택해야만 고립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은 결선 투표에 참가해 시라크에 투표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집회와 거리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예견된 시라크의 승리에서 멈추지 말고 국민전선을 완전히 격퇴할 때까지 투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며 협력적으로 운동을 건설하는 동시에, 파시즘에 어떻게 맞서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는 우호적으로 논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차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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