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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지침:
청년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지침

12월 30일 고용노동부가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통상해고 지침) 초안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취업규칙 변경 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어떻게 선정됐는지 알 수 없는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형식적으로 의견 수렴을 했다는 명분만 쌓으려 했다.

노동부 장관 이기권은 “법과 판례에 입각한 지침인 만큼 … 임금을 깎거나 쉬운 해고 등이라며 폄하하는 것은 판례와 법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강변했다.

실제 정부 발표 자료를 보면, 온갖 법원 판례들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 지침들이 단지 법원 판례들을 모아 둔 것이라면 정부가 애써 지침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진실은, 정부가 법원 판례들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이어 붙여, 기업들이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지침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경총 등 기업주들은 정부의 지침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오히려 정부 지침이 기존 법률과 법원 판례와 충돌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아전인수

정부 지침은 해고를 통상해고(일반해고), 징계해고, 정리해고(경영상 해고)로 구분하면서, ‘업무부적응자’나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통상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노동자 평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도록 하고, 저성과자에 대해 교육훈련이나 배치 전환 등의 기회를 주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기 때문에, 통상해고 지침이 “부당해고 사례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게 하는 해고에 대한 안전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침으로 통상해고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법률에 반하는 것이자, 새로운 해고 방식을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그 어떤 법률에서도 통상해고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횡령 등 개인적인 비리나 심각한 법규 위반을 저질렀을 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징계해고와, 기업의 사정이 크게 악화됐을 때 가능한 정리해고 두 가지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 사례’로 여러 판례를 들고 있지만, 이는 모두 근로기준법 상의 징계해고 사례다.

성과 평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협력하며 일하기 때문에 객관적 수치로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업 실적처럼 객관적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과도 사실은 사측이 어떤 업무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교육훈련이나 배치전환의 기회를 반드시 줘야 한다는 규정도 오히려 사측이 퇴직을 거부하는 노동자를 괴롭히는 수단이 될 공산이 크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의 대규모 ‘희망퇴직’ 사태에서 보듯, 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을 교육훈련이라는 명분으로 대기발령하고 매일 ‘회고록’을 작성하도록 하는 식으로 노동자를 괴롭혀 결국 나가게 만드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처럼 정부의 통상해고 지침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되지 않는다는 노동법의 대원칙을 허물어뜨리는 것이자, 이미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어느 때나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쉬운 해고’ 방안이다. 여러 제한 조건을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은 이미 이런 조건들을 피하는 방법을 개발해 왔다.

기업주들에게 '해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박근혜 정부. ⓒ이미진

회고록

취업규칙 변경 지침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노동자 다수의 동의 없이도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삭감하는 취업규칙 변경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는 판례는 사례조차 몇 안 되는 예외적 사례들일 뿐인데, 이를 근거로 근로기준법 자체를 뒤엎는 지침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지침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대표가 ‘합리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하거나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사측이 마음대로 변경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대안적인’ 임금 삭감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측이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바꿔도 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지침 초안 발표에 이어, 1월 중에 지침을 최종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법 절차마저 무시하고 “행정 독재”로 통상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한국 지배자들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세계경제 위기에 따라 산업·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커지자, 기업주들에게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의 방안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진 것이다.

이번 지침을 두고 “지침은 노동부 내 노동행정 집행을 위한 규정일 뿐 대외적인 효력이 없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부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통상임금, 근로시간 규정이 법률보다 우선한 역사가 있을 뿐 아니라, 정부 지침이 결국 법률 개악(통상임금 축소,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연장)의 근거가 됐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정부 지침 발표 전에 투쟁을 발전시켜 이를 저지해야 한다. 그래야 올해 벌어질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데도 더 유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