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은 청년실업의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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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교육부가 ‘2016년 업무보고’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의 핵심은 “산업수요 맞춤형”으로 대학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그 내용 중 하나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정원 축소다. 2022년까지 16만 명을 감축한다. 실제 저출산 등으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생이 전체 대학 입학정원보다 줄어드는 추세는 지속될 예정이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은 인구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정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학 ”등급별 정원 감축”이다. 대학평가를 통해 일부 대학은 퇴출되고, 일부는 정원의 10~15퍼센트를 감축해야 살아남는다.
이런 계획은 청년실업률(20~29세)이 평균 실업률보다 갑절 이상이고 ‘니트족’*
이 늘어가면서,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심화돼 국가경쟁력 약화와 사회 불안 요소가 된다는 지배계급의 우려에 따른 것이다. 또 지배계급이 보기에 필요 이상의 ‘고학력화’는 청년들의 눈높이를 높여 노동시장 진입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대학 진학률을 억제하고 청년들의 눈높이를 낮춰서, 저임금 노동력 공급에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특성화 고교, 마이스터 고교”를 늘려 고등학교 교육을 곧바로 취업으로 유도하는 방향과도 연결돼 있다.
정부 입장에서 정원 미달인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비효율이다. 또 정부는 대학평가를 통해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정부는 통제를 강화하며 대학을 “산업수요”에 맞는 방향으로 개편하려 한다. 이번 ‘업무보고’에도 공학 계열의 비중을 늘리는 “프라임 사업”, “산학협력” 등의 계획들이 포함됐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맞지 않는 것을 줄이고, 교육의 구실을 곧바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능력”을 기르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논란이 된 “프라임 사업”의 목적은 첨단 신소재, 바이오, 의료관광 같은 한국의 “신산업 창출“을 위한 연구분야 등과 관련한 고급인력을 양성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제조업의 노동력 공급에 도움을 주는 데에 있다. 특히, 대기업 대비 사업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심각한 취업난에도 여전히 노동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이 원하는 기술과 눈높이를 갖춘 노동력을 공급이 중요하다.
대학을 ‘취업양성소’로 만들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노동자 교육 비용과 시간을 절감시켜 주는 효과도 있다. 기업에 입장에서는 이미 “직무능력”을 갖춘 노동력을 공급받으니 말이다. 인문학도 “코딩, 디지털, 기초과학”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다른 학과와의 “융합”을 촉구한다. 교육이 국가경쟁력을 위한 노동생산성 향상에 더 기여하라는 뜻이다.
또 정부는 이제껏 한국에서는 별로 발달하지 않았던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선(先)취업 후(後) 진학”을 모토로 교육과정을 취업과정에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취업보장형 고교-전문대 통합교육”,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신설한다.
이런 조치를 통해 대학 진학률을 억제하는 동시에 기업들이 너무 수준 낮지도 않고, 지나치게 눈높이가 높지 않은 적절한 노동력을 꾸준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듯하다. 또한 정원 미달 대학들을 “평생교육” 기관으로 전환시켜 일부 사학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는 계획과도 연결돼 있다.
고통전가
박근혜 정부는 ‘교육개혁’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학, 의학 계열을 늘린다고 청년실업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은 이미 “산업수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원을 조정해 왔지만 청년실업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공학계열 입학정원은 9.0퍼센트 늘었고, 의약계열은 갑절이 됐다. 같은 기간 인문, 사회계열 입학정원은 각각 9.7퍼센트, 6.6퍼센트 줄었고 자연계열도 4.4퍼센트 줄었다.
그런데 지난 4년간 상대적으로 그나마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던 공학계열에서 큰 폭으로 취업률이 떨어지면서 교육부 정책의 근거가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았던 공학계열의 취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청년실업이 “산업수요” 맞지 않는 교육 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은 일자리 해결책이긴커녕 청년실업의 고통을 학생과 대학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지난해 대학평가로 E나 D등급을 받은 대학은 대부분 지방의 '하위권' 대학들이다. 심지어 고려대처럼 본교는 A등급 받았지만 지방 캠퍼스는 D등급을 받은 곳들도 있다. 대학평가는 대학의 ‘서열’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강화시키고 있다.
'부실'대학들은 사립대학 위주의 대학 시스템 속에서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학법인들이 부패한 탓에 생겨났다. 더군다나 정부는 그동안 부패와 부실운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사학재단이 퇴출되더라도 잔여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줬다. 해당 대학의 학생과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한 셈이다.
교육의 내용을 “산업수요”에 맞게 재편하면서 따르는 피해와 고통도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미 프라임 사업의 여파로 몇몇 대학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예술계열 학과를 폐지하는 방침을 세웠다. 프라임 사업 이전에도 예술계열 학과들은 줄곧 통폐합의 1순위였다.
취업률을 잣대로 벌어지는 일방적 통폐합은 그 방식이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내용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학문의 다양성을 축소한다.
또한 “산학협력” 속에서 대학이 이윤 창출과 밀접한 연구만 지원 받을수록 이윤 논리에 따라 연구 결과가 왜곡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산학협력”을 적극 추진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는 대학 연구들에서는 특정 약이 심장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서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산업수요”에 대학교육을 맞추는 것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경제 상황에 따라 대학 교육도 불안정해 질 것이다. 예컨대 과거 잘나가던 해운, 철강, 석유화학 산업들이 지금은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수요”에 맞는 학과를 신설해도 해당 산업이 위기에 처하면, 다시 통폐합 수순을 밟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안으로 교육개혁과 함께 노동개혁을 핵심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일반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기존 노동조건을 떨어트리는 방식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리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노동개혁’은 노동자와 청년을 반목시키며 전반적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학생과 대학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전가할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은 중단돼야 한다. 고등교육을 정부가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 한국은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부담비율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고, 민간부담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비리 사학에게 특혜를 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재정미달인 사학들은 법인을 퇴출시켜 국공립화해야 한다. 몇몇 대학이 아니라 모든 대학들에게 국고 지원을 크게 늘려 교육 여건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국가부문에서부터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이를 민간부문에도 강제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 노동자 교육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또 ‘대학구조개혁’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정책과 맞물려 있으므로 ‘대학구조개혁’과 “노동개혁” 모두 청년실업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실업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실업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축적 방식에서 비롯한다.
한국은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추세다.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상승할 때 취업자는 얼마나 상승하는지 보여 주는 ‘고용탄성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그런데 ‘고용 없는 성장’의 근저에는 자본가들이 경쟁 때문에 점점 생산수단, 생산적인 기술 같은 곳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경향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가 자리하고 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하면 자본가는 더 적은 노동자로도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상대적 과잉인구’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또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상대적 과잉인구’ 중에서도 “취업이 매우 불규칙적인 현역 노동자집단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유형을 ‘정체적 과잉인구’로 분류했다.
따라서 “정체적 과잉인구는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무진장한 저수지를 제공한다. 그들의 생활형편은 노동계급의 정상적 평균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그들의 특징은 최대한도의 노동시간과 최소한도의 임금이다.”
최근 아르바이트나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층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정체적 과잉인구’에 해당하는 것은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기존 노동력을 혹사시키며 신규채용은 가급적 하지 않거나, 질 낮은 일자리를 청년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규채용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금융 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 최저수준이었다가, 2012년 이후부터는 금융 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기업들의 신규채용은 감소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