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문 제주교육감은 영어회화전문강사 집단 해고를 철회하고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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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멀리 제주에서 해고 칼바람에 맞서 비정규직 교사들이 싸우고 있다.
작년 12월 31일 제주교육청(이석문 교육감)이 4년 만료 영어회화전문강사(영전강) 재계약을 지양하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발송했다. 이는 사실상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영전강 119명 전원을 해고하겠다는 정책이다.
영전강 노동자들은 이 조처에 반대해 1월 13일부터 교육감 직접 고용제도 실시, 무기계약 전환 등 고용 안정 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2월 6일 현재까지 영전강 노동자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광주지역에서 5년간 일한 영전강을 해고한 것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영전강의 사용자는 교육감이며, 4년 이상 근무한 영전강은 무기계약직이므로 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노위의 이런 판결 직후 진보 교육감인 제주 교육감이 영전강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석문 교육감은 영전강 제도를 폐지하고 영어 공교육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하지만, 실은 영전강의 무기계약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본래 영전강 제도는 이명박 정권의 영어몰입교육정책(‘어린쥐 교육’)의 일환으로 영어수업시수 증가에 따라 나온 제도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간제 2년 사용기간 제한 규정을 피해 4년 동안 기간제 고용을 허용하는 꼼수를 썼다. 박근혜 정권은 4년 만료 이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으로 영전강을 다시 기간제 노동자로 만들었다. 평생 비정규직 신세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제도인 영전강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제주 교육감이 영전강 제도 폐지를 이유로 영전강을 집단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석문 교육감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영어를 배워야 했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해고 불안 속에서 영전강으로 일해 온 비정규직 교사들도 영전강 제도의 피해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석문 교육감은 영전강의 집단 해고를 철회해야 한다.
영전강 제도 폐지와 고용 안정
전교조 활동가들을 포함한 상당수 교사들은 영전강 제도 폐지 요구와, 영전강의 고용 안정과 정규직화 요구는 모순이므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영전강 제도와 영전강 비정규직 교사들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전교조는 영전강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면서 영전강에 대한 고용 대책은 정규 수업 외로만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의 ‘비정규직 철폐’ 요구가 ‘비정규직 해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제도 철폐는 마땅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측의 신규 채용안을 반대하며, “불법 파견 철폐하고,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전교조 활동가들을 포함해 노동자 운동은 지지해 왔다. 그런데 왜 학교 안에서 함께 일하는 영전강 노동자의 고용 안정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가?
물론 교육적으로 보더라도 영어몰입교육에 따른 영어수업시수 증가와 비정규직 확대에 이용된 영전강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그러나 나쁜 제도와 그 제도로 인한 희생자는 구분해야 한다. 영전강 제도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어디까지나 그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 정부 관료들에게 돌려야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영전강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매년 해고 불안에 시달리며 천대 속에서 일해 온 영전강 교사들은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이자 정규직 교사들이 연대해야 할 동지다.
따라서 정규직 교사로서 필요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별도의 교육을 받고 교사 간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영전강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사실 학생들과 눈빛을 한 명, 한 명 교환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 더 많은 교사들이 필요하다. OECD 평균 학급 당 학생수(2013년 기준) 초등학교 21.2명, 중학교 23.6명에 비해서도 한국의 학급 당 학생수는 높은 편으로,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평균 학급 당 학생수는 초등학교 25.3명, 중학교 30.8명이다. 한 교사가 맡는 과다한 수업과 학생 수는 '저출산 시대'인데도 교육재정 삭감의 압력 속에서 크게 줄어들고 있지 않고, 여전히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동계급의 단결
그러나 상당수 정규직 교사들뿐만 아니라 영전강 노동자들도 기존 임용체계 속에서는 영전강의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임용고사를 통한 교사 임용체계가 어떤 것인가?
임용고사는 교사 선발을 위한 경쟁체제로, 노태우 군사 정권 시절 법제화된 제도이다. 이런 임용고사 제도가 생긴 이래 한층 강화된 경쟁으로 인해 교사 노동의 소외와 교사들 간 갈등이 심화됐고, 교육운동에도 심각한 균열을 초래했다. 교육 전문성 측면에서도 임용고사는 도입 시점부터 타당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제도였다. 그래서 전교조도 도입 당시 임용고사 방식의 교사 선발 경쟁 체제에 반대했었다.
그런 임용고사를 통한 임용체계를 이유로 영전강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면, 학교 안에 수많은 비정규직 교사들과 분열을 초래해 시간제 교사제도 저지나 정규직 교사 충원을 요구하는 투쟁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학교에는 시간제, 기간제 강사 등을 포함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미 20만 명이 넘는다. 정규직-비정규직 교사 간 분열이 깊어지면 정부의 부당한 교육 정책과 학교 관리자의 횡포에 맞서는 교사 노동자들의 투쟁력이 약화돼 전교조에도 해롭다.
따라서 영전강 고용 안정 문제는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비정규직 교원제도 폐지와 정규 교원 충원, 비정규 교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함께 싸워야 한다. 교사 노동자들이 고용 지위를 넘어 단결한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과 전교조 탄압에 맞서고 정규 교원 충원을 강제할 힘을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전교조는 영전강 제도 폐지와 동시에 기존 영전강의 고용 안정 나아가 영전강과 같은 비정규직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