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만화로 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마르크스의 혁명적 경제사상에 대한 생생하고 친절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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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 이름난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마르크스가 옳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에 관한 마르크스의 통찰을 (다소 마지못해) 인정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한국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개설서가 지난 몇 해 동안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심지어 아동용 학습만화 시장(!)에도 《자본론》에 관한 책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서점을 둘러보면 좋은 《자본론》 해설서를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책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지적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한다.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귀감을 주는 옛날 책’ 정도로 소개하고 말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해설서가 마르크스 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칭 ‘마르크스 경제학자’의 책들도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매우 학술주의적인 경우도 많고, 최악의 경우 마르크스를 혁명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에 혈안이 된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을 시원하게 대변하면서도 두껍지도 않고, 재미있게 읽을 만한 유쾌한 책이 어디 없을까 고민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만화로 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만화로 쉽고, 친절하게 《자본론》을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이론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나 매력적인 면도 많다. 우선 이 책은 《자본론》 1권에서도 어렵기로 악명 높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상품과 가치에 대한 이론을 굉장히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물론 추상노동이 마치 교환만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묘사가 있긴 한데, 여기에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긴 하겠다.)
또,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가치를 전부 소득으로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만큼만 받아 가면서 착취가 발생한다는 점도 아주 잘 설명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맞고 있는 장기 불황을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이론에 따라 명쾌하게 설명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1백50년 전의 수염 난 공산주의자가 쓴 책이 왜 아직도 현실성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또 이 책은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열렬히 지지하는 관점에서 쓰여졌다. 저자 데이비드 스미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노동계급은 끝장났다’고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프레카리아트론자들의 주장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노동계급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노동자들의 민주적 참여로 운영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모순을 발견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저자가 한국 노동운동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왔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응원과 지지를 읽다 보면 가슴 한편이 훈훈해진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의문이 드는 것도 많다. 특히 개정판을 내면서 추가된 부분이 그렇다. 데이비드 스미스는 서문에서 여전히 노동계급은 건재하며 그 투쟁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자본론》에서 묘사한 현실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한 노동자들”이 “가난한 노동자들과의 경쟁[을] ... 두려워[하고] … 동료 노동자들보다 고용주를 더 신뢰한다”고 말하거나, 세계화 덕에 기업들이 “저임금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게 돼 노동자들이 투쟁할 힘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결국 그가 비판한 프레카리아트론과 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오늘날의 자본이 더는 “생산과 판매에서 이윤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금융 투기나 “세금 착취” 통해 이윤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런 점들을 강조하면 금융화로 인해 자본주의의 현실이 완전히 변해서 생산현장에서의 착취보다 신자유주의적 ‘수탈’이 더 중요해졌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1백50년 동안 자본주의의 핵심적 요소들은 변치 않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저자 스스로가 서문에서 바로 그 때문에 《자본론》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또 범우사에서 1989년에 나온 판본과는 달리, 이번 판에서는 레닌주의적 혁명정당에 대한 반감이 보이는데 이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전위 정당’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았다”면서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지한 정당 개념이 마치 노동계급의 민주적 혁명조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정작 레닌주의자들이 이른바 ‘전위 정당’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원칙을 제대로 옹호하기 위해서였다. 노동계급의 의식이 불균등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장 급진적인 소수 노동자들부터 똘똘 뭉쳐서 계급운동의 전진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스미스의 원칙이 변한 것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약점이 있음에도,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친절하게 해설하고 오늘날의 현실을 설명하는 개설서 중에서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렇게 매력적인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처음 접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물론 만화라는 형식 때문에 설명들이 다소 짤막해서 이 책만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총괄적으로 이해하거나 《자본론》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출발점 삼아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을 탐구하는 데 용기와 의욕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