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법 개정 서명 운동이 활력 있게 벌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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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6만 2천 명의 서명과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1차 기간이던 2월 5일부터 17일까지 목표치인 4만 1천6백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서명에 함께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조사 방해를 규탄하며 특별법을 개정하고 제대로 된 수사·기소를 위해 특검을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작년에 발의된 특별법은 정부의 방해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 반쪽짜리가 됐다. 정부는 그나마 출범한 특조위 활동조차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특히 유가족들이 요구한 특조위 활동 기간 연장은 중요하다. 특조위 활동 기간은 최장 1년 6개월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에 예산을 지급하고는 2015년 1월 1일에 활동을 개시했다고 우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세월호 인양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7월 말이 되기도 전에 특조위 활동이 종료된다. 현재 국회는 특조위 예산을 6월 말까지만 배정했다.
선체 인양과 정밀 조사는 세월호 진상 규명에서 매우 중요하다. (비통하게도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 있을 미수습자 9명을 수습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와 1주기를 전후했던 운동에 밀려 인양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양이 되기도 전에 특조위 활동이 끝난다면 인양을 해도 조사는 할 수 없다. 그간 유가족들이 선체에 접근하는 것도 막고 인양을 미뤄온 것이 이런 까닭인가 싶어 분통이 터진다.
1차 서명 기간 중 안산에서는 지난 15~16일, 희생된 학생들이 자주 지났을 중앙역과 그 인근에서 유가족들과 지역 노조, 시민 단체들이 함께 서명 운동을 했다. 25명가량이 참여해 지하철역 곳곳에서 홍보전을 하고 서명을 받았다. 나도 15일에 함께 참여해 팻말을 들고 시민들에게 서명을 호소했다. 이날 하루 안산 중앙역에서만 6백60여 명이 서명을 했다. 따뜻한 캔커피를 쥐어 주고 응원을 하고 가는 분들도 있었다.
기억 지우기에 맞서기
정부와 우익 언론은 그동안 집요하게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음을 안다. 전교조 안산지회는 지난해 여름부터 매주 2회씩 주요 지하철역에서 세월호 팻말 시위를 이어 왔다. 지역 단체가 매주 세월호 캠페인을 해서 거의 70회를 진행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된 것은 단원고 기억 교실 존치 여부다. 지난 2년 동안 희생 학생들의 교실은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슬픔을 위안받고, 세월호 참사에 슬퍼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기억 순례를 하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소였다.
지난해 12월에 경기도 교육청은 기억 교실을 치우겠다고 발표했다가 항의에 부딪혀 철회했다. ‘단원고 교육가족’은 2월 2일 “이제 존치 교실을 재학생들에게 돌려줄 때”라는 기자회견을 했고 18일에는 교실을 치우지 않으면 학교 운영을 저지하겠다며 16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막아 무산시키기도 했다. 그 와중에 단원고는 교실 공사를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기억 교실을 정리하려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한 것은 당연하다.
그 후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23일 이재정 교육감과 유가족, 그리고 학교운영위원장 등이 모여 3자 협의를 했다. 교실과 수업 공간을 분리시키고 당장 필요한 신입생 교실을 임시로 마련하는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장에 기억 교실을 치우지는 않는다는 소식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협의 테이블 그 자체가 교실 존치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재정 교육감은 “단원고 교실은 추모 공간이 아니며, 학생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라는 견해를 거듭 밝혔다.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기억 교실을 보존하면서 새 건물을 건립할 시간적 여유가 2년이나 있었지만 교육청이 당사자 간 합의를 내세우면서 유가족들이 기억 교실을 치우라는 압박을 받는 상황이 됐다. 단원고 학운위원장 등도 기억 교실을 치우라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그간 특별법이 제정되고, 세월호 인양이 결정되고, 교실을 치우겠다는 교육청의 계획이 번복된 것은 세월호 운동의 성과이거나 비록 시위 등으로 표현되진 않았을지라도 사회 저변에 깔린 광범한 분노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가 지난해 12월에 경기도 교육청에 1만 2천여 명의 교실 존치 서명을 제출하고, 교사 서명을 조직한 것은 마땅히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교실 존치를 분명하게 밝히며 서명받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듯하다. 나도 동료 선생님들에게 교실 존치 서명을 받으면서 다른 세월호 관련 서명과 달리 유독 많은 토론을 해야 했다.
분명 교실 부족은 학교 운영상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유가족들이 교실 존치 주장 때문에 고립되면 안 된다는 걱정 섞인 말도 있다.
그러나 희생자 3백4명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실만 되돌린다고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그리움과 슬픔과 미안함이, 그것을 만들어내고 진실을 숨기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데 기억 교실이 일반 교실로 전환된다고 해서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가능할까? 나는 교실 존치에 대한 토론을 하면 이런 물음을 던지곤 한다.
또한 기억 교실은 단원고 학교 운영의 문제이기만 하지 않다. 6백50만 명의 특별법 제정 서명은 세월호 참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로 공감했는지 잘 보여 줬다. 이런 광범한 지지는 교실 존치 주장이 고립될 거라는 걱정이 기우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교실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오히려 현재 기억 교실을 존치하며, 세월호 운동을 확대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뤄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특별법 개정 서명 운동과 다가오는 4·16 2주기를 계기로 지난 1주기 때 그랬듯 다시금 세월호 운동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세월호 운동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의 초점을 형성하는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바람이 더 전진해 정부를 압박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