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정의당에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이렇게 생각한다 ─ 총선: 진보·좌파 후보와 정당들이 지지를 얻다”를 읽으시오.
노동운동 좌파의 일각에선 정의당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관심과 개입, 지지 표명을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좌파도 아닌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좌파가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이 나라 노동자 대중의 정서와 의식을 무시하는 추상적 관점의 발로다.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우리 좌파들은 추상적 원칙보다는 선거에서 무엇이 노동자들의 의식과 향후 투쟁에 도움이 될까를 살펴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레닌이 말했듯이 우리는 "머릿속 청사진에 따라 그려낸 인간 재료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여진 구체적인 인간 재료, 동시에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인간 재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좌익 공산주의-유치증》)
정의당 핵심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가 서유럽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이 노선은 ‘계급에서 국민(민중)으로’, ‘체제 내 개혁’, ‘자국의 안보 지지’ 등의 특징을 보여 왔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집권 후에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등(‘사회적 자유주의’) 노동계급을 배신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념 지향을 변호할 좌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혁주의 정당에 대해 판단할 때는 계급 기반과 강령, 구체적 계급 갈등 속에서의 구체적 실천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노동조합운동의 상층·전임 지도자들을 매개로 노동자 운동과 연관을 맺는다.
지난 2년간 세월호 투쟁과 노동자 투쟁 속에서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은 자신들의 진보 염원을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단으로서 정의당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정의당은 지난해 국회 안에서는 유일하게 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반대한 정당이었고, 민주노총의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지지하고 당원들을 동원해 참여해 왔다.
그래서 지난해 중반부터 급속히 늘어난 정의당 당원에는 조직 노동자들과 청년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경남 창원성산 민주노총전략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노총 경선에서도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근소하게 앞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개혁 염원 대중을 설득하려는 좌파라면 국회에서 주류 정당들만 날뛰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심정에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정의당 지도자들 일부가 선거에서 태극기 마케팅을 하고 지방경찰청장 출신 더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것은 메스꺼운 일들이다.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 당 지도자들이 민주노총에게 사회적 합의주의를 주문해 온 것도 문제다. 노동자연대는 이런 일들에 대한 비판을 유보한 적이 없다.
노동자연대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도 그 당의 좌파를 지지했고 온건 개혁주의 후보들이 유리하게 된 경선 결과를 비판했다. 개혁주의 정당이 노동운동과 맺는 모순된 관계 때문에 단지 정의당의 우경화만 폭로하려고 하면 안 되고, 당내 좌파들을 지지하는 등 개입해서 우경화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노동운동 전체에도 이로울 것이다.
물론 정의당의 이런 온건함 때문에 더 전투적인 노동자들은 노동당 등에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좌파는 정의당도 총선 지지 정당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정의당의 부상을 통해 진보 염원을 현실화해 보려는 노동자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위함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선전은 적지 않은 조직 노동자들에게 박근혜와 맞서 싸울 자신감을 줄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은 노동계급 자신의 의식과 조직 성장의 산물이다. 그 안에서 분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2016년 4월 9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