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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노동(계급)인가 시민인가?

오늘날 노동운동 내에는 노동자들이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의 지지를 얻으려면 자신들만의 고유한 요구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유행한다. 심지어 이를 위해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물론 이처럼 노골적으로 노동계급의 힘과 사회적 영향력을 부정하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노동’을 대변하는 것이 다소 협소한 집단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 ‘시민’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 보인다.

예컨대 이번 총선에 출마한 권영국 변호사는 우리가 반갑게도 15.9퍼센트라는 좋은 지지율을 얻었다. 여당이 ‘부지깽이를 갖다 놔도 당선한다’는 경주에서 이런 성과는 민주노총과 특히 금속노조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는 쌍용차 투쟁 등 각종 노동자 투쟁에서 권영국 변호사가 헌신적으로 기여해 온 것에 대한 화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권 변호사는 선거 직전까지 가칭 ’시민혁명당’을 만들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권영국 변호사는 노동자 정당이 “특정 계급 계층만을 강조하는 정치운동”이라는 비판적인 논평을 하기도 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정의당의 지도자들도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당명이나 강령 등에서 이를 강조하는 것은 무척 꺼린다. 노동자들이 그저 다양한 피억압자들의 일부로서만, 한 지식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N분의 1”로서만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예전에 노동자들과 다른 피억압자들을 뭉뚱그려 ‘민중’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시민사회’라는 표현이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했다. 이는 체제 변혁적인 운동을 하던 당시 활동가들의 다수가 급진적 전망을 포기하게 된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중투쟁의 폭발은 군사독재 정권으로 하여금 예전처럼 폭압적인 방식으로 지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비록 제한적이고 느린 속도로 진행됐지만 일정한 자유가 허용됐고 당시 지배자들은 경제적 호황 하에서 이를 뒷받침할 경제적 양보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덕분에 독재정권 하에서 불가피했던 방식, 즉 자그만한 정치적·경제적 요구를 내건 운동조차 작업장과 거리에서 격렬한 투쟁을 거쳐야만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뒤에 벌어진 옛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는 많은 활동가들이 운동의 수단뿐 아니라 그 목표까지 수정하도록 만들었다.(이 사회들의 진정한 성격에 대해서는 ‘국가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시오.) 그리고 당시 노동운동가들이나 학생운동가들이 체제 변혁적 운동에서 개혁주의적 ‘시민’운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론적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시민사회’론(특히 코헨과 아라토의)이었다.

원래 ‘시민사회’는 서구에서 봉건사회를 대체해 18세기 후반 이후 등장한 사회질서를 뜻하는 용어였다. 프랑스 혁명 등의 성과로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난 평등한 인격체, 즉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이처럼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계약으로 만들어졌다는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초의 만만찮은 도전은 당대의 위대한 사상가 헤겔에게서 나왔다. 그는 시민이라는 개념이 사회의 내적 이질성을 은폐한다고 봤다. 헤겔은 이런 시민사회의 갈등을 억제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지상 위에 구현된 관념”의 최고 형태가 국가라고 봤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분석을 뒤집어 유물론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으로 발전시켰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의 불평등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유로운’ 시민 중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자유밖에 없다.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시민, 즉 자본가는 그 힘을 이용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 이상의 무보수 노동을 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차지한다.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의 계약이라는 착각은 이런 착취 관계를 은폐한다. 또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는 국가를 통제해 계급 지배를 유지한다. 헤겔과 달리 마르크스는 국가를 계급 지배의 수단으로 보았다.

헤겔과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에 반하는 시민사회론은 1970년대까지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 유럽 전역을 휩쓴 반란이 1970년대 후반에 패배로 끝난 뒤 시민사회론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옛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에 힘입어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유주의의 착각을 낱낱이 해부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다시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으로 후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부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개혁주의적으로 왜곡한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그람시는 파시스트 감옥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버리지 않은 혁명가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들은 그람시의 주장 중 일부, 특히 ‘시민사회’론을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끌어다 썼다. 이들은 ‘시민사회’가 허약한 러시아에서는 ‘기동전’(혁명적 봉기)이 효과적이었지만, 시민사회가 강력한 서구에서는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영향력)를 장악하기 위한 ‘진지전’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해석은 1990년대 초 체제 변혁적 전망을 상실한 한국의 ‘탈(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로의 전향을 피하면서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오솔길을 보여 주는 듯했다. ‘자본주의가 저절로 붕괴할 것’이라거나 ‘노동자들이 곧 혁명을 향해 전진할 것’이라는 둥 조야한 기계적 유물론이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판을 치던 시절에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주의’보다 현실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람시는 기동전과 진지전을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았다. 그람시가 시민사회에 주목한 것은 시민사회 – 교회, 정치·문화 결사체, 정당, 학교 등 – 가 혁명적 위기 시기에, 심지어 국가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체제를 버티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람시는 1919~20년 이탈리아를 휩쓴 거대한 공장점거 물결이(‘붉은 2년’) 이탈리아 국가를 뒤흔들었지만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파시스트들이 권력의 공백을 차지해 버리는 과정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또, 피억압 민중을 동원해 봉건 구체제를 분쇄해 버린 프랑스의 부르주아지와 달리 이탈리아의 부르주아지는 농민 반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들의 과제(이탈리아 국가의 통합)를 달성할 동력을 얻지 못한 사례도 헤게모니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특히 그람시는 당시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이 퇴조하는 상황에서 가망 없는 무장봉기를 조직하려 한 이탈리아 공산당 내의 초좌파들과 논쟁하기 위해 이 점을 거듭 강조했다. 확신에 찬 소수의 행동만으로는 혁명에 성공할 수 없고 노동계급의 다수를 공산주의 쪽으로 견인하기 위해 참을성 있게 개혁주의자들과의 공동전선을 건설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레닌과 트로츠키 등 코민테른 지도부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람시가 말하고자 한 것은 “투쟁의 결정적 계기”(무장봉기)가 성공을 거두려면 대부분의 시기에 혁명가들은 진지전을 통해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혁명이 성공하려면 자본가들보다 노동자들이 더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노동계급 자신과 다른 피억압 민중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육이나 선전, 즉 이데올로기 투쟁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통해서만 그런 믿음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이 시민사회에서 영향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상이다. 어떤 사회집단이 자기 이익도 지키지 못하는 계급에게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어떤 피억압 민중이 그런 노동계급과 손잡고 기존 지배자들의 폭력적 지배에 도전할 용기를 내겠는가.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 즉, 이윤 생산에서 차지하는 결정적 구실 때문에 다른 사회집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직접생산자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착취자들 외에 다른 사회집단의 희생을 요구할 객관적 필요도 없다. 이런 점들이야말로 다른 사회집단이 아니라 노동계급만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체제 변혁뿐 아니라 진정한 사회 개혁을 쟁취하는 투쟁에서도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의 이런 사상을 이어받아 노동계급이 어떻게 ‘중심적인’ 구실을 할 수 있는지 발전시킨 혁명가였다.

계급을 시민으로 대신하려는 시도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하는 데에나 유용할 뿐, 진정한 사회 개혁의 동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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