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본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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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회주의라고 하면 옛 소련,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동독을 비롯한 과거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떠올린다. 이 국가들은 시장 경쟁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고 생산물이 교환되는 자본주의와 달리, 주로 국유화된 경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경제 외형이 비슷했지만, 등장 과정에서는 질적 차이들이 있었다. 소련은 1917년 노동자 혁명으로 탄생했지만, 1928년 스탈린이 반혁명을 일으켰다. 중국·베트남은 지식인이 농민을 이끌고 일으킨 민족해방 혁명을 거쳤다. 쿠바는 소수 지식인들이 정부를 전복시킨 뒤, 나중에 사회주의를 선언했다. 북한과 여러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어떠한 혁명도 없이 소련의 군대가 들어와 소련식 체제를 이식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노동자들의 자력 해방’이라고 했는데, 노동자의 혁명적 투쟁도 없이 사회주의가 가능할까? 사회주의는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 권력’을 뜻하는데, 노동자들이 국가 권력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사회들을 사회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사회주의를 국유화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그런 국가들의 본질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다. 노동자 국가의 맹아를 보여 준 1871년의 파리 코뮌, 최초의 노동자 권력인 1917년 혁명 직후 러시아에서 국유화는 없었다. 그래도 노동자 권력(의 맹아)이었다.
1947년 팔레스타인계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핵심 원리로 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동유럽과 소련을 분석하며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 국가라고 주장했다.
경쟁과 축적
자본주의는 봉건제나 노예제 같은 전(前)자본주의와 달리 끊임없이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가들은 계속해서 새롭고 효율적인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자본가들의 개인적 소비는 축적에 대해 저지르는 도적질이다. … 축적하라, 축적하라! 그것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계시이다! … 축적을 위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투자해 자기 기업의 크기를 키울 뿐 아니라(자본의 집적), 몰락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싼값에 인수해 크기를 점점 더 키운다(자본의 집중). 결국 몇몇 자본가들에게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커져 경쟁은 한 나라의 시장을 넘어섰다.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은 이제 개별 자본이 아니라 국가와 결합해서 진행됐다(국가자본주의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은 국가 간 충돌로 이어졌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경향은 국가별로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양차대전과 1930년대 대불황을 거쳐 1970년대까지 세계 전체에서 나타난 특징이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는 강력한 국가 개입이 유일한 성장 방법이었다. 기존의 강대국들과 경쟁하려면 국가의 힘을 사용해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페론의 아르헨티나, 바르가스의 브라질, 네루의 인도,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중국에서 국가가 전면에 나섰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도 강력한 국가 개입을 통해 자본 축적을 이뤘다.
이 시기에 선진 자본주의에서도 국가와 거대 기업 사이의 결합이 강화됐다. 1930년대 말 나치 독일에서는 국가의 경제 통제가 워낙 강력해, 독일이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대체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제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미국에서도 국가가 산업 활동을 대부분 통제했고, 영국에서는 임금, 가격, 생산 등에 대한 국가 통제가 1980년대 소련보다 훨씬 더 전면적으로 이뤄졌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경향은 케인스주의,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에서 모두 나타났다. 소련과 동유럽, 북한은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사례였을 뿐이다.
반혁명
그나마 소련에서는 노동자 혁명이 있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소련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혁명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1917년 이후 러시아는 혁명의 고립으로 불가피한 후퇴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혁명가들은 1928년 전까지는 여전히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한다면 노동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이를 사활적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1923년 독일 혁명이 패배한 데 이어 1927년 중국 혁명이 실패하고, 영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소련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스탈린을 필두로 하는 관료 세력은 혁명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서방과의 경쟁을 통해서 소련 체제를 지킨다는 방식(‘일국사회주의’)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1928~33년의 제1차 5개년계획 기간에 대규모 자본 축적을 시작한다.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 아니 1백 년이나 뒤져 있습니다. 우리는 10년 안에 이 차이를 좁혀야 합니다.”
이때부터 소련에서 자본 축적은 서방 국가들과의 군사적 경쟁에 맞춰 진행됐다. 투자는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 부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예를 들어, 1932년에 철강의 46퍼센트가 무기 생산에 사용됐으며, 1938년에는 94퍼센트가 사용됐다. 1950~65년 축적된 자본의 3분의 2가량을 무기 생산 부문이 차지하게 됐다. 반면, 총생산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28년 60.6퍼센트, 1940년 39퍼센트, 1960년 27.5퍼센트, 1985년 25.2퍼센트로 점점 줄었다. 소련 지배계급인 관료는 자신들의 욕구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에 따라 축적을 진행했다.
소련의 개별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소련 경제 전체는 국제적 경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즉,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경쟁과 축적이 소련에서도 그대로 작동했다.
이런 경쟁과 축적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혁명을 통해 얻었던 모든 권리들이 사라졌다. 파업은 당연히 금지됐고, 정당한 이유 없이 결근하는 노동자는 누구든 해고될 수 있었다. 임금 격차도 엄청나 각료나 학술 기관장의 수입은 노동자 임금의 60배나 됐다.
민주주의도 완전히 파괴됐다. 정부는 등사기·복사기를 모두 통제했고, 타자기가 어디서 사용되는지까지 감시했다. 선거에는 단독 후보만 있었고, 득표율은 93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낙태와 이혼의 권리도 사라졌다.
스탈린은 집권 과정에서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다. 혁명의 성과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반혁명 과정을 통해 스탈린과 관료들은 지배계급으로 등장했다. 훗날 흐루쇼프가 밝히길, 스탈린 반혁명 기간에 소련 공산당 대의원 1천9백66명 가운데 1천1백8명이 체포됐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 중앙위원 1백39명 가운데 98명이 체포되거나 총살됐다. 트로츠키의 말대로 볼셰비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 “피의 강물”이 흘렀다.
1991년 소련이 몰락했을 때 스탈린주의 국가의 성격은 확실히 드러났다. ‘노동자 국가’가 몰락하는데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방어하지 않았다.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변했다는데도, 국가기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소련 군대와 KGB와 관료는 건재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권 관료들은 ‘시장’ 체제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형태만 바뀐 것임을 뜻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론은 스탈린 체제가 절정에 달하던 1947년에 나왔다. 이 이론은 사회주의자들이 동방과 서방 지배자들 모두에게서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을 지킬 수 있게 해 줬다.
국가자본주의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남한 정부에 반대해 북한을 지지하거나, 북한의 끔찍한 모습에 반대해 남한이 더 나은 사회라고 보지 않고, 남북 지배자들 모두에 반대하는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건설할 전망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첨예해지는 제국주의 간 갈등에서도 미국·일본이나 중국 중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대안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또, 중국과 북한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실천 지침이 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북한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김영익
북한은 사회주의를 자처한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에는 북한이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북한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3대 세습, 공개처형, 궁핍 따위가 사회주의 사회의 내용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고 보고, 따라서 노동자 국가의 형태는 매우 완전한 민주주의로 파악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노동자들은 국가든 산업이든 어느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1인 독재 치하에서 집권 조선로동당의 당대회가 올해 무려 36년 만에야 열릴 정도로 북한은 민주주의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북한 노동계급은 권력은커녕 권리도 없다. 민주적 권리도 없고, 노동기본권도 없다. 예컨대 공화국을 반대하는 방송을 듣거나 유인물을 수집·보관·유포하는 것이 불법이다. 시위도 원천 봉쇄돼 있다. 국가 통제에서 벗어난 자주적인 노동자 조직 결성도 불가능하다.
북한 노동계급의 상당한 부분이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북한 국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협을 이유로 핵무기와 군비를, 또 이를 위해 중공업 생산수단을 축적하고 있다. 즉, ‘한편에 자본의 축적, 다른 한편에 빈곤의 축적’인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의 압력을 받아 북한 체제도 그와 닮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옛 소련처럼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지만, 질 좋은 소비재는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이 사회주의라면, 오늘날 불평등과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환멸감을 느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북한이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 이런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진정한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