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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조선업 ─ 고용 보장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임금·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

박근혜 정부의 구조조정 공격이 조선·해운사들에 대한 재무건전성 조사(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나오는 6월부터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앞으로 몇 년간 인력감축, 자회사·특수선·도크 매각 등을 통해 인력을 1만 명가량 줄이는 내용의 자구안을 최근 제출했다. 임금을 20퍼센트가량 삭감하고 한 달간 무급휴직도 실시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생산직(하급 관리자)에게까지 확대하는 한편, 조선사업부의 일부 물량을 블록째 외주화하는 등 주력 부문에서도 업무 조정에 나섰다.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행에서 보듯, 중형 조선소들은 상황이 더 안 좋다.

박근혜는 이 같은 기업별 자구안에 그치지 않고, 오는 7~8월까지 조선업 전체의 구조조정 청사진을 그리는 산업재편 방향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대규모 인수합병이나 줄도산, 혹은 ‘조선업 죽이기’가 시작됐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산업·기업 간 연계가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웬만한 기업의 도산이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 때문에 산업재편이 원활치 않다. 기성 정치권과 기업주들 사이에 결탁 관계도 깊다. 물론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중소 조선소들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중·대형 조선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인력 구조조정에 초점이 가 있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조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이유다.

이를 위해 노동운동 내에서 오랫동안 제기된 유력한 대안의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다. 최근에도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이런 제안을 했다.

경제 위기로 일감이 줄어들 때 노동시간을 줄여서 고용을 지키자는 주장은 합리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노동자들의 임금·조건 후퇴를 수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노광표 소장은 독일 폭스바겐의 사례를 들어 줄어든 시간만큼 임금을 줄이되 고용은 보장하자고 한다.

현재의 구조조정 추진 상황을 봤을 때, 이를 달성하려면 만만찮은 임금 삭감이 전제돼야 한다. 예컨대 현대중공업 사측은 초과 노동에 해당하는 고정연장수당과 휴일·연장근무 폐지로 정규직 급여의 20퍼센트 정도를 삭감하려 한다. 이에 더해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려면 법정 노동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임금을 더 줄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폭스바겐이 1994년부터 실시한 ‘고용안정협약’에서도 임금 보전 없이 협약 노동시간을 주당 36시간에서 28.8시간으로 줄였다. 1995년부터는 생산량의 변동에 따라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시간 계좌제’가 도입됐고, 신입사원과 고령자들의 임금 삭감폭은 더 컸다.

개혁주의자들은 이것이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되는 일인 양 말하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생활고를 뜻한다. 그래서 독일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에 나서야만 했다. 2000년대 독일 정부가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미니잡(정규 일자리 쪼개기) 정책을 지속한 결과, 10년 만에 2백50만 명이 본업 외에 하나 이상의 일을 더 하게 됐다.

더구나 임금 삭감의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폭스바겐 노사는 2001년, 2004년에 두 차례 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이 개선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하는 폭과 범위가 더 넓어졌다. 파견 노동이 크게 늘면서 저임금 노동자층이 확대됐고, 성과연봉제 도입, 전환배치 확대 등 공격이 잇따랐다.

게다가 기업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 모델은 사실상 파산에 이르렀다. 그를 따랐던 오펠과 포드 등에서는 실질적인 인력감축이 벌어졌고, 파견 노동자들은 수시로 해고됐다. 2004년 고용안정협약에는 ‘해고 배제’조차 희미해져 노사간 합의를 거치면 해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정규직의 양보를 전제한 일자리 나누기 제안은 정규직의 임금과 비정규직의 고용이 서로 상충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일단 이는 진정으로 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정부와 기업주들의 책임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지배자들은 끊임없이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고 설파하지만, 기업주와 노동자들은 운명 공동체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지금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도려내 자신의 부를 지키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고용·노동조건을 지키려면, 지금의 위기를 만든 당사자들에게 일관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조건을 후퇴시키면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다. 역으로 비정규직 해고와 임금 삭감은 정규직의 조건 악화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끼리 고통 나누기가 아니라, 임금·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제시하며 저들이 쌓아 놓은 부를 노동자들을 위해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의 고용과 조건을 지킬 수 있다.

민주노총이 제시하고 있는 주당 35시간 법정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이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임금·조건 후퇴 없이 이런 요구를 쟁취하려면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STX조선 등 중소조선소 국유화를 통한 일자리 보장

중소 조선소들은 2008년 이래로 지속돼 온 조선업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의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최근에는 한때 ‘빅4’로 불리던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매각 협상이 결렬된 SPP조선은 재매각 절차를 밟기로 했지만, 앞으로 법정관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장이 문을 닫은 중소 조선소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등 빅3의 하청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또다시 빅3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고용을 위협받고 있다.

그나마 계속 가동 중인 조선소들에서도 해고와 임금 삭감이 이어졌다. 예컨대, STX조선은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대규모 인력감축을 통해 정규직 인력의 42퍼센트를 줄였다. 그런데 최근 법정관리에 놓이게 돼 더한층 강력한 구조조정 압박을 받게 생겼다. 2009년 쌍용차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세우고 있는 대책이라고는 고작 고용위기지역으로 선정해 실업지원금을 조금 더 늘릴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는 그동안 중소 조선소의 고용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게 지원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해 왔다. 이는 완전히 정당하다.

일부 NGO 단체들은 ‘부실 기업에 혈세를 지원해서 되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는 중소 조선소 원하청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노동자, 그 가족 수만 명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세금을 투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물론 이런 지원금이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그동안 정부는 STX조선에 4조 5천억 원을 지원했지만, 그중 3조 7천억 원이 채무·이자 상환으로 채권단의 손에 들어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가 채권단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안정적 고용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위기의 중형 조선소들을 정부가 직접 인수해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상, 이 기업은 사실상 정부 소유 기업이기도 하다.

지금껏 봤지만, 부도·파산한 기업을 인수해 고용을 보장할 주체는 정부 말고는 사실상 없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금 어떻게든 중소 조선사들을 매각하려 하지만, 이윤에 눈먼 민간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리 없다.

그렇다고 국가 소유가 진보를 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요 환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을 인수할 경제적 능력이 있고, “국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기 때문에 고용 보장의 책임을 제기할 적절한 대상이다. ‘일자리 보장을 위한 국유화’ 요구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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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지음

136쪽 | 4,000원|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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