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와 한국 사회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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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 한 권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경제학계의 ‘록스타’가 됐다. 이제 피케티 열풍이 분 지 2년이 지났으니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즈음 개혁주의자들이 그에게 큰 호감을 느끼는 듯하다.
피케티가 기여한 바를 여럿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자본주의 체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과 그 불평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가 바로 이윤, 지대, 이자 등의 형태로 자본이 가져가는 소득(자본소득분배율)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은 개인들의 노력이나 능력 탓이 아니다.
《21세기 자본》이 출판된 뒤로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피케티의 주장이 지닌 장점과 약점이 드러났다. 앞에서 그의 장점을 지적했으니 간단하게 약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맨 먼저 지적할 것은 자본 개념이다. 그의 책 제목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의 자본 개념은 마르크스의 자본 개념과는 달리 재산이나 부에 가깝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잉여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자본 간의 관계,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케티의 자본에는 관계는 없고 공장의 건물, 부동산, 자신의 은행 계좌에 있는 금융자산 등과 같은 재산 목록만 있을 뿐이다.
피케티의 자본 개념은 자본 수익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가져간 잉여가치가 자본가의 이윤과 은행의 이자 그리고 건물이나 기계류의 임대료 등으로 분배된다. 그러나 피케티의 자본 개념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서 잉여가치가 나오는 게 아니라 건물이나 기계에서 스스로 가치가 창출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소득 불평등
이런 약점(들)이 있지만 피케티의 파급력은 매우 컸다.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주류 경제학은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면 가난한 사람들도 그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이른바 ‘낙수 효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표1〉이 말해 주듯이, 신자유주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이후로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오히려 커졌다.
다른 한편 피케티 열풍은 피케티가 분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살펴보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정태인, 이정우, 김낙년, 주상영 등 많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피케티 비율을 추정했고, 그 덕분에 한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본소득분배율(α)과 자본/소득 비율(β)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자본소득분배율(α) = 자본수익률(r) ⅹ 자본/소득 비율(β)이라는 식을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자본소득분배율(α)이란 국민소득, 즉 새로 창출된 부가가치에서 자본이 가져가는 몫을 의미하고, 자본/소득 비율(β)은 자본총량 또는 국부와 국민소득의 비율이다. 그리고 (1-α)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해 이 식에서는 자본/소득 비율(β)의 값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β값이 증대하면 α값도 증대하기 때문인데(여기서는 자본소득 대체율이 1보다 크다는 피케티의 가정을 전제한다), 이는 자본 또는 국부가 클수록 β값은 높아지며 따라서 소득 중에서 자본몫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β값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도 심각하다는 의미다. 〈표2〉를 보면,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β값이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자료로 계산한 한국의 2012년 β는 7.5인데, 이 수치는 현재 미국과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β값이 미국 남북전쟁 이후부터 제1차세계대전 직전까지의 금박시대(Gilded Age)보다도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학자들은 부동산 거품 때문이라고 하지만 2008년 이후에도 이 요인이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자산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상회한 건 2006~07년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진정한 원인은 착취율을 반영하는 자본소득분배율이 상승했고, 그래서 자본소득이 저축의 형태로 국부로 변형되는 과정(이것은 자본축적을 의미한다)이 일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표3〉은 한국의 자본소득분배율이 2000년 이래로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한편, 피케티는 β값이 상승하는 이유가 자본수익률(r)이 전체 경제성장률(g)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면, 그것은 자본 소유자가 자본축적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피케티는 자본/소득 비율(β)이 매우 높고, 소득 중 자본의 몫(α)이 매우 높다면 그 사회는 축적된 부가 세습되면서 부의 불평등도 세습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상위 1퍼센트가 전체 국부의 50퍼센트를 소유했던 유럽이 바로 그런 극단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사에즈(E. Saez)와 주크만(G. Zucman)은 2014년 미국의 전국경제조사국(NBER) 보고서에서 1979~2012년에 상위 0.1퍼센트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퍼센트에서 22퍼센트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피케티의 해결책은 자본에 과세하는 것이다. 〈표4〉에서 보면, 역사상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았지만 대략 1913~1970년에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 부와 소득 불평등이 완화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또 세습되는 사회의 대안으로 사회적 국가와 글로벌 부유세를 제안한다.
피케티 열풍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과제를 남긴다. 피케티는 2백여 년 동안의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통계를 활용해 부와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잘 보여 줬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호황과 불황이 왜 벌어지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피케티는 이렇게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은 이윤율 저하 문제를 강조하는데, 이 분석에는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긴 하지만 크게 잘못된 역사적 예측으로 드러났다.”(69쪽) 여기서 보듯 그는 자본주의를 작동하게 만드는 동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마르크스주의로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글은 본지 12호에 실린 ‘자본주의는 왜 고장났고, 대안은 무엇인가?’를 보시오.)
그럼에도 피케티는 자본주의에서 부와 소득의 격차가 왜 벌어지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피케티의 물음에 마르크스는 이미 1백50년 전에 원칙에 입각한 답변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부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빈곤이 쌓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축적이 빈부격차를 낳기 때문에, 부와 소득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부수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기본적이고 주된 결과다. 이 점에서 피케티와 마르크스는 본말을 전도시켜 불평등 문제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