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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반 년 넘게 구금된:
시리아 난민 28명 즉각 난민으로 인정하라

폭격으로 두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충격과 공포,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시리아인들의 모습을 TV나 인터넷에서 한 번 본 사람이라면, 한국까지 찾아온 시리아인들을 난민이 아니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않다.

지금 인천공항의 송환대기실에는 시리아 난민 28명이 지난해 11월 말부터 입국조차 거부당한 채 6개월 넘게 구금돼 있다. 한국 난민법에는 공항이나 항만에서 난민 신청자에게 난민 인정 심사 기회를 줄지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독소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이 난민들은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갇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파리 참사가 벌어진 후부터 독신 남성 시리아인들만 골라 입국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시리아 난민 28명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장기 구금된 것이다.

정부는 이들이 ‘안전한 국가’를 경유해 왔다는 이유로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난민들이 목적한 나라에 도착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상황에서 이런 이유는 난민을 받지 않으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은 난민이 아니라고 냉혹하게 외면해 왔다. 한국의 현행 난민법과 난민협약 상 내전이나 기근, 자연 재해 등은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시리아 내전의 영향으로 2012년 1백49명이었던 시리아 난민 신청자가 지난해까지 총 1천52명으로 빠르게 늘었지만, 지금까지 시리아 난민 인정자는 단 3명에 불과하다.

비판이 일자 정부는 난민으로 인정한 경우는 드물더라도 상당수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줬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시리아 난민 신청자 중 6백44명에게 난민 자격이 아니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자’ 지위는 언제든 체류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난민 인정자와 달리 생계비 지원도 전혀 없고, 제대로 된 의료보험도 받을 수 없다. 또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 인정자와 달리 가족도 초청할 수 없다.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보호’의 실제 모습이다.

난민 인정 대신 인도적 체류허가를 내 주고, 기준도 불분명한 ‘안전한 국가’를 경유해 왔다는 이유로 난민 인정 절차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여러 국가 정부들이 난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해 온 조치들이다. 냉전 기간 동안 상대 진영에서 넘어온 난민을 체제 경쟁에 이용하던 각국 정부들은, 냉전 이후 난민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서 이런 조치들을 도입했다.

현재 시리아 난민들이 갇혀 있는 송환대기실의 환경은 정말 끔찍하다. 식사로 치킨버거와 콜라만 제공된다. 햇빛은 전혀 들지 않고,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인원이 수용돼 있다(약 1백42평의 공간에서 무려 1백40~1백50명 정도가 지내기도 했다). 세면도구도 제공되지 않아 치약이 부족해 액체 비누로 이를 닦고, 심지어 벼룩이 번져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외부와 접촉하기도 힘든 조건에 고립돼 있다. 유엔난민기구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외부 단체에 대한 안내는 너무나 부족하고, 인터넷은 자주 끊긴다. 공중전화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송환대기실 관리자들이 아니라 오래 머무른 다른 난민신청자들로부터 겨우 얻는 경우가 많다.

난민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전쟁과 개입이다. 1980년 이래 상위 20개 난민 발생국에 계속 포함됐던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베트남이었고, 최근 시리아가 1위로 올라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선적인 서방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고 파병해 온 한국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한국 정부도 동참해 온 제국주의 전쟁의 피해자들을 외면하기 위한 비열한 명분이다. 강제 송환될 경우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는 난민들에게는 보호와 도움이 절실하다.

변호사와 난민 지원 단체들, 이주 운동 단체들은 실태조사와 토론회 개최, 공동성명 발표 등을 하며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부당한 구금과 열악한 송환대기실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구금된 시리아 난민들은 변호사와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심사 기회를 부여하라고 집단 소송도 진행 중이고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구금을 즉각 중단하고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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