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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퇴출법’ 발의를 환영하며:
국가 통제적 역사교육 강화 반대한다

6월 2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대표 발의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위해 공동 입법을 한다는 야3당 합의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뒤로도 교과서 집필진과 집필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예비비로 편성된 예산 44억 원의 사용처 정보도 밝히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켜 왔다. 44억 원 예산의 용도를 밝히지 않으려고 세금으로 변호사를 5명이나 사서 여덟 달을 버텼지만, 결국 44억 원 중 25억 원을 교과서 국정화 홍보에 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 문서에는 국정화 반대 여론을 “소모적 논쟁”이라고 부르고 이를 잠재울 홍보가 필요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홍보 예산을 세금에서 갖다 썼어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노동개악, 세월호 참사,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보육 예산 사태 등과 겹쳐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한 이유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를 뜻한다는 점, 이는 교육 내용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등 역사 왜곡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평범한 사람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정화 강행 당시, 박근혜는 친일이나 독재 미화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굳이 기존의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국정화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궁극으로는 자유발행제로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역사서들도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조승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우익적 역사 왜곡과 재해석은 단지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의도(“효도”)에서 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 지배자들의 독재, 친일, 부패, 착취 경력을 은폐·미화해 한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재확립하려는 것이다. 즉, 1987년 민주화 과정 시작 이후 학계와 교육계 모두에서 현 주류 지배자들의 과거(실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가 부정적으로 다뤄진 것을 되돌리려는 의도다. 어느 정도는 경제 성장과 국제적 지위 향상을 경험한 한국 지배자들의 자부심도 반영됐을 것이다. 전경련은 뉴라이트 등장 전부터 교과서 전반이 기업과 기업주들, 자유시장 체제를 긍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며 이를 바꾸려고 애를 써 왔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 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과거 냉전을 배경으로 경제 성장을 위해 벌였던 일, 즉 노동계급을 억눌러 쥐어짰던 일을 (1백 퍼센트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되풀이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독재와 착취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오늘날의 반동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근혜에게는 선거 참패 때문에 포기하기엔 더 장기적이고 중요한 일들이 교과서 국정화의 배후에 있다. 따라서 “국정화 재검토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자”(참여연대)는 일각의 요구를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오히려 총선 참패의 효과를 조기에 차단하려고 구조조정 공세를 펴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등 안간힘을 써 왔다.

그럼에도 대중적 반감이 강력하기 때문에 여권 내에서도 슬금슬금 레임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여전히 정권에 불리한 요인이다. 물렁한 야당들도 여소야대 구도를 만든 대중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대선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좋은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사회운동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대형 집회들을 보면, 주최 측 예상보다 참가자도 많고 분위기도 밝다. 2016총선시민네트워크가 총선 직전에 온라인 설문과 심사 등을 거쳐 선정해 최근 발표한 “20대 국회: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10대 과제”의 두 번째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폐지”다.(첫 번째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이다.)

국회를 무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되돌리는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역사 교육에 국가주의를 강화하려는 것은 체제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현존 계급 지배 질서의 정당성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이므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정제 저지에서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통해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훌륭한 역사서들이 늘어나고 교과서로 채택될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 함양에 훨씬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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