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과 트럼프:
누가 당선돼도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 제국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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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공화당의 기나긴 대선 경선 레이스 끝에, 이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양당의 대선 후보로 정리됐다. 그러나 누가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든 그는 오바마가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미국 제국주의의 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다.
8년 전 대선후보 시절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 패배와 경제 위기로 취약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도력을 재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는 세계 주요 지역(북미, 서유럽, 동아시아, 중동)을 모두 포괄하는 유일한 패권국으로서 심각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여러 곳에서 위기가 동시에 심화하며 어느 한 곳에서도 만족할 만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곳곳에서 불거지는 지정학적 도전을 다뤄야 했다(동아시아의 중국, 중동의 아이시스,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이런 상황은 미국 유력 대선 주자들의 대외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어떻게 곳곳의 지정학적 도전을 억제하고, 동맹국들의 충성을 유지하며, 앞으로도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해 갈 수 있을까?
미국의 두 대선 후보들은 자신이야말로 이 물음에 적절한 해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억압받는 민중들과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클린턴과 트럼프가 제시하는 대외정책은 모두 끔찍하다. 둘 다 미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단호하게 지킬 것을 공언하는 제국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뼛속 깊이 매파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은 분명 매파다.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내릴 결정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재직 시절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Lorie Shaull(플리커)
국무장관 시절 클린턴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새로운 대외정책 마련을 주도했다. 클린턴은 2011년 11월 〈포린 폴리시〉에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것은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대표하는 문서로 꼽힌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정치의 미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다. 미국은 그 결정 과정의 한가운데 있고자 한다.” 이 글에서 클린턴은 오바마 정부가 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하는지를 설명하며 옹호했다. 국무장관으로 일하면서 클린턴은 아시아에서 중국을 겨냥해 동맹을 규합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쳤다.
특히, 클린턴은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적극 관여하며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는 국가들에 접근했다. 예컨대 2010년 베트남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에서 클린턴은 “남중국해는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중국을 비판했다. 북한을 대할 때는 핵을 먼저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전략적 인내’를 고수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클린턴은 ‘미국의 태평양 세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아시아의 성장과 역동성을 이용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에 매우 중요하며 … 개방된 아시아 시장은 미국에게 전례 없는 투자와 무역 기회와 첨단 기술에 접근할 기회를 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클린턴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와 같은 공세적 자유무역 정책을 주도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에서 민영화, 규제 완화 등 시장경제를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를 강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클린턴은 군사력 동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클린턴은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서해에 배치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중국의 코앞에 항공모함을 들이대겠다는 것이었다.
리비아
중동 민중에게는 훨씬 끔찍한 재앙을 선사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 중요한 추진 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리비아는 완전히 엉망인 상태가 됐다.” 클린턴이 관여한 서방의 군사 개입으로 리비아 혁명은 힘을 잃었고 리비아에서는 혼란이 거듭됐다.
그 밖에도 아프가니스탄 미군 증파나 시리아 개입 등 클린턴은 직접·간접으로 군사력을 휘두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클린턴의 대선 캠프에는 전 국방장관 레온 파네타,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토마스 도닐런 등 오바마 정부의 주요 외교·안보 인사들이 들어가 있다. 클린턴이 당선하면, 그 정부는 대외 정책 면에서는 ‘오바마 정부 3기’가 될 공산이 크다.
6월 2일 클린턴은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 구상을 밝히며, 군사 동맹 네크워크가 미국 제국주의가 다른 경쟁국(중국, 러시아 등)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요소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에서 일본, 한국과의 협력이 주는 이점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미일이 함께 미사일방어체계(MD)를 구축하고 있고, 6월에는 세 나라 군대가 함께 MD를 테스트하는 합동 훈련도 벌인다고 밝혔다.
클린턴이 집권한 후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어떤 대외정책을 펼칠지 능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대통령 클린턴도 국무장관 클린턴 못지 않게 한반도 불안정의 악재가 될 게 분명하다.
트럼프가 고립주의 노선이라는 오해
많은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외정책을 “고립주의”와 “국제주의”의 차이로 설명한다. 트럼프가 국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며 아시아, 유럽 국가들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기를 요구하는 고립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방위 제공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한때 ‘나토(NATO) 무용론’을 제기하는 등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 주류가 반발할 만한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일부 발언만 보고 그의 대외정책을 고립주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의 다른 면모도 눈 여겨 봐야 한다.
트럼프는 한 연설에서 20세기 초 미국의 필리핀 침공 당시 미군의 존 퍼싱 장군이 “무슬림 폭도 50명”을 잡아서 돼지 피를 묻힌 총알로 그들을 학살한 것이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좋은 처방이었다고 떠들었다. 트럼프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지금은 뉘앙스를 달리해서 말하지만), ‘테러리스트’를 고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이시스를 상대로 전술 핵무기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발언은 그가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그 호전성에 오히려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미국은 지상 최고의 무기를 개발하고, 구축하고, 구입해야 한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대한 도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난 4월 트럼프는 좀 더 정제된 형태로 자신의 대외정책을 소개하는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의 몇몇 대목만 봐도 그가 고립주의자라기보다는 매우 공세적인 제국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핵 협상을 한 것을 “재앙적”이라고 비난하고, 오바마가 체코와 폴란드 등지에서 MD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또한 급진 이슬람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미국 대외정책의 주요 목표여야 하며, 이를 위해 군사력 사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3월에 한 연설에서는 중동에 지상군 3만 명을 파병하자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중국이 급격히 군사력을 키우는데 미국은 군비를 줄이고 있다며, 핵무기 현대화 등으로 군사력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자를 고립주의자라고 보는 건 너무 말이 안 된다.
위협
오히려 트럼프의 언동은, 미국의 패권이 취약해지는 데 위기감을 느끼며 미국의 지위와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가 된 미국 지배자들의 노골적인 협박이라고 봐야 한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외정책은 남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운운했지만, 그가 대선에서 승리한들 실제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역사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 트럼프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무임 승차”하지 말고 군비 부담을 더 늘리라는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비록 트럼프가 선정적 표현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뿐, 한국 등 동맹국들이 더 많은 안보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건 미국 지배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오히려 통일연구원의 우려가 들어맞을 수 있다. “트럼프 후보의 경우, 대북정책에 있어서 군사력 사용과 강압적 수단을 선호한다는 점에 있어서 지금보다 북미관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질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이 가중될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미국의 두 대선 후보들은 모두 철두철미 제국주의자들이며, 국제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민중들의 적이다. 둘 중에 누가 당선하든 차기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군사력 사용도 감행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도 경쟁 제국주의 국가(중국)을 제압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좌파는 제국주의 문제를 주목하고, 제국주의의 위기에 대응할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초석을 쌓아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