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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능력에 따라 임금 지급하기)는 착취 강화를 위한 것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장기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이윤 하락 압박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고 노동 시장을 더 유연화하려는 공격이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하려고 임금체계 개편을 들이밀고 있다.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피크제와 대졸 신규 사원의 초임 삭감 같은 노골적인 임금 삭감도 추진한다.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들에 성과연봉제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은 공공부문부터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는 “모범”을 보여 이를 민간에도 확대하기 위함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특정 임금체계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과연봉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의 성과에 따라 대가(임금)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 산업화 초기의 ‘개수 임금’(노동시간에 관계없이 생산량에 따라 치르는 임금)과 본질적으로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개수 임금에서는 “이 노동의 가격이 생산자의 작업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외관”에도 불구하고 임금지불의 형태상의 차이가 “임금의 본질을 전혀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성과급제 임금형태는 시간급제 임금형태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한데,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만 임금으로 받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임금형태가 무엇이든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를 받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성과급제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개수 임금이 결과적으로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했다. “노동의 질과 강도가 임금의 형태 자체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개수 임금

우선 개수 임금은 일정한 수준의 노동의 질을 노동자에게 요구한다. 노동자가 완전한 보수를 받으려면 그 생산물이 평균적 품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임금 형태는 “자본가에 의한 임금삭감과 속임수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 된다. 미리 정해진 작업능력에 못 미치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시간당 평균적 생산물의 양이 정해지므로 “성과급제 임금은 자본가들에게 노동강도를 측정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를 제공한다.” 이때, 노동자가 자기의 능력을 많이 발휘할수록 자신에게 이롭다고 여기므로, “이것이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의 표준강도를 더욱 쉽게 강화할 수 있게 한다.”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노동자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당시 공장법의 적용을 받는 작업장에서는 노동일을 무한정 연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강도 강화를 위해 성과급제 임금이 통례로 사용됐다. 보통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 성과급 수준도 저하한다. 노동자들은 성과급 하락에 따라 기존보다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야 전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으므로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되는 것이다.

성과급제는 개별 노동자들의 업무 능력에 따라 임금 차이가 발생하므로, 노동자들 “상호간에 경쟁심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성과급제 임금은 개인의 임금을 평균수준 이상으로 높이면서 동시에 이 평균 수준 자체를 저하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사용주들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가 총 인건비는 그대로 유지해도 일부 노동자들이 평균보다 놓은 임금을 받는 반면, 일부 노동자들은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

이처럼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커지면, 노동자들 사이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경쟁이 강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노동자들은 기존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또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동자 중 30퍼센트가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되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임금에 하향 압박을 가할 것이다.

게다가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퇴출제 같은 ‘쉬운 해고’ 도입과도 연결돼 노동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제가 도입되면 다수가 해고 위협에 처하진 않지만, 저성과 낙인을 피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키워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압박할 것이다. 게다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는 공공서비스 질 저하도 낳는다.

이처럼 “대공업의 질풍노도 시대, 특히 1797년부터 1815년까지 성과급제 임금은 노동일의 연장과 임금인하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됐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성과급제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끊임없는 투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본가가 노동의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성과급 수준을 인하”하거나 “노동생산성 증대가 노동강도의 증대를 수반”할 때, 또 “노동자가 성과급제 임금의 외관을 진실이라 믿고 상품 판매 가격의 인하가 수반되지 않는 임금인하에 반항”하기 때문에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성과연봉제가 이미 시행된 사업장에서는 평가 기준을 둘러싼 논란과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공·금융 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음에도 노동자들이 여전히 반발하고 이를 되돌리려고 파업에 나서려 하는 것을 봐도, 성과연봉제 같은 착취 강화 시도에 노동자들이 느끼는 반발감은 상당하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에서 이처럼 성과연봉제의 주된 폐해인 임금 억제, 노동 강도 강화 효과를 반대 이유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매우 광범하다.

예컨대, 심상정 의원은 성과연봉제 강행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논란을 부각해 민주주의(또는 헌법)를 지키는 투쟁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불법성’을 강조하는 논리는 법률적 투쟁이나 더민주당 같은 성과연봉제 반대에 불철저한 야당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칼자루를 국회로 넘기는 셈이니,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성과연봉제가 저성과자 퇴출제로 직결되는 것이 핵심 문제라거나 성과연봉제의 진정한 목적은 노조 파괴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개인 성과 평가 제도가 도입되면 저성과자 퇴출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그러나 성과연봉제 도입이 퇴출제 도입과 노조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결정돼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전보다 불리한 조건에 처한다고 해서 저항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위험을 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성과연봉제는 임금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성과연봉제 저지가 공공부문·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지키기로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함인 듯하다.

끊임없는 투쟁

이유가 무엇이든 성과연봉제만 분명하게 반대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성과연봉제의 주된 효과를 분명히 반대하지 않으면 투쟁을 강화하는 데 약점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방어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노동운동 내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 임금 격차를 해소하자는 정규직 양보론이 확대되는 것에도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노동운동 좌파들이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온건 개혁주의적 ‘여론’의 꽁무니를 좇는 것이다.

또 다른 버전으로 “성과연봉제 저지라는 수세적이고 부분적인 전선”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도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방어 투쟁은 지지 받을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흔히 경제적 요구를 둘러싼 투쟁은 협소한 부문의 이익을 지키는 투쟁일 뿐이라고 보는 관점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운동 좌파들이나 전투적 활동가들도 종종 이런 주장을 받아 들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임금격차·청년 실업 문제를 내세워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는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려는 것을 보면, 가장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것은 단지 해당 부문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잘 싸워 임금을 올리면,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이를 따라잡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때로 격차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추세적으로는 잘 조직된 부문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이끌어 왔다. 잘 조직된 부문조차 자신들의 임금 수준을 지키지 못한다면, 미조직 또는 더 열악한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임금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일치단결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는 것에 맞서는 것은 단지 협소한 경제적 투쟁이 아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 부문의 노동자가 단결해 싸우면 정치적 투쟁인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성격의 투쟁이기도 하다.

또 투쟁의 동학에서 보자면, 개별 노조들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저마다 다른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기업별 노조의 투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 [산별] 공동 투쟁을 이유로 파업 시기와 수준을 조율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선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종종 노조 상층 지도자들이 투쟁을 회피하거나 지연시켜 투쟁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을 합리화하는 명분이기도 했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해 파업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투쟁적인 노동자들 속에서 이들의 요구를 굳건히 지지하며 투쟁을 확대해 가야 한다.

또 이 속에서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고 노동 개악에 맞서는 투쟁에도 발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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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임금격차,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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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지음

136쪽 | 4,000원|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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