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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왕이로소이다 ? 마르크스와의 인터뷰》: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를 해부하는 마르크스의 생생한 육성!”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의 수가 적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중에 정말 괜찮은 것을 꼽으라면 의외로 많지 않다. 아직도 시중에 나오는 몇몇 개설서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적으로 변형한 해석을 답습하고 있다. 또 어떤 책들은 마르크스의 이름을 빌려 개혁주의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마르크스가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그려지기도 한다. “만약 저들의 정치를 마르크스주의라고 한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한 마르크스 자신의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듯하다.

《돈이 왕이로소이다 – 마르크스와의 인터뷰》, 앙리 페나 뤼즈, 솔, 224쪽, 13,000원, 2014년.

그렇다고 해서 ‘진짜’ 마르크스주의를 읽고 학습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이는 너무 아까운 일이다. 자본주의에 불만을 가진 ‘삐딱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무기이기도 하다.

쉽고 유쾌한 입문서가 어디 없을까?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맛보기로 볼 만한, 하지만 내용은 충실한 그런 책 말이다.

《돈이 왕이로소이다》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감 있게 추천할 만한 책 중 하나다. 이 책은 마르크스와의 가상 인터뷰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파리 정치대학 교수 앙리 페나 뤼즈가 마르크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마르크스가 답하는 형식인데, 마르크스의 모든 대답은 《자본론》이나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과 같은 그의 여러 저작들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런 형식을 취하다 보니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 보면 정말 마르크스가 여러 쟁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지 육성으로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인터뷰가 재미 있으려면 인터뷰어가 질문도 잘 뽑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뤼즈는 그 점에서 확실히 합격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피착취 계급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습니까?”(87쪽), “삶의 조건을 유물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까?”(106쪽), “완전한 해방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117쪽) 등.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르크스의 철학, 자본주의 비판, 대안사회에 대한 비전 등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형식도 발랄하고, 내용도 쉽고, 저자가 마르크스 본연의 사상도 잘 대변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원전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엄선했다.

물론 이 얇고 작은 입문서를 통해서 마르크스의 방대한 사상체계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물론적 역사관, 착취의 개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허위성,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의 소외, 자본주의의 모순, 보편적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등 마르크스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키워드들은 잘 알 수 있다. 특히 생산력·생산관계의 모순, 토대·상부구조의 모순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들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들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아주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제3부 제목인 ‘급진적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옳게도 소외론을 필두로 한 마르크스 사상의 휴머니즘적 측면들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질문과 답변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하다가도 그것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시 그것이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방법론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또 자본주의 하에서 대중이 겪는 소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이 얼핏 난삽해 보이지만 실로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편한 마음으로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저자의 질문과 마르크스의 답변을 따라가다가 책의 한 부 한 부를 끝마치는 순간, 해당 부에서 테마로 제시한 소재(‘돈’, ‘해방’, ‘급진적 인본주의’)에 대해 마르크스가 어떻게 생각했을지가 실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좋다. (그리고 한 챕터씩 읽고 다소 자유분방하게 소감을 밝히고 질의응답을 하는 식으로 토론한다면 여러 사람이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하다.)

2부 ‘해방’에서 파리 코뮌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노동자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그린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내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보편적 계급’으로서 노동자 계급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노동계급과 노동 운동의 중심성을 강조하면 뭔가 구닥다리이거나, 경직된 사상을 옹호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마르크스 자신의 말로 왜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데 노동계급이 중요한지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처음 접해 보는 사람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기초 개념들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본문이 2백 쪽도 안 되는 책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읽어 보시라.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주의에 흥미가 생겼다면 마르크스의 원저작을 읽어 보고 레닌, 트로츠키,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 등 다른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저작들도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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