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가난에 내몰리는 청년들:
청년실업의 원인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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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삶이 참 고달프다. 청년층의 빈곤율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청년과 노년층이 많이 포함된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7.5퍼센트에 달한다. 또 수많은 대학생들이 치솟은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에 짓눌려 있다. 대학생들은 평균 1천4백여만 원이나 되는 빚을 떠안고 졸업한다. 절반 이상이 이 빚을 갚지 못해 연체한다. 그런데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는 미친 소리를 했다.
이렇게 청년들을 ‘N포 세대’로 만드는 가장 핵심적 원인은 높은 청년실업률이다.
정부가 가장 최근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10.3퍼센트다. 1999년 이후 동월 대비 최고치다. 그러나 이마저도 청년실업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구직포기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정부의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또 ‘1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을 잠재적 실업자로 보고 계산하면 청년실업률이 20퍼센트 이상이라는 통계가 많다. 청년들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는 또 있다. 저출산으로 청년 인구가 줄었는데도, 청년 취업자는 훨씬 더 줄었다는 것이다. 2004∼14년 청년 인구는 6.3퍼센트 감소한 반면, 청년 취업자는 15.5퍼센트 감소했다.
‘청년’실업이 유독 심한 이유
《20대 공부에 미쳐라》, 《열정에 기름 붓기》 등 청년을 ‘위한’ 자기계발서들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보통은 청년실업을 청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청년실업은 청년들이 공부에 덜 미치거나 열정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실업은 경제 위기 자체와 기업들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낳은 문제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투자를 줄여 왔다. 그에 따라 2015년 대기업 절반 이상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았다. 올해 30대 그룹의 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도 4.4퍼센트 감소했다. 이처럼 기업들은 신규채용은 가급적 하지 않고 기존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려(즉, 더 혹사시키려) 하면서 청년실업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업들의 이런 대응 방식은 양질의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줄여 청년실업을 더 악화시킨다. 청년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체로 비정규·저임금 일자리여서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 취업까지 소요 기간’이 1년으로 늘어났다. 그나마도 청년들은 첫 직장에 안착하기보다는 이직을 많이 해서 ‘첫 취업 후 평균 근속기간’은 점차 짧아지고 있다(현재 15개월). 열악한 일자리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이른바 또 ‘니트족’(NEET)*의 증가 현상으로도 관련 있다. 한국의 니트족은 18퍼센트로 OECD평균보다 높다. 니트족 중에서도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비구직 니트’가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지배계급에게는 니트족 증가 추세가 골칫거리다. 가뜩이나 저출산·고령화로 미래 노동인력 수급이 걱정되는 판국인데, 니트족 증가로 현재 고용된 숙련 노동자들의 은퇴 후 숙련 노동자 확보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져서 숙련도 향상 속도도 그만큼 늦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청년들이 “유휴 인력”으로 남아 있지 말고, 웬만한 일자리에 적당히 만족하기를 바란다.
이를 반영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들은 청년들의 ‘유보임금’(취직할 때 원하는 최소 임금) 수준이 높다며 눈높이를 낮추라고 종용한다. 또다시 청년들 개인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여섯 번의 고용대책: 본질은 청년의 눈높이 낮추기와 노동개악
박근혜 정부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청년 고용 대책을 총 여섯 번 발표했다. 그러나 전체로 보아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물론 2014년 이후 청년 고용률이 약간 오르긴 했다. 그러나 이는 주로 20대 초반 청년들의 취업이 증가한 덕분이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를 다니면서 하는 아르바이트 등 대학교 이상의 교육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 불안정 일자리였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20대 후반 청년의 취업은 여전히 감소 추세다.
정부가 내놓은 여섯 차례 ‘대책’을 관통하는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에 고용된 노동자와 청년을 이간질해서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하락시키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과도한’ 대학진학률 탓에 청년들이 눈만 높아져 취업을 늦춘다고 본다. 그래서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부실’ 대학들을 정리하는 구조조정, 일찍부터 대학교에 진학할 ‘헛된’ 꿈을 접고 취업 준비를 하라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증설 등이다. 또, 일·학습 병행제’, ’기업 맞춤형 교육’ 등의 이름으로 대학 교육 내용도 취업에 좀더 직결되도록 바꾸려 한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대졸 초임 수준을 낮추고, 청년들을 열악한 일자리로 유도하려 한다. 아쉽게도 진보·좌파 진영에서도 대학진학률이 너무 높다는 시각을 받아들인다. 물론 정부 정책을 반대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시각을 공유하면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등을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려워진다.
청년들은 더 낮출 눈높이가 없다. 청년들이 취직하면 받기 바라는 월급은 평균 2백12만 원이다. 민주노총이 발표한 2인 가구 생계비 2백20만 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교육이 아무리 뒤틀리더라도, 교육은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누구나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눈높이 낮추기에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하는 맥락도 있다. 지배계급은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화, 이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와 잠재성장률 하락을 우려해 왔다. 그들이 보기에 출산율 감소의 핵심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초혼 연령이 30세가 넘었다. 아이를 2명 낳으려면 초혼 연령이 앞당겨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취업의 지연을 결혼 지연의 이유로 보기 때문에, 정부의 고용대책은 “노동시장의 조기 진입”을 강조한다.
대졸 초임 수준을 낮추는 것은 임금체계 개악 등 노동개악과도 연결된다. 정부는 장기화하는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전체 노동계급의 임금을 떨어뜨리려 한다.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꿰차고 있어 청년을 위한 고용 창출이 어렵다고 호도한다. 노동계급과 청년을 이간질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마련한다는 재원이 청년 고용을 늘리는 데 쓰일 리는 거의 없다. 지난해 정부는 “아들, 딸들의 미래” 운운하며 공공부문에서 임금피크제를 강행했지만, 올해 공공부문 신규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퍼센트나 줄었다.
국가가 책임져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무려 60퍼센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이다. 그중 대부분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9급 공무원의 임금이 매우 낮고, 지난해 공무원연금이 삭감된 것을 고려하면, 이 현상은 청년들이 무엇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가가 책임지고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해야 한다. 국가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고 또 그럴 능력도 있다. 필요한 재원은 자본가들에게 과세해 마련하면 된다.
국가가 노동개악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 역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공격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상당한 규모의 공공부문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정부는 노동개악을 민간부문으로까지 확산하려 한다. 공공부문의 노동조건이 전체 노동조건의 기준 구실을 하기 때문에, 기준 자체를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실업의 책임을 고령 노동자에게 떠넘기기에 혈안이 돼 있지만 위선적이게도 공공기관 열 곳 중 세 곳이 청년고용의무를 어기고 있는 것에는 손 놓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공공부문을 먼저 공격하며 전체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려는 것에 맞서야 한다. 오히려 공공부문에서부터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민간부문에도 강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은 공공서비스가 열악한 편인데, 공공부문 인력을 대폭 충원하면 공공서비스를 확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국가가 책임지고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단행해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법정 초과한도를 넘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5명 중 1명 꼴이다. 근로기준법만 준수해도 일자리 62만 개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참고 하는 것은 임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이므로,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 임금이 삭감되면 기존 노동자들이 또다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신규채용의 필요가 적어진다. 노동조건도 마찬가지다.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노동시간을 줄여도 신규채용 없이 기존 인력으로 공장이나 사무실을 돌리면 그만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청년과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이 강화돼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근본적인 이유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실업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업률의 오르내림은 호황과 불황을 오고 가는 경기순환에 1차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경제 위기가 심화할수록 실업은 더 악화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실업은 단지 경기 상황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추세도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는 비교적 적게 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생기는 실업자 등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라고 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서 추출한 이윤으로 생산수단을 계속 확대시키려 한다. 이를 자본의 축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가들끼리의 경쟁은 끊임없이 "축적을 위한 축적"을 낳는다.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 과정에서 일정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쟁에 내몰린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더 고용하는 것보다는 기계, 원자재 등 생산수단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 그렇게 노동에 비해 자본의 투자 비율이 높아지면, 노동생산성이 향상돼 같은 값의 투자를 하고도 더 적은 노동자로 같은 양의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노동자들 일부가 생산과정에서 축출된다.
상대적 과잉인구의 존재는 대개 기존 노동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을 거부하면 사용자들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겠다고 협박한다. 동시에, 기존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은 상대적 과잉인구를 늘린다. 기존 노동자들이 일을 많이 할수록 새로운 고용을 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은 단지 노동 수요자인 것만이 아니며, 노동의 수요와 공급 양면을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의 수요자이지만, 일자리에서 노동자들을 밀어내면서 스스로 공급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실업은 붙박이장 같은 것이다. 실업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 자체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자본 축적 논리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실업 해결책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노동 공급을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것을 막아야만 겨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장 수요 공급의 압력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장 효과적인 압력은 “취업자와 실업자 간의 계획적 협력”이 형성될 때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이 청년과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며, 조직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려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노동계급 전체에 이로운 방식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려면 단결이 중요하다. 노동개악이 진정으로 노리는 바는 노동조건의 전반적 하락이다. 청년들이 일하게 될 노동조건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존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좌파 일각에서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거나(사회연대전략), 조직 노동계급과 청년들의 연대를 “청년을 조직 노동운동의 지지대오로”만 만드는 것이라며 기피하는 것은 정부의 이간질에 말려드는 것일 뿐이다. 청년도 분명히 운동의 주체이지만, 자본가들에 맞서야 한다는 전략 차원에서 노동운동과의 연대가 중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실업이 생기는 메커니즘에 비춰 보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가 신규채용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 축적 그 자체가 실업을 만든다. 그러므로 실업을 해결하려면 반자본주의적 전망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과로사하고,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 목숨을 끊는 체제는 비합리적이다. 변혁적 전망 하에 국가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면서 청년과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