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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배만 불릴 전력·가스 민영화 반대한다

최근 〈한국경제〉는 ‘한전, 성과급 잔치 … 민간 발전사는 ‘곡성’’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8월 16일치)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 한국전력과 달리 민간 발전사들의 이윤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민간 발전사들은 대부분 천연가스(LNG)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최근 전력거래소에서 LNG 발전 생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킬로와트시당 73원) 전기가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흔히 그렇듯 한편에서는 전기 요금 폭탄으로 난리가 났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전력 ‘과잉’ 설비가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가스’를 이용한 ‘전력’ 생산이 문제다.

2000년대 초에 추진된 전력 민영화 조처로 포스코·SK·GS 등 대기업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10여 년 사이에 민간 발전은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설치 비용이 적고 가동·중단이 용이한 LNG 발전소를 세워 운영했다. 전력이 부족할 때 재빨리 가동하면 높은 가격에 전기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가스 민영화의 일환인 ‘발전용 가스 직도입 허용’ 조처로 민간 발전사들은 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전까지 정부는 민간 기업의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해 왔는데 여기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국제 천연가스 거래가 20~30년을 기준으로 한 장기 계약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민간기업 여럿이 수입 경쟁을 벌이면 수입 가격이 오를 수 있고, 과잉공급으로 한국가스공사의 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내리자, 정부는 민간 가스 직도입을 유도하겠다며 가스공사의 수입 계약을 차일피일 미뤘다. SK(당시 K-POWER)는 그때 LNG 수입 계약을 체결해 싼값에 계약한 반면, 가스공사는 가격이 한참 오른 뒤에야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가스공사가 입은 손실액만 17조 원에 이른다.(‘정부의 가스 산업 정책 파행과 그 영향’, 〈2006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게다가, 2011년 9월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를 겪으며 LNG 발전 시장은 ‘블루 오션’으로 떠올랐다. 불과 2~3년 전까지도 이런 추세는 계속됐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상대적으로 원가가 싼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가 추가 건설·가동됐다. LNG발전의 성공에 고무된 포스코·GS·SK 등도 8천 메가와트(현재 전체 발전설비의 8퍼센트)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GS와 SK는 전력 시장뿐 아니라 가스 소매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이처럼 전기 생산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경기 침체로 전기 소비량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에서 한전이 사들이는 전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국제 유가도 급락하자 석탄 화력발전의 생산원가가 크게 떨어져 가격 하락이 가속됐다.(한전이 발전자회사의 수익성을 고려해 전기를 비싸게 사들이느라 그나마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석탄과 달리 LNG의 경우 장기 계약 때문에 원가를 낮출 수 없다 보니 큰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민영화는 요금 인상, 안전 위협, 서비스 악화, 부패, 노동조건 악화를 낳을 것이다. ⓒ이미진

한편, 한전 입장에서는 전력 구입 비용이 크게 줄었지만 전기 판매요금은 내리지 않아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두고 있다. 주택용 요금을 찔끔 인하했지만 그보다 훨씬 비중이 큰 산업용 요금을 조금 인상해 오히려 수익은 크게 늘었다. 부채비율도 지난 2~3년 사이 줄었고, 지난해에는 한전 지분의 51퍼센트를 보유한 정부에 1조 원가량을 배당할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앞서 언급한 기사 말미에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빌어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는 왜곡된 구조로 민간 발전사가 손실을 보는 전력 거래 체계를 바꿔야 한다” 하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6월 전력·가스 민영화를 다시 밀어붙이기로 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지금처럼 한전이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되는 때에 이를 민영화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 재정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주들에 비해 ‘조금’ 더 장기적 전망을 갖고 계획을 입안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지연된 민영화를 추진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민간 기업이 성장하면 정부 재정 지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오래된 믿음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력·가스 판매 민영화는 독과점으로 ‘경직된’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로 여겨진다. 예컨대 올해 4월 일본은 전력 판매시장을 완전 자유화했는데 기존의 지역 네트워크망을 보유한 가스·통신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도쿄전력은 소프트뱅크와, 오사카가스는 NTT도코모와 손잡고 전력·통신·가스 통합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 발전용으로 직수입한 LNG를 다른 기업이나 개별 가정에 판매할 수 있게 되면 LNG 발전소의 적자도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발전 자회사 지분을 일부(20~ 30퍼센트) 매각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자회사의 수익 일부를 민간 기업들과 나눌 수 있고, 장차 발전 공기업을 완전히 민영화하는 디딤돌을 놓을 수도 있다. 정부는 부분 매각일 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한국통신도 1993년 지분 10퍼센트 매각으로 시작해 결국 2002년 5월 민영화가 완료됐다. 1996년까지 정부는 한국통신의 대주주 지위를 유지한다고 했다가, 1997년 IMF 사태를 명분으로 완전히 민영화해 버렸다.

1980년대 이후 전력 민영화에 나선 유럽과 미국의 경험에서 보듯, 민영화로 국민 경제 전체에 성장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러기는커녕 19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경제는 거듭 위기를 겪었고 2008년 위기 이후 장기적 침체에 빠져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별 국가가 이런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는 다수의 발전사(공급자)와 다수의 판매사, 다수의 수요자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발전-판매-소비를 모두 소유한 몇 개 대기업이 과점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천연가스

반면, 민영화가 대중의 삶에 끼치는 결과는 아주 명백하다. 한국통신의 경험에서 보듯 민영화는 요금 인상, 서비스 악화(요금에 따른 차등화), 부패, 노동조건 악화를 낳는다. 겉으로나마 국민의 이익을 표방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달리 민간 기업은 시장 논리에 따를 뿐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킬 의무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전력 소매 시장을 완전히 개방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은 요금이 인하됐지만 그 뒤로는 지금까지 계속 요금이 인상돼 왔다. 2013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0퍼센트가 ‘전력회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5퍼센트는 ‘신뢰하기는 하지만 2년 전보다는 덜 신뢰한다’ 하고 대답했다. 독일에서도 “잦은 정전과 지속적 요금 증가로 민영회사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고 있다. 영국과 독일 모두에서 에너지기업 재국유화가 지지를 얻고 있다.(한전 경제경영연구원, ‘해외 주요국가의 전력 판매부문을 둘러싼 정책동향과 시사점 연구’, 2015)

전기 요금이 오르면 다른 자본가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물론 일부 자본가들의 경우 지금보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은 지금처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기업들 사이에 전력 판매가 허용되고 그 원료가 되는 LNG도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추가로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결국 경쟁에 내몰린 한전과 발전자회사의 비용 부담은 평범한 노동계급 가정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민영화를 해도 가스나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 민간 발전사의 수익이 줄어들지 않을까? 민간 발전사들은 이럴 경우 부담을 정부에 떠넘긴다. GS나 SK는 가스 가격이 높을 때에는 한국가스공사에 의존하고(이를 위해 가스공사는 비싼 가스를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 가격이 낮을 때에는 직수입으로 차액을 챙겨 왔다. 결국 “민간 개방 확대 정책은 직수입자들의 알짜 빼먹기 행태를 조장”했다.(황재도 한국가스공사지부 지부장)

전력·가스 같은 대규모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면 안전도 크게 위협받는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이윤이 안전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최근 SK E&S와 GS에너지는 각각 50퍼센트 지분으로 보령LNG 터미널을 건설하고 있는데, 공정률이 98퍼센트에 이른 상황에서 기자재(볼밸브) 입증 시험 중 가스 내부 누설이 발견됐을 뿐 아니라 가스안전공사 각인과 검사성적서를 위조한 사실도 확인됐다.

민영화로 경제가 회복됐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기업들은 일시적으로나마 큰 수익을 거뒀고 평범한 노동계급은 이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겪어 왔다. 전력·가스 민영화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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