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과 부동산 시장 부양으로 고통을 전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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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8월 25일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내놨다.
OECD 조사를 보면, 우리 나라의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연금 등으로 떼가는 돈을 뺀 실제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4년 말 현재 1백64퍼센트로, OECD 23개국 평균(1백30.5퍼센트)보다 30퍼센트포인트 이상 높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9.9퍼센트포인트가 상승한 것인데, OECD 23개국이 평균 1.6퍼센트포인트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12배가 넘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봐도 한국은 2015년 기준 88.4퍼센트로, 미국(79.2퍼센트), 독일(53.6퍼센트), 일본(65.9퍼센트) 등보다 높은 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2012년 말 9백63조 8천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1천2백57조 3천억 원으로, 3년반 만에 2백93조 5천억 원 늘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2백2조 원, 이명박 정부 5년간 2백92조 원 증가한 데 비해 증가 폭이 훨씬 큰 것이다.
이는 2014년 당시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2014년과 2015년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6.5퍼센트와 11.2퍼센트로, 2013년의 5.8퍼센트보다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2016년 들어서도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를 보면, 올 상반기에만 54조 2천억 원이 늘어났다. 상반기 증가 폭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은 23조 6천억 원이나 된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집단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집단대출은 개별 심사 없이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빌려주는 대출로 실제로는 곧장 건설회사들에 지급된다. 집단대출은 올 상반기에만 11조 9천억 원이나 증가했다.
가계부채 급증을 막으려면 이런 집단대출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분양권 전매 제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등으로 대출 자체를 억제하지는 않고, 공공택지 공급 축소, 아파트 신규 분양 억제 등 주택 공급 축소 정책을 내놨다. 택지 공급이 줄어들면 아파트 신규 분양이 줄어들고, 그만큼 집단대출이 감소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대출 조건은 유지한 채 주택 공급을 줄인다는 것은 이미 올라 버린 분양 가격은 유지해 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8·25대책으로 기존 주택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분양 물량은 예년 평균(27만 가구)의 갑절에 육박하는 52만 5천 가구였다. 국토부는 올해 분양 물량이 지난해보다 25∼30퍼센트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러나 올해 1~7월 분양 물량은 24만 2천 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겨우 3.9퍼센트 줄었다. 주택 인허가 물량은 올해 7월까지 41만 가구가 넘어, 지난해보다 오히려 8.8퍼센트 많았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으로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분양이 감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주택 준공까지 2년 남짓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말부터 막대한 입주 물량이 나오면서 집값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급증할 위험이 커졌다. 실제로 7월까지 미분양은 6만 3천1백27호로 집계돼, 2013년 11월(6만 3천7백9호)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래서 이번 대책은 가계부채 축소 대책이라기보다 부동산 가격 유지 정책이자 금융기관이 돈을 떼이지 않게 하는 방안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노동자들과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높은 집값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금융기관 전체에 타격을 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
정부가 집값 하락과 가계부채 악화, 금융기관 부실화를 걱정하는 것은 단지 주택 공급이 급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더 강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에 충격을 줄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신흥국 투자자금이 미국 등지로 유출되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이 충격에서 우리 경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9년 만에 금리를 인상하자 국내 금융시장에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9개월 연속 2백66억 달러(약 30조 원)가 유출된 바 있다. 이처럼 자금이 유출되면 한국도 저금리를 마냥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 금리 인상으로 여타 신흥국 경제 불안이 가중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감소하고 있는 수출이 더욱 감소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의 부채 위험성을 크게 본다는 점은 최근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추경 11조 원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추경안을 보면 추경을 위한 국채 발행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해 예산에서 남은 1.2조 원과 올해 예산안보다 많이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세금 9.8조 원을 추경 재원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추경은 더 걷은 만큼 더 쓰겠다는 수준이어서 전혀 확장적 재정정책이 아니다.
게다가 추경의 지출 내용을 보면, 1.2조 원은 국채 상환, 1.8조 원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에 대한 출자·출연, 3.7조 원은 지방 교부금 확대, 5천억 원은 외국환평형기금 출연 등으로 추경의 상당 부분이 국가채무 감소와 국책은행 지원 등 금융 안정에 쓰인다. 반면, 누리과정 예산을 포함해 달라는 요구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서 올해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채무가 6백44조 9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6백37조 8천억 원이 돼 오히려 7조 1천억 원이 감소할 것이다.
‘슈퍼 예산’이라는 정부의 호들갑과 달리 내년 예산도 전혀 확장적 재정 편성이 아니다. 정부는 “국가채무 증가를 무릅쓰고 재정지출을 확대”했다며 내년 총지출을 2016년보다 3.7퍼센트(14.3조 원) 늘어난 4백조 7천억 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추경안을 포함해서 비교하면 정부 지출은 고작 3조~4조 원밖에 늘지 않은 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노동자 임금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공공기관 부채는 급감하고 있다. 2015년에 공공기관의 총 부채는 16조 7천억 원이 감소했다. 2012년 공공기관의 순이익은 2조 원 적자였으나, 2013년에 5조 4천억 원 흑자로 전환했고, 2014년에는 11조 3천억 원, 2015년에는 12조 5천억 원 흑자를 달성했다. 최근에 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를 극구 거부한 이유 중에는 공공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목표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국가채무를 비롯해 공공부채 감축에 열을 올리며 사실상 긴축 정책을 펴는 것은 미국 금리 인상이나 브렉시트 등으로 나타날 전 세계적인 금융 불안정을 피해 보려는 시도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퍼센트로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낮췄었으므로 석 달 만에 또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긴축 정책이 낳을 경기 침체 위험을 피하려고 부동산 시장을 부양했고, 그 결과 평범함 사람들이 대거 빚을 지면서 가계부채는 급등해 왔다. 이번 8·25 가계부채 대책은 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관리라는 서로 모순된 목표를 달성하려 애쓰는 정부의 처지를 보여 준다.
정부의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금리 인상, 브렉시트, 중국의 경기 침체 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부가 긴축 정책과 집값 상승 정책으로 이루려 하는 목적이 경제 불황의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