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실패한 정책을 고수하며 위험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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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한 다음날인 9월 10일, 박근혜는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우리와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날 박근혜의 발언은 7개월 전 그 자신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관해 말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때도 박근혜는 “이제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돈줄을 더한층 옥죄려는 미국의 전술에 호응해 개성공단을 닫아 버렸다.
대북 경제제재 강화는 군사적 압박 증대와 결합됐다. 미군은 B-52 전략폭격기, F-22 스텔스 전투기, 항공모함 등을 잇달아 한반도에 투입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대북 선제 공격 계획을 반영한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김정은 제거가 목적인 ‘참수작전’ 훈련까지 실시했다.
그 절정이 바로 사드 배치 결정이었다. 북한 핵 ‘위협’을 핑계로 미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라는 숙원을 이룬 것이다.
올해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 등을 잇달아 단행한 배경이다.
악순환
그러나 대북 경제제재 수위를 높이고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는 한·미의 “기존 방식”은 이번 북한 5차 핵실험에서 드러나듯, 실패한 정책이다. 미국과 남한 정부가 기존의 대북 강경책을 고수·강화하면 북한은 더더욱 핵과 미사일 전력 강화에 매달릴 것이다. 경제제재 강화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과거 경험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그동안 ‘선 [북한] 비핵화, 후 대화’를 내세운 미국과 남한의 대북 강경 정책이 한반도에서 위험을 키우며 악순환을 일으켰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이 취한 조처들은 4차 핵실험 이후의 일들과 다를 바 없다. 9월 13일 미군은 B-1B 초음속 폭격기를 수도권 상공에 투입했다. 한국의 국방부는 ‘참수작전’과 유사한 ‘대량응징보복’ 개념을 공개했다.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수뇌부가 있는 곳을 “미사일 등 정밀타격부터 특수부대 투입 등 다양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새 대북 제재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9월 18일 한·미·일 외교부 장관들은 “도발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고통을 [북한에] 가하겠다”며 유엔 제재 외에 독자 제재 강화를 공언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력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북한 ‘위협’을 실제보다 과장한다. 물론 북한도 협상력을 높이려고 자국의 군사력에 대해 허세를 부린다.
사드 배치 반대 입장에서 발 빼는 안철수와 추미애
9월 10일 박근혜는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면서 “사드 반대와 같이 대안 없는 정치 공세에서 벗어나[라]”며 사드 배치 반대 입장도 공격했다. 그리고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 ‘불순(외부)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발언에는 북한 핵실험을 이용해 김천·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현지에 억제해 두고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문제에서 연일 후퇴하고 있다. 더민주당 신임 대표 추미애는 대표 경선 과정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작 당선된 후에는 ‘토론 후 결정할 것’이라며 당론 채택을 기약 없이 미뤄 버렸다.
사드 배치 반대가 당론이라던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핵실험 이후 안철수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조건부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박지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는데, 이를 보면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 반대’에서 후퇴하는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것 같다.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모두 한미동맹의 지속을 원하는 한국 지배계급 다수의 입장을 의식하기 때문에, 사드 배치 같은 쟁점에 직면해 동요하다가 결국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타협해 왔다. 두 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모두 과거에 전략적 유연성, 평택 미군기지 확장 등의 미국 제국주의 문제들이 불거질 때마다 지지자들의 바람을 배신한 바 있다.
북한 핵실험 후, 이번에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자신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자들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관련국들의 과장에도 불구하고 괌까지 타격할 수 있다는 북한의 화성-10 미사일은 이제 한 번 시험 발사에 성공했고, 그전까지는 발사에 연거푸 실패했다. 20퍼센트도 안 되는 성공률만으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고 말하는 것은 속단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실전 배치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이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 “5~10년 내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지금도 미국 정부와 소위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완성 시점으로 “5~10년 내”를 거론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핵탄두의 파괴력을 향상시키고 투발수단을 개발해 나가려 더한층 애쓸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당장 남한만 해도 북한 국민총소득(GNI)보다 더 많은 돈을 국방비에 쓴다. 북한이 핵무기의 실전 배치에 이른다 해도 괌 기지 등 서태평양 연안 지역의 미군 핵 전력만으로도 능히 북한 핵무기 전력을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각국의 군비 경쟁 양상만 서로 견줘 봐도 북한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불안정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매우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 관료들의 군비 투자를 이번 함경북도 홍수 피해에 대한 매우 취약한 대처 능력과 비교해 보면, 북한 체제의 우선순위가 “인민”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 등과의 군사적 경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와 하등 관계없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누적되는 위험
사실 미국은 북한 핵·미사일 시험이나 남·북한 간 국지적 충돌 같은 긴장을 이용해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전략적 이익—동맹 형성과 군사력 강화 등—을 추구해 왔다. 전략 목표는 중국 견제다.
이번에도 오바마와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실험을 사드의 한국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9월 10일 일본 방위상 이나다 도모미는 한국의 국방장관 한민구에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조기 체결’을 촉구했다. 그리고 19일 일본 외무상 기시다 후미오도 외무장관 윤병세를 만나 ‘한일군사협력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윤병세는 “그 필요성에 완전히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당연히 중국 등 주변국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박근혜가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배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얄팍한 조건부 사드 배치론을 내놨다. 하지만 시진핑은 사드 배치 반대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북핵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데다가, 이란 핵 합의 이후에도 중동과 유럽에서 러시아를 둘러싼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가 그대로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미국과 한국 정부가 취할 조처들은 모두 한반도와 그 주변에 위험을 더한층 누적시킬 것이다. 특히, 사드 배치 강행은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제국주의적 경쟁의 차원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를 놓고 벌어진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조지아 전쟁과 크림반도 사태로까지 번졌다.
중국이 미국·일본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에 대한 착각을 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중국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일부인 제국주의 국가로, 한족이 아닌 소수 인종은 물론 한족 내의 노동자·농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국가이다.
또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을 뒤흔든다’는 것은 허풍에 가깝다. 핵과 미사일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 그토록 중요한 수단이라면 옛 소련은 왜 붕괴했을까?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미국과 협상을 통한 관계 개선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한반도 민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군비를 늘리고 동맹을 강화하는 명분이 됐을 뿐이다.
한편 북한 핵 ‘위험’에 관한 과장된 인식을 똑같이 받아들여, 이번엔 공평무사한 양비론(‘사드 배치 반대, 북한 핵실험 규탄’ 같은 슬로건)으로 나아가는 것도 반전·평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국제주의 원칙을 지킬 때만 효과적인 반전·반제국주의 운동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