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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환영:
체제에 맞선 반란을 고무한 음유시인

올해 노벨문학상은 1960년대 저항과 반전·평화 운동의 주요 상징적 인물이었던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서 음악과 문학을 구분 않는 것라고 하지만, 스웨덴한림원이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말했듯이 그의 작품은 충분히 시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편, 밥 딜런의 정치적 지향은 그가 음악에 발들인 시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950년대 미국은 냉전의 핵 공포와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는 매카시즘이 사회를 지배했고 모두에게 보수적 규범을 강요했다. 1960년대 초부터 청년들은 이런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침 그 시기는 더는 열등한 시민으로 살지 않겠다며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저항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밥 딜런은 바로 이런 시기에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로 올라와 포크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노랫말에서 시대를 말하고 그의 노래가 시위에서 불렸다는 점에서는 여느 그리니치빌리지 음악가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밥 딜런은 상투적인 것을 거부하고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당시 반란에 나선 청년들의 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음악적 재능 덕분에 그의 노래는 단연 돋보이게 됐다.

1963년 8월 28일 "일자리와 자유를 향한 워싱턴 행진"에 참가한 밥 딜런(오른쪽)과 조앤 바에즈. ⓒ위키피디아

그의 노래는 핵무기 경쟁의 두려움을 표현했고 이밖에도 가난, 인종차별, 애국주의,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전쟁, 감옥 등을 다뤘다. 또한 밥 딜런은 미묘한 회한과 매우 솔직함을 담은 사랑 노래도 썼다. 그는 급진적인 생각을 시적인 감성과 아름다운 운율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저항 음악의 청중을 한층 더 넓혔다.

1964년에 발매된 밥 딜런의 앨범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어’)는 당시 청년들의 대표곡이 됐고, 그는 “우리 세대의 대변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밥 딜런은 그런 것이 불편했다. 그는 “나는 누구의 대변인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노래하고 싶다” 하고 말했다. 밥 딜런은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앨범에서 칭송했던 운동을 비판했다. 심지어는 과거 자신의 노래는 “사람들이 원해서 지은 것일 뿐”이라고 자기 비하하기도 했다.

그는 “인생에는 오로지 흑백 논리밖에 없다는 거짓말”을 반박하고자 했다. 그는 운동 내 권위주의와 대중과 소통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려는 일부 좌파의 행태에 반발했다. 이 때문에 일부 논평가들은 그가 이전 시기의 급진성을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밥 딜런은 정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협소한 영역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배자들에게 투항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1960년대의 청년들에게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자신들의 용어로 생각하고 느낄 것을 요구했다.

공연장에서 어느 팬이 “이런 노래 말고 저항 가요 불러줘요”라고 요청하자 그는 “제가 지금 부르는 노래들이 바로 저항 가요라는 걸 모르겠어요?” 하고 반문했다.

밥 딜런이 부르는 노래들은 외견상 운동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깎아 내리는 듯 보였음에도 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노래가 여전히 자신을 대변한다고 봤다. 단지 협상으로 개혁을 얻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당시 그의 노랫말들은 난해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끔찍한 현실을 꼬집는 그 무언가가 그의 노래에 있었다.

예컨대, 밥 딜런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쓰고 지미 핸드릭스가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All Along the Watchtower’(‘감시탑에 서서’)는 베트남전 참호의 군인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그 노래는 “여기서 빠져 나갈 방도가 분명히 뭐든 있을 거야”라는 말로 시작한다. 밥 딜런의 노래는 또한 흑표범당 등 여러 소규모 혁명적 좌파에게 영감을 줬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운동이 부상했을 때 베트남전쟁 당시 밥 딜런이 지은 노래(그가 1960년대 시위 문화를 비판하며 지은 노래들까지)가 다시금 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시대가 지나도 전쟁, 환경 파괴, 착취, 빈곤, 부패 등을 낳는 자본주의의 본성은 여전하다. 따라서 이런 체제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밥 딜런

어디 갔었니 푸른 눈의 아들아
어디 갔었니 내 귀여운 꼬마야
나는 안개 자욱한 산을 열두 개 넘었어요
나는 갈고리 같은 고속도로를 여섯 개 걷고 또 기었어요
나는 슬픔에 젖은 숲을 일곱 개 지나왔어요
나는 죽은 바다를 열두 곳이나 가봤어요
나는 무덤이 수천 마일 늘어선 길을 걸었어요
거칠고 거친, 거칠고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무얼 보았니 푸른 눈의 아들아
무얼 보았니 내 귀여운 꼬마야
나는 야생 늑대에 둘러싸인 갓난아기를 보았어요
나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고속도로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것을 보았어요
나는 검은 나뭇가지에서 계속해서 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어요
나는 망치를 든 남자들이 피를 흘리며 모여 있는 방을 보았어요
나는 물로 뒤덮인 하얀 사다리를 보았어요
나는 만 명이나 말을 하고 있지만 모두 혀가 꺾여 있는 것을 보았어요
나는 아이들이 날카로운 검과 총을 쥐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거칠고 거친, 거칠고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무얼 들었니 푸른 눈의 아들아
무얼 들었니 내 귀여운 꼬마야
나는 천둥 소리를 들었어요, 경고를 보내고 있었어요
나는 온 세계를 집어삼킬 파도의 포효를 들었어요
나는 백 명이 손에서 불을 뿜으며 북을 치는 것을 들었어요
나는 만 명이 속삭이는 것을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듣지 못했어요
나는 한 명이 굶주리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는 것을 들었어요
나는 시궁창에서 죽은 시인의 노래를 들었어요
나는 뒷골목에서 울부짖는 광대의 소리를 들었어요
거칠고 거친, 거칠고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누굴 만났니 푸른 눈의 아들아
누굴 만났니 내 귀여운 꼬마야
나는 죽은 망아지 곁에 선 아이를 만났어요
나는 검은 개와 나란히 걷는 백인을 만났어요
나는 몸이 불타고 있는 젊은 여자를 만났어요
나는 소녀를 만났는데, 내게 무지개를 줬어요
나는 사랑에 빠져 피흘리는 남자를 만났어요
나는 증오에 빠져 피흘리는 남자도 만났어요
거칠고 거친, 거칠고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무얼 하겠니 푸른 눈의 아들아
무얼 하겠니 내 귀여운 꼬마야
나는 비가 오기 전에 다시 나갈 거예요
나는 검은 숲 깊숙이 갈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손은 모두 비어있는 그곳으로요
독약들이 알알이 물 속에 넘치는 그곳으로요
계곡 속 우리집과 더럽고 습한 감옥이 만나는 그곳으로요
사형집행인의 얼굴이 언제나 가리워진 그곳으로요
굶주림은 추악하고 영혼은 잊혀진 그곳으로요
검정이 모든 색이 되고 무(無)가 모든 수가 되는 그곳으로요

나는 말하고 생각하고 소리내고 숨쉴 거예요
저 산을 반사해서 모든 영혼이 볼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리고서는 가라앉을 때까지 바다 위에 서겠어요
하지만 난 노래하기 전에 내 노래를 알게 될 거예요

거칠고 거친, 거칠고 거친 비가 내릴 거예요

(1963년 발표곡, 'A Hard Rains a-Gonna Fall')

이 글은 김종환이 영국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03년 11월호 ‘반란의 발라드’를 기초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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